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만주사 처방 15초컷”… 청소년 처방 5개월 새 5배 늘어
“의사한테 체중 부풀려 말하면 끝”
의원 한곳서 5만여건 ‘공장식 처방’
부작용 위험 커도 제재 규정 없어

지난 12일 ‘비만치료제 성지’로 알려진 서울 종로5가의 한 의원은 20여명의 환자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는데, 정상 체중으로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위고비 2.4㎎ 1펜(주사제 단위)을 38만원대에 처방받은 한모(38·여)씨는 “여기가 일대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의사가 키와 체중을 묻기는 했지만 직접 측정하지는 않아도 됐다. 대기실에 날씬한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의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마운자로를 처방받은 대학생 김모(23·여)씨는 “정상 체중이지만 체중을 조금 부풀려 말하고 최근 살이 급격히 쪘다고 하니 처방을 해줬다”며 “진료실에 들어가 처방전을 받기까지 딱 15초 걸렸다”고 말했다. 비만치료제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비만 환자에게 처방하도록 돼 있다. 청소년은 체중이 60㎏ 이상 돼야 하는 등 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인근 약국 약사는 “요새는 청소년들도 비만치료제를 사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정상 체중 환자도 손쉽게 비만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고 알려진 종로5가 일대 의원에는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14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제출받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가장 많이 처방한 의원 상위 1~3위와 조제 약국 상위권이 모두 종로구에 있다.
종로구의 한 의원은 2024년 10월 위고비 국내 도입 이후 지난 3월까지 무려 5만999건이나 처방 점검을 했다. 지난해 8월 마운자로 국내 출시 이후 처방 점검 건수가 가장 많은 의원(종로구 소재)도 3만1915건 처방 점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짧은 상담만으로 ‘공장식 처방’을 해주고 처방 비용이나 약값이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다는 입소문을 탄 영향이다.

심평원에 따르면 위고비·마운자로의 국내 도입 이후 누적 처방 점검 건수는 지난 3월까지 207만2485건에 달한다. 최근 들어서는 마운자로가 체중 감량 효과가 크다는 소문이 확산하면서 처방이 급증하고 있다. 위고비보다 10개월 늦게 출시됐지만 3월까지 누적 처방 점검 건수는 97만7310건으로, 위고비 처방 건수(109만5175건)의 89.2%까지 치고 올라왔다.
의료기관이 BMI 측정 없이 비만치료제를 처방하는 건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비만치료제는 금기 의약품이 아니므로 의사 판단에 따라 처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비만학회 이사인 홍용희 순천향대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충분한 진단 없이 공장식 처방을 하는 것은 의사의 도덕적 해이”라며 “치료 경과를 확인하기 어렵고 안전성 우려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0월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처방 가능 연령을 18세 이상에서 12세 이상으로 확대했는데, 그 이후 청소년 비만치료제 처방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3월까지 10대 대상 비만치료제 처방 점검 건수는 2만5150건이다. 10대의 마운자로 처방 점검은 지난해 10월 380건에서 올해 3월 1888건으로 5배 증가했다. 해당 기간 누적 처방 점검 건수는 8136건이었다. 같은 기간 10대의 위고비 처방 점검은 914건에서 2213건으로 2.4배 늘었고, 누적 처방 점검 건수는 1만7014건으로 집계됐다.
위고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에서 청소년 대상 안전성 승인을 받았지만 성장기 청소년은 성인보다 부작용 우려가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약처는 지난해 “12세 이상 청소년은 성인보다 담석증·담낭염·저혈압 등의 부작용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며 “영양 섭취 부족과 급격한 체중 감소가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고도비만이나 성인병 위험군 청소년은 적절한 선에서 비만치료제를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비만에 대한 환경적·심리적 요인 등 분석 없이 미용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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