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리가 입헌 민주주의자인 이유

2026. 5. 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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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학자

대통령은 5월 6일의 국무회의에서 “개헌에 반대하는 사람은 불법 계엄 옹호론자”라고 했는데, 찬찬히 생각해 볼 점이 여럿이다.

첫째, 헌법은 ‘권리 장전’이라 불린다. 시민 개개인의 자유의사를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는 무정부보다 적법한 정부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를 지키는 좀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기에, 권력은 위임하고 그 대신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을 갖게 되었다. 이를 보장하는 공문서가 헌법이다. 시민은 자유롭게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다. 정권을 비판한다고 탄압받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를 선호한다고 처벌받지 않는다. 헌법에도 반대할 수 있고 당연히 개헌에도 반대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채택한 입헌 민주주의다.

「 개헌 찬반이 계엄 찬반으로 치환
헌법에 반하는 개헌 추진의 방식
대통령 권력을 과용하지 않아야
개헌, 민주적이고 입헌적인 과업

둘째, 이 대통령이 ‘불법 계엄 옹호론자’라는 강한 표현을 쓴 이유는 다수 시민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다수가 원하는 바를 정부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이지만, 다수가 원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맞는 최선의 종교를 국민 다수의 동의를 구해 결정할 수 있을까. 언론의 자유를 다수가 반대한다고 폐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민주적이기는 하나 입헌적 원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보다 입헌주의가 우선한다. 소수 의견을 가졌다고 억압하지 않아야 헌법이 있는 민주주의가 된다.

셋째, 의견이 다르다고 말하는 대신 상대를 악한 존재로 규정한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과거 군사정권을 경험했던 세대에게는 익숙한 지배 논리가 있다. 그것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치환한 것에 있다. 민주주의자는 두려움을 동원하는 통치 언어의 사용을 피해야 한다. 불법 계엄에 반대하면서도 얼마든지 개헌에 반대할 수 있다. 개헌 반대를 불법 계엄 옹호론으로 치환하면 그 역시 억압이 될 수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넷째, 이 대통령은 “그간 야당도 다 동의한다고 해온 것”을 추진하는 개헌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항변한다. 우리는 타자를 대신해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받아들일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위해 한 일 또한 잘못일 수 있다. 과거 훈육을 중시하는 선생님들이 “다 너 잘되라는 것”이라며 매를 든 것 때문에 상처받은 이가 많다. 일당제가 아닌 다원주의 정치체제에서는 늘 찬반이 있다. 그래서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 여야 합의라는 조건에서만 여당 시민만이 아니라 야당 시민도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며 통치에 순응할 수 있다. 그런 조건 없이 “네가 말한 바를 내가 하는 것이니 따르라”라고 할 수는 없다.

다섯째, 헌법은 자주 바꿀 수 없는 공문서다. 이 대통령은 “몸이 커져서 옷이 맞지 않으면 옷을 바꿔야 한다”라는 비유를 들었는데, 시대 변화나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것은 법률의 역할이다. 자주 바꿀 수 없는 것이 헌법의 본질이자 특성이다. 게다가 우리 헌법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경성헌법 체제를 택하고 있다. 그런 바꾸기 어려운 헌법을 바꾸려 한다면 만장일치에 가까운 정치적 합의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야당과 합의 없는 선거법 개혁이 극단적 양극화 정치로 이어진 것을 돌아보면, 개헌은 더더욱 합의가 절실한 일이다.

여섯째, 5월 7일 국회에서 개헌안 표결이 있기 하루 전날 대통령이 무리한 발언을 한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국무회의라는 자리도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제 헌법은 ‘자의적 지배’를 제어하기 위해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 헌법도 그렇게 되어 있다.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도 대내적으로는 행정 수반일 뿐, 입법부나 사법부를 관장할 권한이 없다. 행정 수반이 강한 언어를 앞세워 국회를 압박하는 것은 헌법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다. 국무회의의 심의 및 의결 사항이 아닌 의제에 대한 대통령의 훈시는 적절치 않다.

일곱째,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다면 대통령도 그럴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의 위임은 곧 권력과 권리의 교환을 내용으로 한다. 권력을 위임받는 자는 권리를 제한받는다. 사적인 재산형성 과정을 포함해 개인 이력과 정보를 공개하고 심사받아야 한다. 자신의 권리나 자유를 위해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무엇인들 못할쏘냐”가 아니라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오래전 존 로크가 말했듯, 통치자는 피치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헌신할 때만 정당성을 갖는 특별한 존재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한다고 선서해야 취임할 수 있다. 헌법 준수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개헌에 앞장서면, 될 개헌도 되지 않는다. 이 점을 중시했으면 한다. 개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여야의 자치적 합의에 맡길 때에만 실현될 수 있는, 꽤 큰 상호 인내가 필요한 입헌적 과업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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