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테크 굴기 현실이 되다
달라진 중국 기업의 ‘성장 공식’
“기술이 먼저다. 좋은 제품은 알아서 따라온다(Technology comes first, then great products follow).”
지난 4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 드리미테크놀로지의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 중국 기업의 성장 공식은 분명했다. 빠르게 따라잡고, 더 싸게 파는 것.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추격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날 드리미가 강조한 출발점은 달랐다. 무엇을 얼마에 팔지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발표 내용 가운데는 로켓카처럼 상용화 가능성을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비전도 포함됐다. 그럼에도 드리미 측은 “우리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안다. 모든 도약은 ‘그건 불가능하다’는 말에서 시작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달라진 중국 기업의 성장 공식을 살펴봤다.

로청 기술→‘자율주행’ 스케일업
행사장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로켓카’였다. 로켓 부스터와 자율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한 콘셉트 모델 ‘네뷸라 넥스트 01 제트 에디션’이다. 드리미에 따르면 이 모델은 맞춤형 이중 고체 로켓 부스터 시스템을 적용해 최대 100kN(킬로뉴턴) 추력을 낸다. 반응 속도는 150밀리초 수준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시간도 1초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로봇청소기 기업이 신제품 발표 무대에서 로켓카를 꺼내든 것 자체가 의아했다. 상용화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왜 이것을 만들까”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드리미의 답은 단순했다. 만들고 싶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존 워너(John Warner) 드리미 모빌리티 부문 연구개발(R&D) 총괄은 “자동차 시장 진출은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접근법이 조금 달랐다. 어떤 차를 만들지 고민하기보다 전기 추진과 섀시 역학, 자율주행을 위한 라이다와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의 한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부터 따졌다”고 설명했다. 로켓카를 내세운 배경에 자신들의 엔지니어 철학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후 발표였다. 콘셉트 모델은 단순 ‘쇼케이스’ 용도가 아니었다. 드리미는 로켓카를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기술 ‘종착점’을 먼저 제시한 뒤,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기술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배터리와 섀시, 자율주행용 센서, AI 시스템 등은 별도 조직에서 개발 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자율주행용 라이다(LiDAR) 기술이다. 드리미는 로봇청소기와 자동차 자율주행 간 기술 유사성을 강조했다. 존 워너 총괄은 “로봇이 집 안에서 움직이든 도로 위를 달리든 본질은 같다”며 “차는 더 복잡한 형태의 로봇일 뿐”이라고 말했다. ➊ 센서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➋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로를 판단한 뒤 ➌ 모터로 움직인다. 자율주행차 역시 같은 구조라는 게 드리미 설명이다. 인식·판단·제어 3가지 기술 축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 자동차용 라이다 기술 ‘DHX1’이다. 드리미에 따르면 DHX1은 최대 600m 수준의 장거리 인식 성능을 갖췄다. 반사율이 낮은 물체도 400m 거리에서 감지할 수 있다. 또 300m 이내에서는 교통 콘이나 소형 동물 같은 작은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한 데이터 압축과 필터링 기술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제이크 마 드리미 네뷸라 사용자 경험 총괄은 “단순 센서가 아니라 인식·판단을 연결하는 통합 시스템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 영역도 자체 개발 중이다. 드리미는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를 넘어 ‘로봇화’ 단계로 진입했지만 섀시(차의 뼈대) 구조는 여전히 기존 유압 기반 설계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자체 아키텍처 ‘GASA’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에 최적화한 섀시 구조를 설계 중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후륜 조향과 벡터 제어 기술(바퀴마다 힘을 다르게 조절하는 방식)을 결합한 시험용 제품을 2026년 6월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회전 반경을 5m 이하로 줄인다는 목표다.
제동 시스템 역시 기존과 다른 접근을 택했다. 유압 대신 전자식 제동(ENB) 구조를 적용해 반응 속도를 80밀리초 이하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존 워너 총괄은 “자율주행 환경에서는 기계식 압력 전달보다 전자식 제어가 더 적합하다”며 “이중·삼중 안전 구조를 적용해 일부 시스템이 고장 나더라도 보조 시스템이 차량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해 레벨4 자율주행에 필요한 안전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전했다.

드리미 가전에 ‘제미나이’ 더한다
중국 기업은 오랫동안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외부 협업에 소극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사뭇 다르다. 드리미는 필요에 따라 글로벌 빅테크와 손잡는 방식을 택했다.
이날 드리미는 자사 가전에 구글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를 결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체 개발한 AI 모델과 제미나이를 함께 활용하는 구조다. 현장에서 만난 드리미 관계자들에 따르면 제품 전반에 적용하는 방식과 일부 기능에만 활용하는 방식 모두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특히 냉장고 사업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드리미가 공개한 ‘N1’ 냉장고는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카메라 하나에 의존하지 않는다. 지문과 음성, 얼굴 인식을 함께 활용해 사용자를 구분한다. 여기에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해 심박수와 수면, 체중 같은 데이터까지 함께 읽어낸다. 단순히 식재료를 보관하는 기기가 아니라 사용자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장치에 가깝다.
N1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식단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운동을 마친 직후라면 전해질이 많은 음료를 추천하는 식이다. 모한 후어(Mohan Huo) 드리미 냉장고 부문 프로덕트 매니저는 “냉장고는 더 이상 보관 기기가 아니라 사용자 건강을 이해하는 지능형 시스템이 될 것”이라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에게 맞는 식단과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능을 구현하려면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드리미 설명이다. 이에 드리미는 구글과의 협업을 선택했다. 모한 후어 매니저는 “단순 클라우드 사용뿐 아니라 제미나이와 드리미 자체 AI 모델 등을 결합할 예정”이라며 “이번 협력으로 식재료 인식 범위가 기존 1800종에서 1만종 이상으로 확대되고, 식재료 인식 정확도 역시 기존 95%에서 97%로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모듈형 스마트폰’ 신시장 개척
중국 기업은 ‘카피캣(copycat)’ 평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기보다 기존 시장에서 가격을 앞세워 점유율을 늘려가는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드리미 글로벌 제품 부문 홍보 총괄 조이스는 “습관적인 모방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질문에서 제품을 고민했다”며 “스마트폰이 어떤 모습이 돼야 할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날 내놓은 스마트폰도 같은 맥락이었다. 드리미는 이번 행사에서 ‘모듈형 스마트폰’ 콘셉트인 ‘오로라 넥스(Aurora Nex)’를 공개했다. 본체에는 기본 렌즈만 있고, 모듈을 자석으로 탈착하는 형태다. 선택 가능한 모듈은 ‘액션 카메라 모듈’ ‘망원형 렌즈 모듈’ ‘위성 통신 모듈’ 등 5가지다.
칼(Karr) 드리미 오로라 글로벌 제품 총괄은 “스마트폰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물리적 공간의 한계는 분명하다”며 “결국 기능 간 절충이 불가피하다. 오로라 넥스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기능만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행할 때 여러 대의 카메라를 챙겨본 경험이 있다면 모듈형 제품의 필요성을 체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털어놨다. 모듈 간 결합 안정성과 발열, 전력 효율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드리미는 이를 위해 카메라 구조를 바꾼 설계를 10가지 이상 시험하며 최적 조합을 찾았다. 초기 검증 단계에만 6개월이 걸렸고, 총 투자 규모도 1억달러에 육박했다는 설명이다. 일회성 연구개발(R&D)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드리미는 영상 기술을 장기 핵심 분야로 보고 별도 연구 기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매년 수익의 일정 비율을 3~5년간 첨단 R&D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300명 이상의 전담 연구개발 인력도 구축했다.
핵심 매출원인 로봇청소기 부문에서도 신시장 개척을 진행 중이다. 드리미는 로봇 팔이 부착된 ‘사이버 10 울트라’,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사이버 X’ 등 새로운 형태의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마이클 멍 드리미 로봇청소기 사업부 총괄은 “꾸준한 제품 개발을 위해 연간 로봇청소기 사업부 매출의 8% 이상을 R&D 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리미 전체 매출은 2024년 기준 18억7500만달러(약 2조7400억원)다. 사업부별 매출 비중은 공개된 자료가 없다. 다만 관련 업계는 로봇청소기 사업이 핵심 매출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매년 상당 규모 자금이 로봇청소기 R&D에 투입되는 셈이다.
[샌프란시스코 =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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