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시선] 지방선거 이후 날아들 청구서들

조민근 2026. 5. 1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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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논설위원

“이 정부의 특징은 좌고우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례도 따지지 않는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뿐이다.”

지난 3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이 결정된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가 한 얘기다. ‘지나치게 파격적 대책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톱다운’식의 결정이었다는 것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하기야 비단 석유 최고가격제뿐이겠나. 이 정부는 현안 대응에서 유난히 화끈한 대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강남벨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꿈틀대자 아예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어버린 게 대표적이다.

「 정부의 화끈한 정책 뒤엔
늘 화끈한 후유증 따라
성급한 낙관도 경계해야

이런 대책들은 관료제의 통상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선 나오기 힘들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석유 최고가격제의 물가안정 효과를 옹호하면서도 “(개인적으론) 마뜩잖다”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산업부가 발령하는 자원안보 위기 경보의 경우 ‘관심-주의-경계-심각’의 네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부처 내부적으로 각 단계에 맞는 정책 옵션 매뉴얼을 갖고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최악의 상황인 ‘심각’ 단계에서나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유가 있다. 정부가 가격에 직접 손대는 건 효과가 즉각적이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크다. 별다른 수가 없을 때 쓰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다. 정유사 손실 보전에 들어가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위기 초기 단계에 가장 신경 써야 할 수요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도 왜 이런 화끈한 대책들이 이어질까. 아마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적 가성비보다 정무적 효과를 우선했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코스피가 개장 직후 8000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이런 정책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주식시장이다. 연초 4000 초반이던 코스피지수는 중동전쟁 와중에도 파죽지세로 오르며 8000선에 육박하고 있다. 가장 큰 동력은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붐에 올라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놀라운 실적이다. 하지만 또 다른 요인도 근저에 있다. 바로 ‘좌고우면하지 않는 정부’다. 선거 전까지는 어떻게든 증시를 지탱해줄 것이란 믿음 아닌 믿음이 상당수 투자자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 정부의 각종 증시 활성화 정책과 함께 국민연금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가 결정한 중장기 자산배분 계획에 따라 국내외 주식, 채권 등 자산군별로 목표 비중을 관리한다. 특정 자산 비중이 이 목표치를 크게 벗어나면 팔고, 부족한 자산은 채워 넣는다. 이른바 ‘리밸런싱’이다. 이를 통해 시장이 과열됐을 때 차익을 실현하고, 저평가된 자산을 사들여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꾀한다. 그런데 연초 국민연금 기금위는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높이고, 리밸런싱도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국내 주식 보유 한도가 꽉 찬 상태에서다. 당장 투자자들은 반겼지만, 조변석개식 운용에 연금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게 나왔다. 글로벌 증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대 후반에 불과하다. 연금의 덩치가 커지는 만큼 자연스럽게 국내 비중은 줄이고, 해외 투자 비중을 늘려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국내 투자 비중을 늘려놓으면 정치적 압력 속에서 다시 줄이기 쉽지 않다. 당장 이달 연금의 중장기 전략 결정을 앞두고 국내 투자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이려면 국내 증시가 일시적 경기 호황이 아닌 구조적이고 지속가능한 상승 국면에 돌입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문제는 뒷감당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AI 시대의 장기전략’이란 글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국민배당금’이란 휘발성 높은 표현이 논란을 낳았지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건 그 전제와 가정이다. 김 실장은 현재의 반도체 호황과 주가의 상승이 단순한 경기순환 사이클상의 업황 회복이 아니라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과정, 즉 ‘체제 전환’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정부가 기대하는 초과 세수 역시 일회성이 아닌 구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 이후 각종 정책의 비용 청구서가 속속 날아들 예정인 상황에서 올해 예상되는 초과 세수는 정부 입장에서 단비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화끈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믿는 구석’이자, 연일 확장재정론이 등장하는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구조화할 수 있다는 건 김 실장 자신도 밝혔듯 아직은 낙관적 가설일 뿐이다. 화끈한 정책만큼이나 당국의 섣부른 낙관도 후유증이 클 수 있다. 낙관론에 기대기보단 그 낙관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정책 설계가 더 필요한 때다.

조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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