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새로운 과제
[최진일]
지방선거 시즌이 돌아왔고 갖가지 노동공약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노동안전보건 영역은 여전히 부수적인 영역으로 취급되거나 선언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지방정부의 역할 자체가 중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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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균을 기억하며…태안화력서 7주기 추모제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 7주기 현장 추모제가 10일 태안화력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
| ⓒ 연합뉴스 |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지방정부의 역량 강화.
역량이 없으면 권한도 소용없다. 현재 충남도와 시·군의 노동안전보건 업무는 대부분 다른 업무와 겸임하는 담당자 한두 명에게 맡겨져 있다. 이래서는 사업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어렵다. 더구나 이제 처음으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사업을 집행하는 지방정부에게는 어떻게 산재예방에 대한 자체적인 역량을 키울 것인가하는 과제가 중요하다. 산재예방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고, 이 분야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역량이 공무원들의 자격증이나 전문 학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산재 현장과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것, 산재예방을 위한 중앙·지역 사업과 연계하는 경험,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과 쌓아온 네트워크. 이것들이 진짜 역량이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체계적인 데이터로 남겨 다음 한 걸음의 양분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지방정부의 성장이다.
'사각지대'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이 '사각지대'라는 표현은 종종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전체의 60%이며,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1인기업을 포함하면 87%까지 늘어난다. 사각지대가 아니라, 국가 산재예방 전체의 문제다.
노동감독 권한을 이양받게 되면, 지방정부 감독관의 역할은 단순한 규제와 감독을 넘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고, 사업주와 노동자의 상황을 이해하며, 현실적인 개선 방안을 함께 찾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법을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역량은 자격증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현장 경험과 체계적 훈련을 통해서만 축적된다.
또한 "지방정부는 지원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이런 생각은 산재예방 정책을 뻔한 지원사업의 반복에 머무르게 한다. 지방정부도 지도와 제재를 구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인프라를 새로 짜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추진 중인 근로자건강센터 확대재편은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영역이다. 보건 영역에 한정된 기존 구조를 넘어, 소규모 사업장에 필요한 통합적 안전보건 서비스 허브로의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남도가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지원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는 노동안전보건센터 설립 계획 역시 이러한 정책 흐름과 어떻게 맞물릴지를 기반으로 다시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거버넌스도 다시 짜야 한다. 충남에는 이미 노동정책협의회, 산재예방위원회, 노사민정협의회 내 안전한일터분과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들이 실질적인 산재예방 동력이 되어왔는지는 솔직히 돌아봐야 한다. 느슨한 자문기구에 머물러온 것은 전담조직의 부재, 실행기구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사업현장의 각 주체들, 안전보건 전문가, 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해 지역의 산재 현황을 분석하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성과를 평가하는, 실질적인 거버넌스가 되어야 한다. 법 개정으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위촉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지방정부의 감독행정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것인지 구체적인 구상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취약점과 새로운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
폭염은 이제 노동현장의 조건을 바꾸는 구조적 위험이다. 작업중지권을 중심으로 한 실질적인 폭염 대책이 공약에 담겨야 한다. 특히 건설·옥외 노동자들이 실제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 임금보전 문제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생활임금 제도처럼 지방정부가 먼저 시도할 수 있는 정책이다. 더불어 발전소 폐쇄, 석유화학·철강 구조조정 과정 자체가 새로운 산업안전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산업안전보건 문제는 노동정책과 이주정책을 함께 묶어야 해결할 수 있다. 다국어 안전교육 교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보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정확한 길목을 찾아야 하며, 교육 내용도 안전수칙 전달에 그치지 않고 권리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이주노동자 안전리더 양성사업을 비롯해 이주노동자 산재예방 사업이 녹록치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딛고 설수 있는 권리의 지반 자체가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부실한 기반 위에 이것저것 얹는 정책이 아니라 취약노동자들의 권리부터 튼튼히 다지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새로운 단계로
산재예방 정책만으로도 수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다음 지방정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다음의 사안들에 대한 입장과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산재예방 전담 조직·인력 구성: 겸임이 아닌 전담, 순환이 아닌 축적
▲ 사각지대 사업장에 대한 정교한 접근 체계 구축
▲ 노동감독 권한 이양에 대비한 감독-지원-컨설팅 통합 모델 준비
▲ 근로자건강센터 확대재편 적극 참여 및 지역 안전보건 인프라와의 연계
▲ 느슨한 위원회를 넘는 실질적 산재예방 거버넌스 구축
▲ 폭염 작업중지권 실질화 및 산업전환 과정의 새로운 위험 대응
▲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통합대책 및 권리 중심 교육 정착
▲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양성·조직화 및 감독행정과의 협력 구조 구축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의 지방정부의 역할은 이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통계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나하나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보여주기식의 행정이나 과거와 같은 방식의 파편적인 사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음 지방정부가 부디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을 갖고 산재예방 정책을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메가충청에도 실립니다. 2018년 4월 12일 '충남서북부노동건강인권센터'로 출발한 새움터는 현재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로 확대되어,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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