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악수, 9년 전과 달랐다…손이 보여준 ‘두 황제’ 기싸움 [View]

이승호 2026. 5. 1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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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환영 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의 손이 위로 올라가 있자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 손을 툭 치듯 아래로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시 찾은 베이징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느낀 공기는 과거와 달랐다. 9년 전 자금성을 통째로 비운 채 트럼프 대통령을 황제로 대접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4일엔 ‘투기디데스 함정’을 꺼내들며 자신을 ‘G2(주요 2개국)’의 황제로 인정하라고 압박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미·중이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는 역사와 세계, 인민들의 질문이자 양국 지도자가 함께 써야 할 시대적 답안”이라며 “2026년을 새로운 대국 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해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환영 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의 손이 위로 올라가 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툭 치듯 아래로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AP=연합뉴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충돌 끝에 전쟁으로 치닫는다는 국제정치학 개념이다. 과거에도 자신이 언급했던 이 개념을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꺼낸 건 미·중이 동등한 초강대국임을 강조하려는 시 주석의 전략적 레토릭(수사학)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양국 무역 갈등을 두고 “무역 전쟁엔 승자가 없다”며 “평등한 협상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생각은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의전에서 드러난다. 전날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내린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건 지난 2022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빠지며 사실상 은퇴한 한정 부주석이었다. 9년 전 공항에 나왔던 이는 양제츠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다.

지난 2017년 11월 중국 베이징 자금성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를 향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청한 시 주석의 손도 트럼프 대통령보다 눈에 띌 정도로 높았다. 9년 전 트럼프 대통령과 눈이 마주치자 눈치를 보듯 슬며시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을 때와 달랐다.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가 풍년을 기원했던 천단 공원을 찾은 것도 자금성을 안내했던 때와 달리 ‘두 황제’가 나란히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시 주석은 미·중 갈등의 ‘레드라인’도 대만 문제라고 단언했다. 대만 문제를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미국이) 부적절하게 처리하면 양국관계가 충돌하거나 심지어 파국으로 치달아 중·미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으름장도 놨다. 대만해협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엄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중국 베이징 천단(天壇)을 둘러보고 있다. 천단은 명·청 시대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중국의 대표적 황실 제례 유적지다. 로이터=연합뉴스

시 주석의 공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맞대응을 자제했다.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로 전화를 걸고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 왔다.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라며 개인적 친밀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방중 수행단에 포함된 사실을 거론하며 “그들은 무역과 사업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 전적으로 상호주의적일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 유치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등 경제적 실리를 우선시하는 메시지로 읽혔다. ‘대만 문제도 논의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도 답변을 삼갔다. 지난해 150%가 넘는 관세를 중국에 부과하며 압박을 가하던 모습과 달랐다.

이런 구도는 양국의 바뀐 역학관계를 반영한다. 이란 전쟁 이후 복잡해진 미국의 상황 탓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 법원이 대중국 관세 부과 권한에 제동을 건 데다, 이란 전쟁이 물가를 끌어올리며 중간선거 부담도 커졌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골치 아픈 문제들에 시달리며 힘이 떨어진 상태로 베이징을 방문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김지윤 기자


시 주석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여건을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란 전쟁 종전을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절실하지만 중국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봤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세상은 (2017년에) 멈춰 서 있지 않았다. 중국은 당시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 국빈 만찬에서 잔에 입을 대고 있다. 건배주가 중국 장성 와인으로 알려지며 금주가로 알려진 트럼프의 음주 여부를 둘러싼 추측이 나왔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AFP=연합뉴스

실제로 이란 문제를 포함해 민감한 쟁점들은 양국이 뚜렷한 해법을 도출하거나 성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백악관은 “양국 정상이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이란 핵무기 불허에 합의했다”며 “시 주석은 또한 중국이 호르무즈해협의 군사화와 그 이용에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경진 기자

중국도 “양국 정상은 중동정세, 우크라이나 위기, 조선반도(한반도) 등 중요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의견을 교환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외교 용어에서 “의견 교환”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밝혔을 뿐 합의하지 못했을 때 사용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만찬에서 잔을 들며 건배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만 시 주석 역시 대만(Taiwan), 관세(Tariff), 첨단기술(Technology) 규제 등 자신이 노린 3T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만족스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경기 둔화와 청년 실업 등 심화한 국내 경제 압박에 대한 부담 속에 미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기 쉽지 않다. 일단 베이징에서의 만남 첫날 두 정상은 갈등의 전선을 확대(빅 파이트)하거나 대타협(빅딜)을 내는 정면승부보다 기존 상황을 관리하는 ‘스몰 딜(Small Deal)에 스몰 파이트(Small Fight)’ 정도에 만족했다.

베이징·워싱턴=신경진·김형구 특파원, 이승호·이근평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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