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복귀한 61세 반장들 "AI가 못하는 일이 있다"

유창재 2026. 5. 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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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노인일자리⑦] 울산 고려아연의 현장실습훈련 지원사업 '세대통합형'

[유창재 기자]

 고려아연의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시니어 인턴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 고려아연 제공
"아침에 일어나 갈 데가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지난 8일 오전 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안 고려아연 제련소. 거대한 굴뚝과 배관, 쉼 없이 돌아가는 공장 한편에서 다시 작업복을 입은 60대 노동자들이 기자들 앞에 섰다. 정년퇴직 뒤 회사를 떠났던 이들은 이제 '시니어 멘토'라는 이름으로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이날 고려아연 방문은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올해 처음 시행한 '현장실습훈련 지원사업(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정년퇴직 숙련 인력을 청년세대와 연결하는 재고용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세대통합형 사업은 60세 이상 숙련 퇴직자를 청년 멘토로 6개월 이상 고용한 기업에 정부가 1인당 300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단순한 노인일자리 사업이 아니라 산업현장의 기술 단절을 막고 세대 간 경험을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고려아연은 모두 14명의 시니어 인력을 신규 지원 대상으로 채용했다. 금속가공 기계조작원, 금속·재료공학 시험원, 상하수도 처리장치 조작원, 공업기계 설치 및 정비원, 전기공학 기술자 및 연구원, 생산관리 분야 등 현장 핵심 직군들이다.

울산의 현실도 이 사업의 배경으로 읽힌다. 올해 1월 기준 울산 전체 인구 109만1281명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는 20만6411명으로, 고령인구 비율은 18.7%에 달한다. 산업수도 울산 역시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셈이다.

"시니어는 기업이 지켜야 할 자산"
 지난 8일 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안 고려아연 공장 모습. 쉴 새 없이 대형 트럭들이 공장 안을 오가고, 공장 기계 소리와 함께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보건복지부
1974년 설립된 고려아연은 국내 대표 비철금속 제련기업이다. 현재 19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박성웅 고려아연 경영지원본부장은 "세대통합형 인턴십 정책은 단순히 일자리를 하나 더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축적해 온 경험과 기술, 현장의 지혜를 다음 세대와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산업 현장의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오랜 시간 문제를 해결하며 쌓인 판단력은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시니어 세대는 기업과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박 본부장은 "기업은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하며, 다양한 세대가 존중받고 다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책임"이라며 "더 많은 기업들이 이 사업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매년 25~30명 정도 정년퇴직자가 발생하는데, 회사 필요와 본인 희망에 따라 재고용을 하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직원 수가 600명 이상 늘었다. 이는 공장 증설과 미국 제련소 사업, 리사이클링·전략금속 분야 확장 때문이다. 하지만 급격한 인력 확대 속에 '중간세대 공백'이 생겼고, 회사는 이를 시니어 재고용으로 메우고 있다고 한다.

현장 실무자가 본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노인 아닌 현장 전문가"
 시니어인턴십 세대통합형 지원사업 관련 보건복지부 정책 현장 기자간담회가 지난 8일 오전 울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고려아연의 정성우 인사팀장, 권오영 반장, 김의식 반장, 조영열 반장, 박성웅 경영지원본부장.
ⓒ 보건복지부
정성우 고려아연 인사팀장은 시니어 멘토들에 대해 "사실 '노인'이라는 표현보다는 다른 표현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며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어 "30년 이상 현장에서 근무한 분들이다. 기술력과 현장 이해도, 인력관리 경험 등 헤아릴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진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고용 인력은 주로 신·증설 사업과 기술 전수 역할을 맡는다"며 "청년 일자리를 줄이는 구조가 아니라 사업 확장과 함께 신규 채용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현장에 다시 투입된 61세 반장들의 이야기였다.

우선 김의식(61) 반장은 미국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그는 "인공지능(AI)이 대세라고 하지만 AI가 못하는 일들이 있다"며 "중요 설비나 안전 부분은 결국 현장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년 전) 현장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부분도 지금은 더 넓게 볼 수 있다"며 "기계전시회도 다니며 실제 제련공정에 적용할 설비를 찾고 있다. 벌써 세 건 정도 적용 중"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의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시니어 인턴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 고려아연 제공
조영렬(61) 반장은 "30년 넘게 쌓은 제련 기술은 사실 다른 데 가면 쓸 데가 없다"면서 "회사가 '더 있어달라'고 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년 뒤 다시 출근할 곳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복"이라며 "밖에 나간 친구들도 결국 갈 데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청년세대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전에 몸으로 맞아가며 기술을 배웠다. 지금 젊은 직원들은 책과 시스템으로는 배우지만 현장 감각은 부족할 수 있다. 우리는 기계를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오영(61) 반장 역시 "(지금도) 후배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묻는다"며 웃었다. 그는 "예전엔 교대근무하며 안전부터 생산까지 다 챙겨야 했는데, 지금은 기술 전수에 집중할 시간이 더 많다"면서 "라인이 어떻게 움직이고 왜 문제가 생기는지 현장에서 직접 설명해주면 젊은 직원들이 정말 빠르게 배운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정문으로 출근해 작업복 갈아입고 현장 들어가는 그 자체가 아직도 기쁘다"며 "후배들이 반장이 아니라 삼촌처럼 편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14명이 100명 되고 1000명 될 수도"
 고려아연의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시니어 인턴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 고려아연
이날 울산 현장을 찾은 김수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은 "이제 노인일자리는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의 한 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원장은 "국가기관 산업에서 '세대통합형' 지원사업은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오늘 고려아연에서 시작하는 14명이 선구자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여러분의 역할에 따라 14명이 100명이 될 수도, 1000명이 될 수도 있다"며 "청년들이 산업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덧붙여 "이곳에서 시니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청년들이 배우는 모습 자체가 우리 산업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현재 세대통합형 일자리는 고려아연뿐만 아니라 철강·조선·방산·우주항공 등 다양한 국가 핵심사업 기업과 연계하고 있다. 지난해 2227명 사업에 참여했으며, 올해는 234개 기업들이 운영 중이다.

이날 만난 60대 노동자들은 거대한 제련소 한가운데서 다시 후배들 곁에 섰다. 산업의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은 퇴직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고려아연 제련소에서는 지금, 한 세대의 기술이 다음 세대로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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