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용 (5) 결혼 후 美 유학길… 생계 위해 공인회계사 시험 도전

김아영 2026. 5.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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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동역자인 유성희 선교사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2년이었다.

그러나 만남의 설렘도 잠시 그해 아내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현실을 돌파할 길은 전공을 회계학으로 바꾸고 험난한 미국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모든 과정 뒤에는 아내 유성희 선교사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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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석사 과정·재정난 이중고
그 무렵 임신한 딸 장애 알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출산 후 돌봄 온힘
아내 눈물겨운 헌신 속 가장 역할
박희용 선교사의 아내 유성희 선교사가 1999년 심장 수술을 앞둔 딸 은지양을 안고 있다.


평생의 동역자인 유성희 선교사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82년이었다. 그러나 만남의 설렘도 잠시 그해 아내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1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편지로 마음을 이어갔고 마침내 93년 10월 9일 하나님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나는 유학 수속을 마치고 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가난과 절망으로 점철된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길은 오직 학업뿐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에 진학해 경제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여전히 가혹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경제학 석사 과정의 무게와 현실적인 궁핍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던 중 딸 은지가 태어났다. 은지가 아내의 배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상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했다. 태아의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자 의사들은 한 달 내내 임신 중절을 강요하다시피 권고했다. 태어나도 심각한 장애를 가질 확률이 99%이며 생존 자체가 기적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이었다. 아기를 가졌다는 기쁨은 순식간에 공포로 변했다. 나는 갈림길에 섰다. 결국 내 오랜 열망이었던 경제학 공부를 내려놓고 가정을 선택했다. 학위보다 소중한 것은 생명이었다.

하나님께 매달렸다. “주님, 우리 은지를 제발 살려주세요.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눈물로 간청하며 하나님께 또 하나의 소망을 구했다.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현실을 돌파할 길은 전공을 회계학으로 바꾸고 험난한 미국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됐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저녁에는 아픈 은지를 돌보며 아내의 짐을 나눴다. 내 공부 시간은 모두가 잠든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였다. 하루 5시간 취침을 원칙으로 삼고 3년을 버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책상 앞을 지켰다. 토요일이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잠보다 절박함이 더 컸다.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신앙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1년 과정의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모두 마쳤다. 주위에서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제정신이냐”며 만류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해도 되지 않느냐는 조언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순간에도 내 삶의 바탕인 믿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영적인 훈련이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자 동력이 됐다.

모든 과정 뒤에는 아내 유성희 선교사의 눈물겨운 헌신이 있었다. 아내는 사실상 소녀 가장이었다. 시댁을 살뜰히 돌보는 것은 물론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 경제를 책임지며 가장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영광스러운 합격은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덕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세상적인 성공을 좇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인내의 시간은 나를 회계사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말라위의 척박한 땅에서 수천 명의 아이를 품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길러줬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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