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 가는 게 '특혜'라는 학생들...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

이경숙 2026. 5. 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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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에 갇혀 배려를 잃어버린 학교... 누군가의 짐 덜어주는 건 '빼앗기는' 일이 아니다

[이경숙 기자]

몇 년 전 작은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교실에는 이주배경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어깨 위 무게는 비슷했다. 어떤 날은 유난히 예민했고, 어떤 날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한 채 깊은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았다. 말없이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는 날도 이어졌다. 아이들의 그 흐트러짐이 개인의 태만이라기보다, 위태로운 삶의 조건이 만들어낸 구조적 흔들림이라는 것을 자주 직감했다.

정민(가명)이라는 아이가 그랬다. 동남아 쪽에서 이주해 오신 어머니가 어느 날 생활비를 들고 집을 떠났다. 기울어진 집안 사정처럼 정민의 일상도 곧바로 흔들렸다. 지각과 결석, 벌점이 쌓였다. 생활교육위원회에 선 날, 정민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뜻밖의 말을 했다.

"앞으로 노력해볼게요. 징계도 다 받을게요. 그런데... 저 졸업은 꼭 시켜주세요.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나중에 취직해서 먹고살 수 있잖아요."

새로운 다짐이었을까, 너무 일찍 익힌 생존의 언어였을까. 며칠은 수업 태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다시 지각을 했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날이 많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모둠을 나눌 때마다 아이들은 정민이를 피했다. 말로 직접 내뱉지는 않았지만, 교실에는 이런 속삭임이 돌았다. '우리 모둠 점수 떨어지면 어떡해.' '분위기 망가지면 큰일이야.' '저 친구만 봐주는 건 불공정하지 않아?' 눈빛은 이미 결론을 향해 있었다.

그때는 각박한 경쟁이 낳은 이기심이라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다수의 평범한 아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 내신은 수행평가·모둠평가가 개인 점수에 반영되고,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린다. 그 한 장의 등급표가 대학의 간판을 바꿔 놓는다.

이런 잣대 앞에서 남의 사정을 봐주다 내 점수가 깎이는 일은 아이들에게 실존적 위협처럼 느껴진다. 부모의 재력도, 든든한 배경도 없는 아이들은 오직 성적표 하나에 매달려 버틴다. 그런 현실에서 약자를 향한 배려를 오로지 개인의 희생으로만 요구하는 일은, 어른들이 책임을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떠넘기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학교의 수행평가 비중은 과목마다 달랐고, 팀 과제의 기여도가 개인 점수에 반영됐다. 모둠원의 역할분담과 협력적 문제해결은 루브릭 항목(평가 기준)에 바로 영향을 줬기에, 아이들은 정민이와 한 조가 되는 일 자체를 위험으로 계산했다.

한국의 교실은 내신이라는 좁은 문을 두고 경쟁하는 결핍의 공간이다. 여유가 사라진 곳에서 이타심은 쉽게 사치가 된다. 정민이를 향한 '선 긋기'는 단순한 악의라기보다, 작은 손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벼랑 끝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슬픈 방어기제였다.

보건실이라는 '특혜', 밀려난 아이들
 교실에서 학습 중인 학생들 모습(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연합뉴스
수영(가명)이도 비슷했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폭언을 견디며 자랐다. 심리적 불안 탓에 모의고사 도중 자리를 이탈하거나 결석이 잦았다. 어느 날 자퇴서를 들고 학생자치실을 찾았다. 낡은 의자에 할머니와 함께 앉은, 수영이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친구들이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 제가 교실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주는 것 같아요. 50분 동안 앉아 있는 게 너무 숨이 막혀서 보건실에 가면, 친구들은 그게 '특혜'라고 해요. 그런데 교실에 앉아 있으면 서로 자리를 피하죠. 저는 교실에도, 보건실에도 있을 곳이 없어요. 제가 학교를 떠나야... 친구들도 편해질 거예요."

보건실은 원칙적으로 단기 안정과 응급 대응을 위한 공간이고, 반복 이용 시 담임·보건교사 협의와 상담 의뢰가 뒤따른다. 이 과정을 모르는 또래의 눈에는 '교실을 벗어나 쉴 수 있는 특권'처럼 보이기 쉬웠다. 규정의 문장과 또래의 서늘한 시선 사이에서, 수영이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었다.

본교에 학적을 두고 대안학교를 위탁해 다니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한참 말이 없던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선생님... 저도 우리 아이가 평범하게 졸업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혹시라도 학교생활을 버티다 아이가 더 무너질까 봐 무서워요. 저에겐 졸업장보다, 이 아이가 살아 있는 게 더 중요합니다."

결국 수영이는 결국 학교를 떠났다. 손등만 내려다보던 웅크린 어깨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기계적 공정이라는 잔인한 착시

언젠가부터 공정이라는 말이 차갑게 들린다. 학교가 상처받은 아이에게 규칙을 조금 느슨하게 적용하려 하면, 다른 아이들은 곧 묻는다. "왜 저 친구만 예외예요? 불공정하잖아요."

이 장면은 교실만의 일이 아니다. 대입의 '기회균형전형'(저소득층·농어촌 등 출발선이 다른 학생에게 기회를 보완하는 전형)을 둘러싼 '역차별' 논란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반복된다. 수능 1점을 더 올리기 위해 밤잠을 줄인 다수의 수험생에게, 이런 제도의 배려는 때때로 '내 자리를 빼앗는 불공정'으로 느껴진다.

비슷한 정서는 취업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여성·장애인 등의 참여 기회를 넓히려는 대표성 확대 제도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무임승차'라는 의심은 쉽게 분노로 번지곤 한다. 세부 쟁점의 옳고 그름과 별개로, 희소한 기회 앞에서 공정을 동일한 대우라는 '절차'로만 이해하는 직관이 빠르게 작동하는 모습이다.

'기계적 공정'은, 서로 다른 출발선을 가진 사람들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곧바로 공정이라고 믿는 태도다. 우리는 종종 공정을 '절차적 공정'으로만 좁혀 이해한다. 그러나 출발선이 다른 현실에서는, 각자의 조건과 실질적 기회의 차이를 고려하는 '형평의 공정'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가난과 가정폭력이라는 모래주머니를 찬 아이와, 아무런 짐 없이 가벼운 운동화를 신은 아이에게 똑같은 완주 시간을 요구하는 건 평등이 아니라 가혹함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다시 교실로 되돌아와, 규칙을 조금만 느슨하게 적용하려는 순간 '예외는 곧 불공정'으로 번역된다. '기계적 공정'의 언어 뒤로 숨는 일은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를 더 가혹하게 만드는 착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누군가의 짐을 조금 덜어주는 일이 내 몫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라는 전제, 구조가 개인에게 어떤 무게로 작용하는지 함께 보는 시야, 무너지는 친구의 손을 잡아본 경험이 숫자 1등급보다 길게 남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연대의 경험은 삶을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줄 자산이 된다.

교실과 사회 모두, 서로 다른 출발선을 인정하고 '형평의 공정'을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예외가 모두의 손해가 아니라, 공동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살아 있는 곳에서만 공정은 차갑지 않고,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기계적 공정은 종종 허상에 가깝다. 그 허상을 조금씩 걷어내려면, 서로의 출발선이 다름을 함께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벼랑 끝의 약자도, 불안을 내면화한 다수도 함께 살 수 있다. 나는 그 설득을 서두르지 않되,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 학생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입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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