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남성 귀화 패소, 이유는 법에 없는 ‘일본어 능력’… ‘장관 재량’에 숨겨진 벽[이세계도쿄]
국적법에 없어도 ‘폭넓은 재량’ 인정
불허 이유 공개 안 되는 귀화 심사
“난민협약 위반”… 법원 “문제 없어”
‘공생’ 구호 여전하지만 문턱 높아져

최근 일본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난민 남성이 귀화를 요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국적법상 조건은 충족했지만 이른바 ‘장관 재량’으로 귀화가 인정되지 않았다. 정확한 기준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일본어 능력을 문제삼았다. 법에는 없는 요건이었다.
이 사례는 귀화·재류 문턱을 높이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의 외국인 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력 부족 대응으로 오래 전부터 ‘외국인과의 공생’을 추구해왔다. 당초에는 외국인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포용의 의미가 강했지만 현 정권 들어서는 일본 사회 기준에 맞춰 더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색채가 짙어졌다.
이 남성은 국적법상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귀화가 불허된 것은 위법하다며 2023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처분 취소와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13년 10월 일본에 입국해 2년 뒤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 귀화를 신청했지만 모두 불허됐다. 소송 제기 5개월 뒤인 2023년 9월 세 번째 신청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지난해 불허됐다.
당시 국가 측은 해당 남성의 귀화를 왜 받아들일 수 없는지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불허 이유를 밝힌 건 재판 과정에서였다. 국가 측은 “충분한 일본어 능력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귀화에 대해 일본 국적법 5조는 5년 이상의 거주(주소), 선량한 품행, 생계 유지 능력 등 여러 요건을 정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본어 능력은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귀화 절차에 있어서는 법무대신(법무장관)에게 재량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 국가 측 논리였다. 국적법 제4조는 ‘귀화를 하려면 법무대신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성은 귀화 실무에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일본어 능력을 갖추는 등 일본 사회에 융화돼 있을 것’ 등을 추가 요건으로 설정해왔다. 일본 사회 융화라는 표현도 국적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법무성 산하 도쿄법무국도 귀화 요건·방법을 설명하는 웹사이트에서 국적법이 명시한 조건을 나열한 뒤 추가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일본어 능력, 즉 회화 및 읽기·쓰기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을 제시하고 있다.
또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해도 반드시 귀화가 허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것들은 일본에 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측은 원고 남성의 일본어 능력 미달을 문제삼으며 그가 여러 차례 시험에서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일본어 회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일본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맞섰다. 남성은 소송에서도 신문에 직접 일본어로 답변했다. 그는 일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원고 남성은 자신의 전문성을 국제기구에서 살리는 진로를 계획 중이라고 일본 법률 전문 매체 변호사JP뉴스는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국적이 없으면 일본 여권을 만들 수 없어 해외 이동에 제약을 받고 은행 계좌 개설도 어려워진다. 즉 취업에 중대한 지장이 생긴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남성 측은 귀화 불허 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함께 요구했다.

법원은 “쓰기까지 포함해 평가할 경우 원고에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일본어 능력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원고가 이 조건에 적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귀화 판단에 대한 법무대신의 재량이 어디까지인지였다. 재량의 범위에 따라 일본어 능력 요구가 부당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넓은 재량권을 인정했다. 귀화 불허가 위법이 되는 것은 ‘전혀 사실의 기초를 결여했거나 현저히 타당성을 결여한 것이 명백한 경우’에 한정된다고 판시했다.
해당 남성의 귀화 신청을 불허한 처분이 난민협약에 위반되는지도 쟁점이었다. 원고 측은 읽기와 쓰기를 포함한 일본어 능력 조건을 엄격하게 설정하는 건 난민의 귀화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난민협약에 위반된다고 주장해왔다.
난민협약 34조는 ‘체약국은 난민이 해당 체약국의 사회에 적응하고 귀화하는 걸 가능한 한 쉽게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일본도 이 협약에 가입한 나라다.
법원은 현행 귀화 조건은 법무대신의 재량권 범위 안에 있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난민협약은 체약국에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이번 소송에서도 불허 처분 이유 미공개가 쟁점 가운데 하나였지만 법원은 이 역시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귀화 절차에 관한 처분은 행정절차법 적용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 난민협약은 체약국에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귀화 조건은 지난달부터 더 엄격해졌다. 국적법은 그대로 두고 ‘일본어 능력’처럼 법무대신의 재량에 따른 심사 조건을 강화했다.
여기에는 ‘원칙적으로 10년 이상’ 재류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 국적법상 거주 요건인 5년보다 배 이상 늘린 기간이다. 도쿄법무국이 지난달 1일 갱신한 귀화 설명 웹페이지에도 10년 이상의 재류가 일본어 능력과 함께 ‘융화’의 요건으로 명시돼 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납부 상황을 확인하는 대상 기간도 길어졌다.
강화된 요건이 발표된 건 지난 3월 27일이었다. 스즈키 변호사는 이처럼 중요한 행정 절차의 조건 변경이 시행 불과 5일 전에 발표되는 건 통상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귀화 요건이 불투명해져 행정을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이런 사태에 대해 경고를 보내는 판결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일본어 능력’이란 어느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냐”며 “우선 그 점을 명확히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재류자격 변경, 재류기간 갱신 허가, 영주 허가나 재류특별 허가와 달리 귀화, 즉 후천적 국적 취득에 관해서는 가이드라인조차 공표돼 있지 않다”며 “법무대신, 즉 국가에 ‘재량권’이 있다고는 해도 자의적인 운용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가이드라인의 책정과 공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 인정을 받은 외국인의 귀화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난민협약 체약국의 책무여야 한다”며 “난민협약에 따른 제약도 받지 않는다는 국가 측 주장은 일본국 헌법을 경시하는 것이고 이를 추인하는 사법부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일본 헌법 제98조 2항은 ‘일본국이 체결한 조약 및 확립된 국제법규는 이를 성실히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같은 전문가 댓글란에서 역사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는 “귀화 요건을 명확히 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의 불이익이 되는 자의 귀화’를 방지하기 위해 취해진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귀화 요건의 불명확성은 우연한 행정 미비가 아니라 국가가 원치 않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설계된 장치였다는 주장이다.
오구마 교수는 127년 전의 국적법 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 ‘품행단정’처럼 추상적 요건이 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는지 부연했다.
1899년 제13회 제국의회 중의원 국적법심사특별위원회에서 정부위원으로 참여한 법학자 호즈미 노부시게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 법대 교수는 “품행단정이라는 요건은 그 기준을 명확히 재단하기 어렵다”며 “그 불명확성이 오히려 법안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오구마 교수는 “미국에도 GMC, 즉 ‘Good Moral Character’라는 ‘소행이 선량할 것’에 해당하는 요건이 있지만 아마도 소송이 잇따랐기 때문인지 가이드라인이나 조건이 명문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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