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들 美SEC 공시에 “생산·포용금융에 건전성 악화 우려”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과 ‘포용 금융’ 기조로 인해 자산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현지 사업보고서에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향후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 부담이 더욱 커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2025회계연도 사업보고서를 SEC에 제출했다. 이들 회사는 현지 거래소에 주식예탁증서(ADR) 형태로 간접 상장했다.
각사 보고서 중 ‘투자 위험 요소’ 항목에는 생산적·포용 금융으로 인한 경영 방침 변화 가능성이 적혔다. KB금융지주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취약 차주(대출자)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도록 장려하고 있다”며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기존 영업 관행을 조정하고, 상대적으로 신용 위험이 높은 차주에 대한 대출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산 건전성이 악화하거나 연체율이 상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한금융도 보고서에서 정부의 포용 금융 기조를 언급하며 “정책 대응 노력으로 인해 채무불이행 위험을 높일 수 있고, 연체율 증가와 자산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생산적 금융 정책으로 중소기업 대출 등의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담겼다. 우리금융은 보고서에서 “은행들이 전략적·생산적 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확대하고, 기존의 가계 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도록 정부가 장려하고 있다”며 “원래대로라면 지원하지 않았을 부문에 금융 지원을 제공해야 해 의도치 않은 비용이나 손실을 부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KB금융도 “혜택을 받는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가 부채를 제때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개선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며 부실 악화 우려를 내비쳤다. 이 같은 내용은 금융감독원에 공시되는 국내용 사업보고서에서는 빠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에선 기업 실적에 영향을 주는 위험 요소들을 미리 고지하지 않으면 주주들에게 집단 소송을 당할 수 있어 정책적 배경 등을 자세하게 공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동 전쟁 여파에다 생산적·포용 금융 기조가 가속하며 금융사의 건전성 관리 부담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의 고정이하여신(NPL·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규모는 13조620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12조6152억원)보다 7.97% 늘었다. 같은 기간 총여신이 5.74% 늘어난 점을 비교하면 부실대출 증가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증가세다. 3월 말 기준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단순 평균 연체율은 0.53%로, 전 분기보다 0.08%포인트 올랐다. 연체 잔액도 3조152억원으로 3개월 사이 4859억원 증가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유가·고환율 국면이 지속하면서 취약 차주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정부 기조로 신용 위험이 높은 대출이 늘어나면 손실 부담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은 복지 정책을 하는 곳이 아닌데 은행이 민간 자본으로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같은 정책 기조가 지속하면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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