온통 호랑이 투성이 고려대 교정, 왜 그런가 찾아봤더니

정재학 2026. 5. 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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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아리의 거룩한 장도] 고려대박물관, 국립등대박물관의 '호랑이 강역도'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 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 <기자말>

[정재학 기자]

요즘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소식에 문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아울러 이를 압축하고 있는 아리랑의 상징 코드는 문화상징의 전형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상징은 한 사회나 공동체가 오랜 시간 공유해 온 가치, 믿음, 정체성, 세계관을 특정한 사물·동물·색채·행위·문양·이야기 등에 담아 표현한 것을 말한다.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이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표현해 왔다. 국기와 문장, 산천의 지도와 동물의 상징이 모두 그러하다. 한 사회가 어떤 형상을 선택하느냐는 단순한 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그 민족이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하는가에 대한 집단적 선언이다.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바로 그러한 문화상징이었다. 그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바로 '호랑이 강역도'이다. 한반도의 지형을 호랑이 형상으로 바라본 이 독특한 국토관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국토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이해한 문화적 세계관이었다. 이번 여정은 호랑이 형상 속에 담긴 한민족의 문화정신을 찾아가는 탐방으로 지난 2일, 먼저 고려대학교 박물관을 방문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그동안 한반도의 형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중국을 향해 고개 숙여 읍하고 있는 노인의 형상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는 신라 말 도선국사와 전남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는데, 대륙에 비스듬히 정박해 있는 배 형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일제강점기 전후로 촉발하게 되는데, 고토 분지로의 '한반도 토끼모양지도'가 그것이다. 이는 다분히 조선을 토끼 형상으로 묘사해 나약한 이미지로 규정하고 식민지정책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에 반발하여 육당 최남선은 한반도를 '맹호가 웅크린 형세'라고 설명하며 민족정신을 강조했고, 호랑이 형상을 통해 민족의 기상과 자존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반영하여 그린 지도가 바로 이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인 셈이다. 제목은 화면 상단 좌측에 쓰여 있는 한자로 비롯된 것이다. '무궁화 핀 강산에 맹렬한 호랑이 기상이 있는 지도'라는 뜻으로 두 앞발이 대륙을 향해 뻗어 올리고 백두산과 천지 부분은 포효하는 얼굴로 그려져 있고 꼬리는 영일만 부근에서 시작해 남쪽 해안을 따라 그 끝은 변산반도 해안가에서 갈무리하고 있다.
▲ 고려대박물관 소장 근역강산맹호기상도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 주장을 반영한 그림으로 20세기 초 김태희 화백이 그렸다.
ⓒ 정재학
이 그림은 20세기 초 김태희 화백이 그렸고 길이가 대략 80cm 정도로 그리 큰 크기의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동해안에서 시작하는 호랑이 줄무늬의 변화무쌍한 먹선과 한 올 한 올 서 있는 털에 대한 필치,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기운 생동한 표정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가. 일명 '민족고대'라 불리는 고려대학교가 아닌가. 호랑이 강역도 하나만 생각하고 지하 주차장에서 직진해서 미처 몰랐는데, 교정은 온통 호랑이였다. 건물 입구를 지키는 귀여운 석조 호랑이도, 건물 외벽 입구 상부 메달리온 문양도, 건물 내 휴게실에 걸려있는 작품들도 다 호랑이였다.
▲ 고려대 호상 학생들이 직접 성금을 모아 사색과 행동의 표상으로 삼고자 건립했다.
ⓒ 정재학
그리고 거리는 또 어떤가. 가로등 붉은 휘장을 장식한 것도 호랑이요, 학생들이 입고 있는 과잠(학과 단체복)에도 호랑이다. 하지만 이곳의 대표 호랑이는 '호상'이라는 조형물일 것이다. 1963년도에 학생들이 직접 성금을 모아 사색과 행동의 표상으로 삼고자 건립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멋진 발상이 아닌가.
▲ 가로등 휘장 호랑이 가로등 휘장에 장식된 포효하는 호랑이
ⓒ 정재학
그래서 궁금했다. 왜 고려대는 호랑이를 학교의 문화상징으로 삼았을까.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한민족의 신령한 동물 토템인 '호랑이'가 지닌 용기, 결단, 민활, 위엄 등이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민족적 기풍과 서로 상통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조선시대 당시 안암산 호랑이의 실제 서식지였다는 점, 일제강점기에는 저항의 표시로 경성 중심부에서 동북동 인시(寅時) 방향 위치였다는 점 등의 이유로, 그리고 1953년부터는 교장·교기에서 '포효하는 호랑이' 모티프가 중심 심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와! 그래서 '민족고대'라고 외쳤던 것이 좀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교정에 있는 학생들 표정 속에도 호랑이의 결기가 보이는 게 아닌가.

한반도 꼬리 호미곶과 국립등대박물관
▲ 국립등대박물관 항로표지 100년을 기념하고 산업 기술의 발달과 시대적 변화로 사라져가는 항로표지의 시설과 장비를 영구히 보존 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
ⓒ 정재학
다음은 한반도 꼬리 호미곶과 국립등대박물관 소장 호랑이 강역도를 찾아 지난 10일에 포항을 찾았다. 이곳 '호미곶(虎尾串)'은 동쪽 끝자락에 바다를 마주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름 자체가 이미 호랑이의 꼬리를 의미하지 않는가. 한반도를 호랑이로 본다면, 이곳이 바로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 지명이 원래부터 호미곶이었느냐고 한다면, 아니다. 조선시대의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등을 보면 '동을배곶(冬乙背串)'으로 나온다. 커다랗고 둥그스름한 벌판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부터는 '장기곶(長䰇串)'이라고 긴 말갈기라는 뜻으로 이곳에 실제로 말 목장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뜬금없이 어떻게 호미곶이라는 지명이 나온 걸까.
▲ 호미곶등대 1903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등대
ⓒ 정재학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등대인 대보리 등대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등대는 1903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건립 계획이 발표되자 인근 주민들이 크게 동요했다고 한다. 왜냐면 호랑이 꼬리에 불을 붙이면 호랑이가 뜨거워 꼬리를 흔들 테고 그러면 인근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때 이미 호랑이 꼬리라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 주장이 1908년인 점을 감안해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최근 지역 연구자는 호미곶 근처에 위치한 범 모양의 산등성이인 '범디미'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 호미등(虎尾嶝)이고 여기서 유래된 말이 호미곶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하여튼 이 지명은 2002년부터 정식으로 호미곶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로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호랑이 강역도를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일부러 방문한 것이었다. 고려대 소장본이 외견상 꼬리가 시작되는 영일만 일대가 밋밋하게 처리되었고, 꼬리의 끝부분이 서해안 변산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 국립등대박물관 소장 근역강산맹호기상도 꼬리가 호미곶에 배치하도록 그렸다.
ⓒ 정재학
이를 전 영일군수였던 서상은이 1988년에 성기열 화백에게 호랑이 꼬리 끝부분이 호미곶에 오도록 그려 달라고 주문해 그린 강역도 2점이 바로 여기의 그림들인 것이다. 그런데 애초 조사하고 기대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박물관 사무실 회의실에 걸려있는 그림은 180cm 정도의 완전 다른 작품이었다. 고려대 소장본을 모사한 것처럼 호랑이 신체 배치가 거의 유사했다. 단지 꼬리 부분을 강조하고 끝부분을 호미곶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필치 등은 좀 아쉬웠다.
▲ 가로등 호랑이 강역도 1988년 성기열 화백이 그린 근역강산맹호기상도로 발의 위치와 좀 더 역동적인 표정이 인상적이다.
ⓒ 정재학
다행스럽게도 광장 가로등 장식으로 부착된 호랑이 강역도가 있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아울러 등대 옆에 색다른 호미곶 호랑이 상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너무나도 순진한 표정의 얼굴에, 꼬리로 천구의를 감싸고 있는 조형으로 이곳 호미곶의 미래상을 상징하고 있었다.
▲ 호미곶 호랑이상 너무나도 순진한 표정의 얼굴과 꼬리로 천구의를 감싸고 있는 조형물로 호미곶의 미래상을 상징한다.
ⓒ 정재학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문화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보았다. 호랑이 강역도 역시 바로 그런 문화의 힘 가운데 하나다. 총칼 없이도 민족의 자존을 일깨우고,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간다. 국경은 희미해지고 문화는 빠르게 섞인다. 그러나 이런 시대일수록 자신만의 상징과 이야기를 가진 문화가 더욱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호랑이 강역도는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자연관과 국토관, 그리고 문화적 자존심이 응축된 상징지도인 것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시작된 여정은 포항 호미곶에서 끝났지만, 호랑이의 숨결은 여전히 한반도 곳곳에 살아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맹호의 기상은 산맥을 따라 남하하고, 마침내 동해의 푸른 물결 위로 꼬리를 치켜올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형상 속에서 단순한 지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와 정신을 읽게 된다.

결국 호랑이 강역도란 국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한민족의 대답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산하, 기운이 흐르는 땅, 그리고 그 땅을 지켜온 맹호의 정신, 그 상징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이 산하를 어떤 형상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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