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아트다이어리] 엔비디아?!

질투(jealousy)는 파괴적 힘이 세다. 때로 개인은 물론 나아가 한 나라의 역사를 흔들 만큼이나 강력하다.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으로 ‘부러움(envy)’이 있다. 질투의 공격성보다는 내면적 고뇌를 지닌 것으로, 쓰기에 따라 창조적 동력이 될 수 있는 개념이다. 라틴어로 ‘엔비디아(invidia)’라 부르는데 이 어휘가 처음 등장한 것은 5세기경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다. 그는 부러움의 원형을 이렇게 예시한다. 젖먹이 어린 동생이 엄마의 품에 안겨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을 떨어져 바라보는 형의 감정과 같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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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의 고뇌를 지닌 ‘엔비디아’
시선의 통합성이 사랑의 원형
엔비디아 작명, 선견지명이었나
」

얼마 전까지 가졌던 엄마와의 일체감과 충족감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심리 기제가 바로 이 개념의 원조라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어원적으로 ‘보다(videre)’와 부정적 접두사인 ‘인(in)’이 결합된 형태인 바, 엄마 품의 동생을 ‘씁쓸한 시선(bitter look)’으로 보는 형의 상한 마음을 대변한다.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상주의 작가 중, 미국 출신의 작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가 있다. 그녀의 작품 ‘아기의 첫 애무’(1891·사진)는 위에 든 사례에 딱 들어맞는다. 아기와 엄마 사이의 시선이 서로 깊이 상응하고 하나로 합치되면서 일종의 소우주를 이룬 듯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고 그림 밖에 있는 아기의 형이자 그림을 보는 관람자이다. 엄마 품에 안겨 행복하게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동생과 그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교차 속에서 형이 갖게 되는 감정이 핵심인 것이다.
그림 속에서 아기와 엄마는 타자의 개입이 없는 완벽한 하나의 통합성을 보인다. 그리고 주체와 타자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이 통합성이야말로 전정한 사랑의 원형인 것이다. 때문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 언어를 습득하게 되면 아이는 이미 실낙원(失樂園)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인간은 상실된 통합을 욕망하며 그 결여를 메우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엄마 품에 안긴 동생을 보는 창백한 얼굴의 형은 잃어버린 ‘낙원’을 목격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결여’를 실감한다. 자신에겐 없기에 절실히 동경하는 것인데 이 욕망하는 대상의 궁극이 바로 ‘사랑’이란 이름의 통합성인 것이다. 라캉은 “욕망이란 결여와 뗄 수 없는 구조를 갖는다”면서 특히 ‘본다’는 행위에 집중하여 이 감정의 구조를 설명한다. 모성과 나누는 시선의 통합성은 주체가 욕망하는 대상이자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사랑의 본체인 것이다. 그리고 시각은 언어에 앞서는 것이기에, 회화는 언어가 미처 구사하지 못하는 근원적 내용을 표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파리 인상주의 그룹의 주요 멤버였던 카사트가 그린 모자 및 모녀 그림은 대략 140여 점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녀는 19세기 미술사에서 엄마와 아이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작가는 모성 존재와 어린아이 사이의 깊고 미묘한 심리를 정교한 묘사와 섬세한 색채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을뿐더러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카사트가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리면서 갈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실제로는 갖지 못한 아기와 엄마의 정서적 친밀감과 유대감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화가가 되고자 파리로 온 자신을 따라 머나먼 필라델피아에서 이주해 온 모친과의 친밀한 관계였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카사트의 작품은 단순히 “여성적”이거나 “모성 예찬”이라고만 치부될 수 없다. 인간 주체의 근본 심리를 건드리고 또 언어를 넘어서는 심연의 울림이 있는 까닭이다. 최근 카사트에 대한 대형 전시가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등의 여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바야흐로 19세기 후반 파리의 아방가르드에 속했던 독보적 미국인 여류 작가의 진면모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주식으로도 유명한 엔비디아((NVIDIA)의 창업주 젠슨 황이 떠오른다. 그는 이 이름으로 세운 자신의 회사가 장차 수많은 다른 기업의 부러움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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