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결정권' 보장되지 않는 법이 장애인권리보장법?

이원무 2026. 5. 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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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보장법에 숨은 독소조항 ③] 대리의사결정인 현행법, 복지단체 육성 등에 제한된 껍데기뿐인 자기결정권

[이원무 기자]

[이전기사]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왜 '형식적 평등' 수준인가 (https://omn.kr/2i3z7)

타인에 의해 내 선택을 사실상 강요받았을 때의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 현장 실습 전, 나는 성향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사회재활팀보다 직업재활팀이 수월할 것이라 판단해 그 팀에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복지관 측에선 "불만 있느냐?"며 내 의견을 묵살한 채 강제로 사회재활팀에 배정했다. 비장애 중심의 체계 안에서 나의 자기결정권은 지워졌고, 사회재활팀 실습 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깊은 고통을 느껴야 했다.

한편 우리 동네 아파트의 재건축 과정과 관련해 재건축을 추진하는 위원회 대표에게는 나의 알 권리를 위해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대표를 통해 종상향을 통한 아파트의 용적률 상승과 이에 따른 임대주택 확보에 대한 정보를 확보했다. 주거 약자의 주거권과 나의 실익이 둘 다 충족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재건축 찬성이라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상반된 경험은 명백한 사실을 알려준다. 자기결정권은 당사자에게 충분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 의사를 존중할 때 가능하며, 장벽을 넘어 권리의 주체가 되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11조 3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하여 관계 법령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성년후견과 보호자·부모 목소리에 가려지는 당사자 목소리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현행법상 지원의사결정체계를 정의하고 그 체계 시 장애인 개개인이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구체적 절차·방식은 물론 수어, 알기 쉬운 정보 등 합리적 편의 규정 내용이 부재하다. 민법, 발달장애인법 등에 성년후견 관련 내용이 있지만, 장애인의 진정한 욕구와 선호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성년후견에 없어 성년후견은 사실상 대리의사결정체계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지역사회의 권리 기반 체계가 미비한 것까지 결합해 돌봄 요구가 큰 장애인(중증장애인)들은 시설수용의 위험이 상당히 크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금융기관, 서비스 기관들이 상품가입이나 금융거래 시 후견인이 없는 장애인들에게 후견인의 동행을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렇게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성년후견 도입 이후 더욱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13조 1항에서는 장애인이 정책 결정 과정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한다. 2항엔 정책 결정·실시에 있어, 장애인 및 장애인의 부모, 배우자, 보호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서 장애인은 권리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 모델이 팽배한 사회에서 장애인을 권리 주체가 아닌 보호해야 하는 객체로 보는 보호자, 부모 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장애인과 부모 간 의견 충돌이 있을 시엔 부모의 그런 관점을 통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부정되기 쉽다. 그런 상황에서 장애인은 참여는 하지만, 주류사회의 비장애 중심적 가치관에 동화하는 구조인 참여적 동화의 형태를 겪기 쉽다.

또는, 정신적 장애인은 아예 정책과 법, 제도 등의 논의 시 배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에 관련한 논의 당시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들은 그 논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 결국엔 장애인 당사자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는 위치추적기 발부 등 당사자가 아닌 제공자 중심의 정책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담기게 됐다.
 2022년 6월 20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이 주도했던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장애인단체 제안 마련 TF' 회의 현장. 5년 동안의 정부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중대한 자리임에도 정작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본문에서 지적한 '제공자 중심의 정책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보도자료
장애인복지단체 육성, 법의 시혜적 계몽으로 제한된 자기결정권

단체의 보호·육성을 명시한 제52조에선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의 복지 및 권리 향상과 자립을 위해 장애인복지단체를 보호·육성하고, 이 단체의 사업ㆍ활동 또는 운영이나 그 시설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 범위 안에 보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들의 법적 능력을 북돋는 건 물론 이들을 대변하는 장애인단체에 관한 지원은 언급되지 않았다.

장애인복지단체가 사회복지사, 후원자, 장애인 부모, 종교인 등 비전문가와 조력인들이 주도해 시혜적 관점을 보이고 돌봄을 주로 한다면, 장애인단체는 장애인 당사자가 과반수로 구성되고, 차별철폐와 사회구조 변화, 권리보장 등을 위해 활동한다. 그런데 권리보장에 중요한 당사자 관점을 배제한 채 장애인복지단체만을 육성한다는 건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요, 시혜의 대상으로 묶겠다는 비장애 중심 관점이 투영된 거다.

장애인 권리보장을 규정한 제46조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하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장애인을 정책, 제도 등에 담긴 권리와 의무에 무지한 객체로 보며, 국가와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법의 내용을 가르친다는 계몽적 전제가 깔려 있다. 장애인과 긴밀히 협의해 함께 정책과 제도, 법률을 만드는 '동등한 파트너십'과는 거리가 멀며, 장애인을 정보접근권 주체가 아닌 수혜자로 머물게 한다.

알기 쉬운 언어나 표현, 맥락에 따른 정보가 많이 미비한 채 난해한 법률 용어가 가득한 공청회 개최 한 번만으로도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했다는 국가와 지자체의 알리바이는 성립된다. 그렇게 되면 권리와 의무를 알지 못하고 소외되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을 게 우려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삭제

무엇보다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고 이 법을 총괄할 강력한 컨트롤타워 체계가 법에서 삭제된 것이 치명적이다. 물론 국무총리 산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그 위원회가 있는 동안 장애인의 삶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 위원회는 예산권도 상설사무국도 없으며, 비상설 위원회라 1년에 한두 번 회의를 개최하고 보고서를 추인하는 수준이다.
 2024년 3월 28일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개최했던 모습
ⓒ 연합뉴스 TV 영상 갈무리
장애인 권리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부처 간 장벽 없는 범부처 협력이 필수다. 이와 관련해, 헌법에는 행정 각 부를 조절·총괄, 정부조직법상엔 행정기관 처분 위법할 시 이를 중지·취소하는 것 등으로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국무총리의 이 모든 권한은 대통령의 명령이 있어야 하기에, 국무총리가 독자적으로 금융위와 복지부 등을 조정해 강제할 권한이 대통령 그림자에 가려져 턱없이 무력하다.

예를 들어, 금융 거래하는 장애인에게 은행이 후견인 동행을 요구하는 것에 관해 복지부가 차별이라 할 때, 기획재정부나 금융위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면 컨트롤타워 없는 자기결정권 이슈는 부처 간 핑퐁게임으로 전락하며 칸막이 행정이 되고 피해는 장애인 당사자 몫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선 국무총리 소속의 장애인정책위원회를 명시했기에, 예전의 칸막이 행정이 계속될 게 우려되는 거다. 그러니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이름만 '권리보장법'이요, 실질적으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방치하는 꼴이 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자기결정권이 실질화되려면

그러기에 장애인계에서 제안했던 대통령 직속의 국가장애인위원회 조항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차별 시 예산상 불이익을 주고, 강력한 차별시정은 물론, 효과적인 부처 간 업무조정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 권한을 명문화해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 실마리를 마련하는 첫 걸음이다.

물론 위원회 만든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위원회가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실질적인 훈련을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받는 체계를 수립하고, 위원회의 장애인 당사자 비중을 과반수로 구성하는 인적 혁신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계 요구를 수용해, 지원의사결정체계의 구체적 정의, 절차, 방식과 수어, 알기 쉬운 정보, 점자, 그림문자 등 이 체계와 관련된 합리적 편의 제공을 법에 의무화하여 명문화해야 한다.

단체 보호·육성과 관련해선 장애인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거나 이들을 대표하는 장애인단체를 추가하고, 이들이 독자적으로 활동하도록 충분한 예산과 법적 능력 강화를 위한 지원 등의 내용들을 법에 담아야 한다. 아울러 보호자, 조력자들이 당사자들의 의견을 함부로 대신할 수 없다는 '자기결정권 존중' 원칙까지 법에 강력하게 담아야 한다.

더불어, 장애인의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참여와 의견 반영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 제도, 입법 결정 시 비장애 중심 가치관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 과반수 원칙을 도입하고, 당사자의 이의제기권과 당사자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등을 법에 명시해 제도적으로 구축하고 보장해야 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설명에 관해서는 시혜적 계몽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알기 쉽거나 맥락에 따른 정보, 점자, 수어 등 장애유형별 정보의 언어적·시각적·내용적 기준, ▲당사자 검수 등의 절차적 기준, ▲직관적인 정보 도달 경로 등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가 입법 및 제도 구축 과정에 동등한 파트너로 참여할 때, 비로소 장애권리보장법 정신은 실질적 권리로 구현된다.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이름 그대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아니라, 장애인을 관리·통제하는 법에 불과하다. 이제 법률 시행까지 약 2년이 남았다고 한다. 남은 2년 동안 참여적 동화와 배제 없이 장애인의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참여 속에 법률은 물론 장애인 기본권 실현을 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2025년 11월 3일 개최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장애계 합동토론회' 현장 전경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영상 갈무리
또한, 법 시행 이후 매년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기념 토론회를 개최하며, UN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여부를 시민사회와 장애인단체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에게 '그림의 떡'이 아닌 삶으로 실제 체감되어, 장애인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 사회의 동등한 민중이자 동반자로서, 장애인이 장벽을 철폐하고,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이 법이 진정한 마중물 역할을 하길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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