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약과 인류 역사 유기체로 꿈틀거린다

새해마다 반복되는 ‘창세기 완독, 레위기 포기’의 굴레는 성경을 맥락 없이 단편적인 지식으로 소비하는 데서 기인한다. 앞뒤 맥락을 모른 채 활자만 쫓다 보면 율법은 끊임없는 잔소리처럼 느껴지고 예언서는 낯선 나라 옛이야기로 전락하기 일쑤다. 박양규 목사의 신간 ‘맥체인 수업’(샘솟는기쁨)은 180여년 전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 목사가 제안한 통독 정신을 오늘날 흐름 속에서 재해석하며 성경 66권을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서울 삼일교회에서 교회학교를 총괄했으며 현재 유튜브 채널 ‘교회교육연구소’ ‘큐리랜드TV’를 운영하며 아신대 등에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성경 배열 방식에 있다. 저자는 성경의 순서를 과감히 뒤섞는다. 첫 단계는 창세기가 아니라 마가복음과 베드로전서다. 로마의 박해 속에서 고난을 통과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절박한 현장으로 독자를 먼저 밀어 넣는다. 평안할 때 성경을 지식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삶의 벼랑 끝에서 붙들었던 말씀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욥기와 전도서를 배치해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을 직면하게 한다. ‘고난은 정말 하나님의 징벌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수천 년 전 욥의 울부짖음과 오늘날 고난받는 현대인의 일상을 마주하도록 한다. 저자는 욥기 텍스트를 통해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열어두며 성경이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의 고통에 공감하며 길을 함께 찾는 동반자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서양사와 헬레니즘을 전공한 학자답게 성경의 역사적 맥락을 시각화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책 곳곳에 배치된 ‘박물관에서’ 코너는 책의 백미다. 예를 들어 아시리아의 침공 앞에 풍전등화였던 히스기야 왕을 다룰 때 대영박물관의 고고학 유물을 연결해 당시의 긴박한 정세를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성경이 추상적인 신화가 아니라 인류의 도도한 역사 속에서 실제 작동했던 사건임을 드러내는 장치다.
신학적 정교함도 놓치지 않는다. 레위기의 반복적인 제사 규례는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출애굽기의 유월절 사건은 요한복음의 어린양 이미지와 맞물린다. 구약의 흩어진 조각들이 신약과 만나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개별 구슬이던 말씀들이 ‘그리스도’라는 실에 꿰어 보석이 되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왜 성경은 격리된 언어로 존재하는가”라는 저자의 치열한 고민은 문학과 예술, 철학적 인용을 통해 해소된다. 광야 공동체와 고린도교회의 갈등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문제와 겹쳐지며 바벨론 포로기의 절망은 페르시아의 등장이라는 국제 정세와 연결돼 설명된다. 성경을 교회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공용어로 치환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1843년 29세에 요절한 맥체인 목사가 남긴 영적 유산을 되짚는다. 산업혁명의 격변 속에서 그는 모든 성도가 성경을 완독해 영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성경 읽기표’를 고안했다. 강단에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와 빈민, 병자들의 고통스러운 삶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던 중 장티푸스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삶과 말씀은 오늘날까지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등불처럼 이어지고 있다.

박 목사는 인공지능(AI)이 방대한 지식을 집대성해 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적 고뇌에 대한 해답은 변하지 않는 성경 안에 있음을 역설한다. 기술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성경은 여전히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매년 작심삼일로 끝났거나 중도에 포기했던 성경 통독의 기억이 있다면 이제는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다시 시작해볼 때다. 체계적인 52주 길잡이를 따라 흩어진 말씀의 조각들을 연결하다 보면 어느덧 성경 통독은 무거운 숙제가 아닌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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