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그리운 스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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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기자]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처럼 스승의 날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제는 생일조차 그리 기쁘지 않은 나이가 되었으니, 스승의 날을 마주하는 마음은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가끔 옛날이 그리워지곤 한다. 1996년에 첫 교단에 섰으니, 올해로 꼭 30년째를 맞이한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첫 발령지에서 제자들에게 받았던 과분한 환대는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하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스승의 날엔 한 번에 옮길 수 없을 만큼 한가득 꽃을 받았다. 총각 선생님은 무조건 팬이 있던 시절이라 기념일이 아니어도 꽃이나 선물을 받는 날이 많았다. 특히 손에 분필 가루가 묻지 않도록 색색의 분필을 껌 종이로 정성스레 말아 넣은 수제 분필통은 그 시절 유행하던 다정한 선물이었다. 예쁜 포장지로 정성스레 감싼 소주도 받았다. 그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사할 때 버리려다가 버리지 못했다.
추억이라고 모두가 다 좋을 수는 없다. 그 시절엔 안타깝게도 촌지를 몰래 넣은 선물이 있어 돌려주는 번거로움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면 학부모들 사이에 금세 소문이 퍼졌고, 덕분에 학교를 옮기기 전까지는 그런 불편한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해는 전교조 분회장을 맡아 촌지 거부 운동에 앞장섰더니, 새로 옮긴 학교에까지 그 소문이 미리 가 있기도 했다.
꽃다발도 부담스러운 선물이므로 법으로 금지하여 없애버린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교사가 선물에 눈이 멀어 쉽게 본분을 잊을 수 있는 존재임을 해마다 확인받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도 든다. 학생이 사서 주는 모든 선물은 불법이므로 학교 예산으로 산 꽃을 학생들이 달아주는 행사를 여는 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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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무실 책상 위에도 적어 놓았다 |
| ⓒ 박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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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 학급 출입금지를 알리는 푯말 |
| ⓒ 박영호 |
실제로 우리 반 아이에게 쉬는 시간에 교실에 다른 반 학생이 들어와서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쉬는 시간에 자주 교실에 들렀지만 다른 반 학생에게 친구와는 복도에서 만나라고 타이를 뿐 별다른 벌을 줄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친구끼리 쉬는 시간에 만나는 일까지 금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회의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담임을 맡았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자리 배치였다. 수학여행 버스 좌석부터 숙소 배정까지, 손톱만큼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불만 없는 결과를 내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덕분인지, 남학생만 있는 고등학교인 덕분인지 분위기가 많이 달라 보인다. 2학기에 수학여행 가는 데 별다른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문득 교실 문에 붙은 푯말을 바라본다. 이 경계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서로를 고립시키기 위함인가. 학급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좋아하는 선생님을 위해 껌 종이로 감싼 분필을 건네던 아이들은 사라진 학교에 이제는 규정과 민원이 자리 잡았다. '학폭'을 비롯한 학교의 많은 부분은 이제 사법의 영역이 되었다. 이제 공정이란 이름으로 감독 교사는 앞에 앉은 학생이 뒤에 앉은 학생보다 단 몇 초라도 시험 문제를 먼저 보는 일이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
체육대회 날 나는 카메라를 들고 운동장에 있을 거다. 아이들이 줄다리기와 이어달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이 변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애타는 겨루기에서 승리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다.
운동장에는 능력을 뽐내며 쉼 없이 달리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관중석에 앉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이 아이들이 기꺼이 섞일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꿈꿔본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어깨동무'를 보고 싶다. 서로 많이 달라도, 그저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의 어깨를 걸고 함성을 내지르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교실 문의 푯말이 가로막지 못하는 마음의 길을 내는 것, 그리하여 아이들의 기억 속에 '어깨동무를 권하던 그리운 스승'으로 남는 것. 이제 교직에서 스승의 날을 맞는 날이 많이 남지 않은 내가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할 '소자회지'의 길이 아닐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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