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력 호황 올라탄 HD현대…정기선, 시총 200조 시대 열었다 [기업X-RAY]

이소연 2026. 5. 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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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 연결기준 연간 실적 추이. 한지영 디자이너.
HD현대가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조선 업황 회복과 전력기기 부문 호조, 방산 기대감 등 삼박자가 맞물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13일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9조6019억원, 영업이익 2조8348억원을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7%, 영업이익은 120.4% 증가했다. 단일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몸집도 커졌다. HD현대 상장 계열사 합산 시가총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201조9794억원을 기록하며 20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지난 2002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이후 24년 만이다. 다만 14일 기준, 주가가 다소 내려앉으며 192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정주영의 울산 조선소에서 출발…‘왕자의 난’ 거쳐 독립 그룹으로

HD현대의 전신은 현대중공업그룹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뿌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972년 울산에 조선소를 세우며 닻을 올렸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2년 현대그룹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인 이른바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현대그룹에서 독립했다. 실질적으로는 정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 전 국회의원의 소유였으나, 정 전 의원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그룹을 운영해왔다.

독립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은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지난 2010년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 정유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 2017년에는 현대중공업 산하 사업부를 현대건설기계 등 3개사로 분할했다. 지난 2019년에는 현대로보틱스를 출범시키며 복합 제조 그룹으로 진화했다.

정기선, ‘HD’ 달고 판을 바꾸다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 등 HD현대 경영진이 HD현대 50주년 비전 선포식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HD현대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22년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HD현대’로 사명을 변경했다. ‘인간이 지닌 역동적 에너지(Human Dynamics)’로 ‘인류의 꿈(Human Dreams)’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같은 해 3월에는 정 전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HD현대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정 회장은 지난 2025년 10월 HD현대 회장으로 선임되며 본격적인 오너 경영 3세 시대의 막을 열었다.

정 회장은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으며 역량을 쌓았다. 지난 2009년 현대중공업 기획실 재무팀 대리로 입사, 첫발을 디뎠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 MBA를 마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 등으로 경력을 다졌다. 지난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그룹에 복귀했다. 당시 그룹은 중국 조선사의 저가 공세에 부진의 늪에서 빠져있었다.

이에 정 회장은 선박 서비스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2017년 선박 부품과 애프터서비스를 주사업으로 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현 HD현대마린솔루션)를 설립했다. 이후 대표이사를 맡으며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성장을 이끌어갔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시가총액은 14일 기준 9조9530억원에 달한다.

조선과 전력기기, 동력 삼아 ‘퀀텀점프’…건설기계까지 고른 성장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HD현대삼호 조선소를 찾아 주요 생산 설비와 고위험 작업 현장을 점검했다. HD현대
HD현대그룹의 성장은 현재 조선과 전력기기 부문이 이끌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8조1409억원, 영업이익 1조356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0.2%, 영업이익은 57.8% 증가했다. 고수익 친환경 선박의 매출 비중 확대와 엔진 매출 증가, 해양 부문 수익성 개선이 실적을 끌어올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LNG 운반선 수요가 폭증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HD현대중공업은 조선·대형엔진부문 세계 점유율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HD현대삼호는 세계 4위 규모의 선박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력기기 부문의 HD현대일렉트릭도 매섭게 성장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1분기 매출 1조365억원, 영업이익 2583억원을 기록했다. 북미 전력 인프라 투자 지속과 회전기기 매출 성장세가 실적을 이끌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미국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초고압 변압기 수주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에 제2공장 건설에 착수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약 50% 늘릴 계획이다. 울산 공장과 북미 생산법인 증설이 마무리되면 성장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과 전력기기만이 아니다. 건설기계 부문의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글로벌 수요 회복과 산업용 엔진 성장 가속화에 힘입어 1분기 매출 2조3831억원, 영업이익 207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2%, 72.8% 증가했다. 전 사업 부문이 고른 성장세를 보이며 그룹 전체의 체력이 올라왔다는 평가다.

다만 에너지 중 정유 부문은 대외환경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놓여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분기 매출 7조7155억원, 영업이익 9335억원을 기록하며 선방했지만, 중동 리스크로 인해 안심하기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기선 체제의 다음 승부수는…미래형 조선소·SMR·MASGA

HD현대 사옥. HD현대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는 정 회장의 시선은 다음 10년을 향하고 있다. 조선 중심의 전통 제조 기업에서 에너지·데이터 기반의 미래 산업으로 체질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미래형 조선소’에 주목, 지난 2021년부터 미국 팔란티어와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해왔다. 가상·증강현실, 데이터, 로보틱스, 자동화 AI 등이 첨단 기술이 구현된 미래형 조선소 FOS다. 일부 성과도 있다. HD현대는 앞서 팔란티어 소프트웨어 도입 이후 선박 건조 속도가 약 30% 향상됐다고 밝혔다. 지난 1월에는 팔란티어와 수억달러 규모의 전사적 소프트웨어 공급 계약을 추가 체결하기도 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도 HD현대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해상용 SMR을 그룹 차원의 차세대 전략 사업으로 낙점, 선제적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22년 빌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업무협약도 맺었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는 기존 원자로 대비 40% 적은 핵폐기물을 배출하면서도 높은 열효율과 안전성을 가진 4세대 SMR이다.

마지막 승부수는 한미조선협력 사업인 ‘MASGA’로 꼽힌다. HD현대그룹은 향후 5년간 총 26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캐피털, 산업은행과 함께 50억달러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했고, 오는 2030년까지 약 15조원의 국내 투자도 진행할 방침이다. 미국 방산업체와 협력해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 자율운항 무인함정 시제함 공동 건조 작업 등에도 착수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베트남 중남부에 위치한 HD현대에코비나를 찾아 현장 설비와 안전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HD현대
HD현대 관계자는 “전 사업 부문의 수익성 개선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친환경·디지털·AI 등 미래 성장 사업에 집중해 2030년 매출 100조원 목표 달성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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