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 동생이 찾아왔다, 유기견 구조 스타 훈련사에 닥친 위기

김상목 2026. 5. 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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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훈련사>

[김상목 기자]

*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영'은 유기견을 구조하고 반려견 인식 개선 활동을 벌이는 스타 훈련사다. 미디어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와 사회적 선망을 한몸에 받는 그녀는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지만, 본업에 집중하며 동물보호소를 성실히 운영한다. 불우한 환경에 망가진 유기동물도 통제와 사랑으로 길들일 수 있다는 소신이 투철하다. 작가인 남편과도 단란하게 결혼 생활을 누리니 부러울 게 없는 삶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던 하영의 삶에 위기가 다가온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동생 '소라'가 불쑥 언니 앞에 나타난다. 하영의 표정은 복잡하다. 어쨌든 의지할 곳 없는 동생을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긴 하지만, 둘 사이엔 석연찮은 감정이 맴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언니처럼"

소라는 언니의 직장에서 일자리를 얻지만, 마침 보호소를 탈출한 유기견 '두부'가 인근에서 사람을 공격해 사건을 일으킨다. 완벽하던 하영의 경력이 위태로움에 처한 마당에 소라는 자꾸만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며 주위엔 긴장이 감돈다.

'카인 VS 아벨'의 알레고리를 소환하다
 <훈련사> 스틸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훈련사>는 불편한 감각을 묵은 상처를 건드리듯 굳이 끄집어내는 영화다. 현실에서 논란이 된 특정 사건을 연상하는 대목이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지만, 시사 고발은 본 작품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동물권을 소리 높이 외치거나,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문제를 언급하긴 해도 감독이 중점을 두고 관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좀 더 원론적인 문제로 향한다. 마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형제와 자매간에 해묵은 감정이 응어리로 남아 있다면?

하영과 소라 자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구구절절 상세히 해설이 붙지 않아도 상징적인 플래시백을 통해 그녀들이 학대를 당했고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음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둘의 운명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헤어진 자매 중 언니는 부단한 노력으로 자수성가해 '멋진 인생'을 사는 중이다. 경제적 여유와 자기 분야에 대한 권위, 사회적 인정을 모두 거머쥔 삶이다. 물론 비상한 헌신과 자기관리 덕일 테다.

반면에 동생은 박복한 시간을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위험한 상황에서 과잉 정당방위로 7년간 수감된 것. 전과자란 낙인과 날려보낸 청춘은 돌이킬 수 없다. 그나마 의지할 데라곤 서먹하기 짝이 없는 언니밖에 없다. 막상 찾아와 보니 '기댈 언덕'으론 충분한 언니이지만, 똑같이 시련 가득한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뭔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꿈꾸는 모든 걸 다 가진 언니와 그 언니의 호의에 빌붙어야 하는 자신이라니.

소라는 하영을 동경한다. 나도 언니처럼 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한 번 벌어진 격차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틈으로 벌어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속없이 언니에게 얹혀서 호구지책 마련하는 것 또한 견딜 수 없다.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원망은 언니에 대한 선망과 함께 증오를 불러온다. 소라는 하영의 곁을 맴돌면서 끊임없이 언니의 소유(라 보이는 모든 걸) 넘보지만, 동시에 하영의 완벽한 이미지를 조롱하며 무너뜨리려 한다.

수면 아래 잠복하던 욕망과 갈등, 분출하다
 <훈련사> 스틸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그런데 인간관계 갈등은 자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하영의 통제 아래 겉으론 평온하게 잘 굴러가던 주변 상황이 소라의 출현과 함께 겉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하영의 남편은 금슬 좋은 부부관계 속에 바쁜 아내를 내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본업인 작가로 홀로서기에 어려움을 겪으며 아내에 대한 열등감을 흉중에 키우고 있었다. 하영과 소라의 은밀한 과거에 주목한 그는 위험한 집필에 도전한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반목하며 처제와 묘한 관계에 빠진다.

보호소장이자 하영의 오랜 동업자인 '민경' 역시 문제가 있다. 절친한 관계라지만, 센터의 간판이자 얼굴인 하영에게 의존하다시피 굴러오다 보니 그녀 역시 열등감과 더불어 모든 걸 친구에게 의존하는 관계다. 보란 듯이 일을 잘해야 하지만, 하영의 기대치에 못 미침을 깨닫자 민경은 술에 의존하며 자꾸만 사건을 키운다. 자포자기해 더욱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다. 그럴수록 친구가 아니라 감독관처럼 냉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하영의 시선이 버겁다.

민경의 불안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다. 신경이 곤두선 그녀에겐 불청객 소라의 등장이 영 마땅찮다. (하영과) 자신이 가꿔온 터전을 작정하고 망가뜨리려는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듯 동경하는 친구의 가여운 동생이니 마치 험담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게다가 싹싹하고 일 잘하는 후임 훈련사가 자신의 자리를 치고 들어오는 것만 같다. 초조한 마음 달래려 술에 손을 더 대다 보니 하영에게 금방 눈밖에 난다. 친구가 자신을 내칠 수 있단 걱정은 극단으로 향한다.

파국은 그렇게 천둥처럼 돌연히 닥친다. 겉으론 성공한 언니가 모자란 동생을 집에 데려와 살게 해주고 일자리도 제공하며 살뜰하게 돌보지만, 실제론 평판과 위신을 위한 데 가깝다. 물론 혈육에 관한 정이 없진 않다. 동생을 향한 애틋한 감정은 본인의 직업적 전문성과 신념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그런 복합의 과정은 단선적으로만 진행될 경우 가족 치정극으로만 읽힐 이야기를 종을 뛰어넘는 윤리적 고민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성악설과 환경결정론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
 <훈련사> 스틸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동생의 달갑지 않은 등장이 아니라도 하영은 이미 곤혹스러운 상황에 봉착했다. 대외 활동 때문에 보호소 살림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 민경에게 소장 직함과 함께 맡겨 뒀건만, 관리 부실로 학대를 당하던 유기견 '두부'가 탈출한 것. 야생화가 진행되어 들개가 다 된 두부는 산책하던 사람을 습격하고 반려견을 해치며 공포의 대상이 된다. 상처 입은 반려동물을 훈육하려던 하영의 시도가 물거품이 됨은 물론, 대외 이미지가 중요한 보호소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도움이 안 되는 민경과 소라의 본의 아닌 훼방에도 불구하고 하영은 집요한 추적 끝에 두부를 생포한다. 당연히 안락사해 보호소 출신이란 증거를 인멸해야 마땅한 일이다. 사람을 공격하는 유기견이니 딱히 잔인한 처사도 아닌데, 하영은 평소와 달리 망설임을 거듭한다. 이유가 뭘까? 후배 훈련사는 그녀가 신념과 전문성을 걸고 훈육이 가능하단 증명을 해보이고 싶다는 걸 간파한다. 속내가 들킨 건 불편하지만, 사실이기에 어떻게든 하영은 재도전에 나서려 한다.

여기에서 기묘한 이질감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보호소와 가족, 자신이 지금껏 힘들게 구축한 모든 기반은 오로지 본인이 온전하게 제어할 때 원활히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왕국은 소라와 두부, 두 야생화된 존재로 인해 모래성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어떻게 쌓은 기반을 훌훌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하영은 자신을 몰아세우며 필사적으로 수습에 몰두한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할 수 없기에 동시에 둘을 감당하기란 무리다.

여기에서 소라와 두부의 운명은 크게 엇갈리기 시작한다. 미우나 고우나 혈육인 친동생 VS 자매의 슬픈 과거를 연상케 하는 학대받은 유기견 가운데 주인공은 누구를 구하려 할까?? 이건 사실상 물에 빠진 둘 중 누구를 구할 것인가 선택을 강요하는 셈이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여기에서 보여줄 하영의 태도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참이다. 설상가상 위기의 끝에 누가 남게 될까? 조금만 더 헤아리고 보듬으면 갱생도 가능할 텐데 안타까움이 스며드는 순간이다.

논리와 개연성 대신에 상황과 밀도로 승부하는 영화
 <훈련사> 스틸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영화는 그렇게 거의 모든 (비인간 동물까지 포함한) 등장인물의 속마음에 도사리던 불안과 욕망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며 파국 또는 정화로 내달린다. 이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과 자연스레 겹쳐 보이지만, 굳이 배경을 제한하지 않더라도 동서고금 인류 보편의 윤리적 고민을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로 귀결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주어진 조건에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고대로부터 철학적 화두를 다루는 작업이다.

상황을 보면 선과 악의 뻔한 이분법 대신,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가 논증하는 듯하다. 하영은 처음엔 노력해도 주변이 돕지 않는 비극적 영웅, 조금 지나면 남편과 친구와 동생을 비롯해 주변 모두를 통제하려는 욕망의 화신처럼 비친다. 하지만 뜻밖의 반전으로 사실은 진짜 '빌런'이란 설정 놀음으로 치닫진 않는다. 다만 불안한 나머지 주변을 장악하려는 욕구가 과할 뿐, 하지만 야생의 존재는 그녀의 설계를 언제든 허물어뜨릴 폭탄과 같다.

공감이 가거나 동정을 유발하진 않지만, 주요 인물들에겐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닌 본연의 색깔과 연민의 요소가 반드시 첨부된다. 소라는 모든 재앙의 근원처럼 여겨지지만, 청소년 시절 좀 더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면모가 뚜렷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흉악범죄의 피해자라는 측면이 모든 걸 정당화할 순 없어도 참작할 요소는 다분한 탓이다. 겉으론 티내지 않아도 어릴 적 열등감과 차별은 오래 후유증으로 남는 법이다.

하영의 남편도 인정 욕구에 의한 적극적 행동이 오히려 모든 걸 관찰하며 자기 계획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아내에 의해 차단당하며 비뚤어지는 셈. 자꾸만 선을 넘지만, 그 역시 너무나 평범한 보통의 인간이다. 공감 대신에 연민은 충분히 가능한 존재다. 민경 역시 한숨이 나오다가도 관객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뜨끔한 캐릭터다. 하영과 가장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 훈련사 역시 대안적 존재라기보단, 자신만의 욕망이 확고한 인물에 불과하다.

<훈련사>는 유럽 작가주의 감독들이 즐겨 구사하는 인간 본성과 윤리적 갈등을 한국 현실에 접목하는 시도다. 긴장의 한 축인 사고뭉치 유기견의 마지막 모습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변칙적 가능성을 긍정하는 태도로 읽힌다. 완벽하게 규정하기보단, 야생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숱한 경우의 수로 드러나지만, 현실은 변화하는 법.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지만, 작은 틈새는 열려 있다는 메시지가 각인된다. 하지만 도달 가능한지는 물음표로 남는다.

<작품정보>

훈련사
Wrangler
2025|한국|통제불능 다크 스릴러
2026.05.13. 개봉|108분|12세 관람가
감독/각본 서은선
출연 최승윤, 김승화, 정환, 주예린, 김다솔
제공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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