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하루 1700원으로도 살 수는 있었다

이종범 2026. 5.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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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만 원 쓰던 직장인의 삶, 뼈해장국 한 그릇에서 다시 생각한 은퇴 후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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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기자]

퇴직자들은 하루 평균 얼마를 쓰며 살까?
어제 점심, 뼈해장국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퇴직 전에는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보다, 점심을 누구와 먹는지가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퇴직 전 나는 하루에 1만 6000원에서 많으면 2만 원 정도를 썼던 것 같다. 물론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훨씬 많았겠지만, 일반적인 평일은 그 정도였다. 점심값은 1만 원 안팎, 식후 커피는 3500원에서 많아도 4500원 이내, 출퇴근 비용은 약 2500원 정도였다. 아끼려고 마음먹어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쉽게 줄이기 어려운 돈이었다.

그때의 점심은 대부분 동료들과 함께 먹는 밥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누군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뭐 먹을까?"

그 말이 나오면 곧 메뉴가 정해지고, 식당도 정해졌다.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혼자 빠지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점심값은 밥값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이기도 했다. 식후 커피도 비슷했다. 커피가 꼭 마시고 싶어서라기보다, 밥을 먹고 곧장 자리로 돌아가기 어색한 날이 많았다.

"커피 한잔 어때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그 커피값 안에는 잠깐의 대화, 동료들과 보폭을 맞추는 시간, 회사 안에서 하루를 넘기는 작은 여유가 함께 들어 있었다.

퇴직 후 프리랜서 강사로 살면서 하루 지출의 모양도 많이 달라졌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밖에서 쓰는 돈이 1700원으로 끝나는 날도 많다. 집 앞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이다. 글을 쓰고, 강의안을 고치고, 다음 강의를 준비하는 데 그 정도면 충분한 날이 적지 않다.

물론 조금 더 쓰는 날도 있다. 집밥 대신 김밥 한 줄이나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날이다. 그래도 하루 지출은 대개 5200원에서 6200원 선에서 멈춘다. 직장생활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줄었다.

돈보다 먼저 달라진 것은 밥 먹는 방식이었다

차이는 돈만이 아니었다. 혼밥이 늘었다. 퇴직 전에는 동료들과 함께 먹는 밥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혼자 먹는 밥이 훨씬 많다. 혼자 먹으면 편하다. 메뉴도 내가 고르고, 시간도 내가 정한다. 꼭 12시에 맞춰 밥을 먹을 필요도 없다. 요즘은 오후 3시쯤 집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는 날이 많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에 가깝다. 사람 속에 오래 머무는 일보다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움직이는 시간이 더 편하다. 그래서 퇴직 후 혼밥이 늘어난 것이 마냥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속도대로 하루를 쓰는 일이 좋을 때도 많았다. 어느새 그런 생활이 제법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사람과 끊겨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강의는 대중과 함께하는 자리다. 내 성향이 어떻든 강의는 지금 내 본업이고, 동시에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도 하다.

강의장에 서면 청중의 반응을 살핀다. 고개가 끄덕이는 지점을 따라가고, 표정이 바뀌는 순간을 본다. 혼자 준비한 시간이 사람들 앞에서 쓰임을 얻는 순간, 나는 분명한 만족을 느낀다.

강의가 끝나면 항상 혼잣말로 나를 다독이는 말이 있다.

"수고했다."
"잘했다."
"다음에도 잘하자"
▲ 뼈 해장국 식사 강의 다음날 나를 위한 보상 음식(ai 이미지)
ⓒ 이종범
강의 다음 날 먹는 뼈해장국 한 그릇은 그런 나에게 건네는 작은 보상이다. 가격은 8500원이다. 커피값 1700원을 더하면 그날 지출은 1만 200원으로 끝난다. 강의가 없는 날에 비하면 큰 지출이지만, 현역 시절 평일 지출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다.

이 한 그릇은 어느새 강의 다음 날의 일정처럼 자리 잡았다.
별식이라기보다 전날 강의를 마친 나에게 건네는 확인에 가깝다. 누군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곳에 갔고, 사람들 앞에서 내 경험과 생각을 나누었다. 그다음 날 익숙한 식당에서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비로소 강의 하나가 내 안에서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거창한 의식은 아니다. 늘 가던 식당에서 좋아하는 메뉴를 먹고 나올 뿐이다. 다만 그 평범한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전날 사람들 앞에 서 있었던 몸과 마음을 다시 내 리듬으로 돌려놓는 시간이다. 내향적인 내가 청중 앞에 서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나에게 허락한 가장 현실적인 회복 방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국민연금연구원에서 발표한 2024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제10차 부가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중고령자가 생각하는 노후 필요 생활비는 개인 기준 최소 139만 2000원, 적정 197만 6000원으로 조사됐다. 이를 30일로 나누면 하루 최소 약 4만 6000원, 적정 약 6만 6000원 수준이다.

물론 이 돈에는 주거비, 공과금, 의료비 같은 고정비가 포함되어 있다. 반면 내가 하루 중 밖에서 쓰는 돈은 적게는 1700원, 많아도 1만 200원 정도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노후 생활비는 결국 매일 반복되는 작은 지출로 만들어진다.

덜 쓰는 삶이 곧 잘 사는 삶일까

그렇다면 다른 퇴직자들은 어떨까. 퇴직 후 하루 지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회사 다닐 때 자연스럽게 쓰던 점심값과 커피값, 교통비는 줄었을지 모른다. 대신 자신을 밖으로 나가게 하는 다른 돈이 생겼을 수도 있다. 혹은 사람 만나는 일 자체가 줄어들면서 생활 반경이 좁아졌을 수도 있다.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커피값이나 모임 비용이 꼭 필요한 생활비일 수 있다. 반대로 나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카페에 조용히 앉아 글을 쓰기 위한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할 수도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세상과 이어져 있느냐는 점이다.

퇴직 후 나는 확실히 덜 쓰며 산다. 그렇다고 덜 쓰는 생활이 곧 잘 사는 생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돈을 아끼는 동안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고, 사람을 만나는 이유까지 줄어든다면 그것은 절약이라기보다 생활이 작아지는 일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헷갈린다. 지금 줄이고 있는 것이 돈인지, 아니면 내 하루의 움직임인지. 지출을 줄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극단적으로는 쓰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아껴도 계속 쓰기로 한 돈은 따로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강의 다음 날 뼈해장국 한 그릇이 그것이다.

은퇴 후 하루 지출을 계산할 때 금액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돈은 줄이면 낭비가 사라지지만, 어떤 돈은 줄이면 하루의 숨구멍까지 막아버린다. 그래서 퇴직 후에는 "얼마를 덜 썼는가"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무엇은 줄였고, 무엇은 남겼는가."

이 질문에 답하다 보면 내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지 조금 더 잘 보인다. 퇴직 후 일상에서 나를 위해 쓰는 돈은 확실히 줄었다. 그래도 줄이지 말아야 할 돈은 있다. 나를 다시 밖으로 나가게 하고, 다음 일을 준비하게 하는 돈이다.

내게는 뼈해장국 한 그릇이 그런 돈이다.
어제 강의를 했다는 확인이고, 다시 다음 강의장으로 가게 만드는 작은 힘이다.
그 한 그릇 덕분에 오늘의 절약도 조금은 덜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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