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슬픔 느껴진다”…‘모자무싸’ 속 진만의 시, 누가 썼을까? [송원섭의 와칭]

맑은 날이면
데리러 온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이와 엄마
강아지와 주인
밝아지는 창문
일요일입니다.
사람들 지나갑니다.
데리러 가는 길이면 좋겠습니다.
맞으러 가는 길이어도
좋겠습니다.
두 곳이어서
이곳과 다를 거라서
믿게 됩니다.
임곤택, 데리러 온다는 말
화제의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극본 박해영, 연출 차영훈, 이하 ‘모자무싸’)’에 등장하는 시들의 정체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모자무싸’의 남자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의 형 진만(박해준)의 과거 직업은 시인입니다. 촉망받는 시인이며 국문학도였던 진만은 몇 가지 충격적인 개인사를 겪으며 심한 우울증과 함께 더는 시를 쓰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학문의 길도 포기하고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만의 시로 극 중에 소개된 시는 모두 3편. 그런데 그중 2편이 임곤택 시인의 시였습니다. 6회에는 ‘이런 날은 살기 좋은 날/ 멀리 갔다면/ 돌아오기 좋은 날’이라는 임 시인의 ‘저녁의 신부 5’가 나왔고, 8회에는 기사 앞부분에 전재한 ‘데리러 온다는 말’에 등장했습니다.
이 시들은 모두 진만이 왜 시인의 길을 포기했는가 암시하는 듯한, 진만의 내면이 엿보이는 장면에 소개됐는데, 서정적인 영상과 시의 조화에 대한 좋은 반응과 함께 시청자들 사이에서 ‘너무 아름다운 시인데 누구의 시인지 궁금하다’ ‘(박해영)작가가 직접 쓴 시인가’를 놓고 많은 질문과 잘못된 답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 시들은 박해영 작가가 직접 고른 작품들입니다. 박 작가는 “평소 임 시인의 시를 좋아했다. 어려운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쉽게 쓴 것 같으면서도 담백한 슬픔이 깊게 느껴지는 시들이라 이 드라마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인 임 시인은 2004년 불교신문을 통해 등단,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입니다. ‘저녁의 신부 5’는 두 번째 시집인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에, ‘데리러 온다는 말’은 세 번째 시집 ‘죄 없이 다음 없이’에 수록돼 있습니다.

임 시인은 “박해영 작가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에 시를 인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대중적으로 그리 알려진 시도 아니고, 밝은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되려나 궁금했다”는 임 시인은 “드라마를 보고 나니 왜 그 시들을 원했는지 100% 이해했다. 너무나 장면과 잘 어울려서, 마치 내가 그 장면을 위해 시를 쓴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모자무싸’ 관계자는 “임 시인의 시가 ‘모자무싸’에 인용되는 것은 이 두 편이 전부”라며, “드라마 전반부의 진만이 어렸을 때 썼다는 시를 비롯해 드라마 후반에 등장할 시들은 박해영 작가가 직접 쓴 것들”이라고 전했습니다.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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