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확인만 누르세요”…AI 에이전트 시대, 선택권은 누구 손에
EU, 안드로이드 핵심 권한 개방 압박... 7월 최종 결정 앞둬
삼성 ‘갤럭시 AI’ 독립성 시험대... 네카오 ‘앱 노출권’ 우려도

“팸플릿 사진을 찍으면 구글 ‘제미나이 인텔리전스’가 당신의 여행 앱을 열어 비슷한 투어를 찾아 예약해 줍니다. 또 당신의 이메일에서 강의 계획서를 찾아 필요한 교재를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해 줄 것입니다. 마지막 확인 버튼만 누르세요.”
구글이 연례 개발자 행사 ‘구글 I/O 2026’에서 선보일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제미나이 인텔리전스’가 그리는 미래다. AI가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앱을 열고, 예약하고, 결제 직전 단계까지 처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에 편의성은 커지지만 개인정보와 보안, 나아가 이용자의 ‘디지털 선택권’을 둘러싼 논쟁도 함께 커지고 있다.
구글은 13일 ‘구글 I/O 2026’을 앞두고 제미나이 인텔리전스를 전격 공개했다. 제미나이 인텔리전스는 이용자의 의도를 파악해 스마트폰 내 다양한 앱과 웹사이트를 넘나들며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AI 비서다. 올여름 삼성 갤럭시와 구글 픽셀 탑재를 시작으로 연말에는 자동차, 스마트 안경, 노트북 등 일상 전반으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편리함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AI가 이용자를 대신해 움직이기 위해선 스마트폰 속 정보와 권한을 광범위하게 넘겨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독점 구조에 제동을 걸고 나선 핵심 이유 역시 바로 이 ‘디지털 주권’ 문제와 맞닿아 있다.
발표 타이밍도 묘하다. 제미나이 인텔리전스가 공개된 13일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제미나이만 누리는 안드로이드 독점 접근을 경쟁 AI에도 열어야 한다’는 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마감한 날이기도 하다. 당국이 독점의 문을 열라고 압박한 날, 구글은 운영체제(OS)와 AI의 결합을 더욱 공고히 하며 생태계 장악력을 과시한 셈이다.
“내 폰 전체를 AI에게 맡긴다”…보안 경계 흔들
핵심 쟁점은 ‘AI가 이용자의 스마트폰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느냐’다. 구글은 제미나이 인텔리전스를 ‘퍼스널 인텔리전스’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상은 개인정보에 대한 ‘포괄적 접근권’에 가깝다. AI가 이용자를 대신해 여행을 예약하고 장을 보려면 이메일, 사진, 캘린더, 위치 정보, 심지어 결제 권한까지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글 측은 “이용자의 지메일 수신함이나 구글 포토 라이브러리 자체를 직접 학습하지 않으며, 연결된 데이터는 오직 이용자 한 명만을 위해 활용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앱 연결 기능은 기본적으로 비활성화 상태이며 이용자가 직접 활성화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데이터 학습’과 ‘시스템 접근’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상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스마트보안학과 교수는 “AI 에이전트가 시스템 깊숙이 접근할수록 편리함은 커지지만, 단 한 번의 오작동이나 해킹만으로도 개인의 모든 정보가 통째로 노출되는 ‘싱글 포인트 오브 페일러(단일 실패 지점)’ 리스크가 커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보안 위협은 이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올해 초 네이버, 카카오, 당근 등 국내 주요 IT 기업들은 사내 임직원들에게 오픈소스 AI 에이전트 ‘오픈클로(OpenClaw)’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AI가 PC 내부를 스스로 돌아다니며 대외비 파일이나 메신저 창까지 훑어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안 기업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AI 에이전트가 개인 데이터 접근권과 외부 통신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 IT 기업 관계자는 “개발자 개인이 실험 삼아 쓰는 수준을 넘어서면 어느 순간 회사 기밀과 내부 시스템까지 건드릴 수 있다”며 “사고가 터진 뒤 대응하기엔 너무 늦다”고 강조했다.
EU·미국, ‘구글 AI 독점’ 정조준…7월 운명 갈린다
EU 집행위원회는 4월27일 디지털시장법(DMA)에 따라 구글이 경쟁 AI에도 안드로이드 핵심 기능을 동등하게 개방해야 한다는 시정안을 공개했다. 최종 결정은 7월27일 내려진다. DMA 위반 시 과징금은 알파벳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 약 35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EU가 문제 삼는 것은 철저한 ‘비대칭 구조’다. 이용자가 챗GPT나 클로드를 안드로이드 폰에 설치하면 ‘앱 하나’를 설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OS에 기본 탑재된 제미나이는 전원 버튼을 누르거나 음성으로 즉각 호출되고 다른 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같은 AI지만 출발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미국 역시 구글이 자사 검색 엔진을 기본값으로 강제한 독점 계약을 금지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8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 지방법원은 구글이 검색 및 검색 광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반독점 구제 명령을 발효시켰다. 법원은 크롬 매각이나 안드로이드 분리 같은 사업부 분할은 과도하다고 기각했지만, 구글이 자사 검색 엔진을 기본값으로 강제한 독점 계약을 전면 금지했다.
클레어 켈리 구글 수석 경쟁법 고문은 “기기 접근 권한 확대는 민감한 하드웨어 허가에 대한 의무화를 통해 비용을 올리고, 유럽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보안을 훼손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삼성·네카오·통신사 모두 ‘폭풍전야’…사라지는 판단력과 선택권
이러한 ‘에이전트 주권’ 전쟁은 국내 생태계에도 직격탄이다. 당장 삼성전자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AI’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기저에는 구글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다. 특히 올해 2월 출시된 갤럭시 S26에는 제미나이(실행), 빅스비(기기 제어), 퍼플렉시티(웹 검색) 등 여러 AI가 탑재됐지만 앱 실행의 실권은 제미나이에 있다.
구글 제미나이의 OS 장악력이 커질수록, 삼성전자는 구글 생태계를 활용하면서도 갤럭시 고유의 AI 주도권을 지켜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앱 노출권’ 문제가 걸려 있다. 과거엔 이용자가 직접 앱을 골랐지만, 이제는 AI가 앱을 고른다. 이용자가 “근처 맛집 예약해 줘” 혹은 “친구에게 선물 보내줘”라고 명령했을 때 구글 지도나 구글 제휴 서비스가 먼저 켜지면 국내 토종 서비스들은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통신사도 예외는 아니다. KT·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통신3사는 AI 에이전트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가입자 접점을 기반으로 자체 AI 비서를 키우려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역시 OS 시스템 권한 없이는 성장에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다.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AI 에이전트가 구글 서비스만 계속 먼저 연결한다면 타 경쟁 앱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 주도권과 관련해 국내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 규제, 아직 출발선도 없다
글로벌 규제 당국은 플랫폼 권력의 이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한국은 사실상 무풍지대에 가깝다. 지난 1월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에는 AI의 앱 실행 우선권이나 이용자의 선택권 보장에 관한 구체적 조항이 없다.
한 플랫폼 규제 전문가는 “AI 에이전트의 앱 실행 우선권 문제는 전통적인 웹 검색 규제 틀로는 포착하기 어렵다”며 “AI기본법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연계해 경쟁 촉진 조항을 구체화하는 방향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은 이용자가 선택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할지, 그 선택지를 어떤 순서로 눈앞에 보여줄지 설계하는 권력은 온전히 구글의 몫이다. EU는 그 설계에 다른 AI도 참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한국에서도 동일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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