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일터에 들어온 AI, 장애인의 업무 장벽을 없애다
장애인 일자리와 인공지능

곽효재(26)씨는 서류를 검토할 때면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을 켠다. 서류를 찍어 챗GPT에 올리고 “이 문서에 정확하게 뭐라고 적혀 있어?”라고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이 돌아온다.
공공기관 사무직으로 일하는 곽씨는 저시력 장애인이다. 대출 관련 행정 업무를 맡고 있어 임대차계약서나 재무제표를 확인할 일이 많다. 작게 적힌 숫자 하나, 항목 하나라도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업무상 실수로 이어지기 쉽다. 곽씨는 “업무 중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AI로 확인한다”며 “매번 옆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돼서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출장길에도 AI가 함께한다. 곽씨는 주변을 촬영해 스마트폰에 탑재된 AI에 올린다. “내가 찾는 가게가 이 사진 안에 있어?”라고 물으면 AI가 상호나 주변 정보를 설명해 준다.
AI가 장애인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사진이나 문서 속 정보를 설명하는 보조 도구가 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회의 내용을 실시간 텍스트로 보여준다. 발달장애인은 AI와 대화를 반복하면서 소통 방식을 익힌다. 그동안 장애인이 개인의 노력이나 주변의 도움으로 해결해야 했던 업무상 어려움을 AI가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장애 유형에 맞춰 진화하는 AI 보조 기술
그동안 시각장애인 사무직 근로자에게 컴퓨터는 절반 짜리 도구였다. 화면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보조공학기기인 ‘스크린리더’를 활용해도 이미지나 복잡한 표, 그래프 구조를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온라인 회의를 할 때도 화면에 공유 자료가 올라오면 내용을 실시간으로 따라가기 어려웠고, 자료 검색에도 비장애인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생성형 AI는 화면 속 이미지를 음성으로 설명해주고, 표와 그래프를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 해설한다. 필요한 자료도 음성 명령 한 번으로 빠르게 검색할 수 있다. 장애 유형에 특화된 AI 보조 기술도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아토뷰어’는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키보드 조작이나 음성만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 설계됐다. 세무·법률·심리 등 업무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 지식도 표나 그래프에 의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답변해 준다.
발달장애 영역에서는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개발한 챗봇 ‘누라(Noora)’가 주목받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이 챗봇은 자폐스펙트럼장애(ASD)를 비롯한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워하는 질문하기, 칭찬하기, 공감하기 같은 사회적 의사소통 상황을 1대1로 연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안산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능력개발운영부 교사는 “발달장애인들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실제 상황에 대응하는 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며 “이런 훈련이 누적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동료와의 협업이나 고객 응대 같은 업무를 더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교육으로 격차 줄인다
문제는 AI 기술을 대부분의 장애인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서울디지털재단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AI 사용률은 5.6%로, 비장애인(15.4%)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에는 공공 부문에서 ‘장애인의 AI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지난 3월부터 전국 훈련기관 38곳에서 ‘AI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은 기초 과정, 직무 과정, 재직근로자 능력향상 과정으로 구성해 개인의 AI 이해도와 업무 상황에 맞춰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장애 유형별 맞춤 교육도 제공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보조공학기기와 연동한 문서 작성법, 생성형 AI 프롬프트 설계와 업무 자동화 방법 등을 가르쳐준다. 발달장애인에게는 AI 비서를 활용해 개인위생과 일정을 챙기고, 소통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도록 한다. 시각·발달장애인 외에 다른 장애 유형을 위한 교육 과정도 함께 운영된다. 공단은 올해 안에 3500명에게 교육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오호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능력개발운영부 과장은 “이번 교육은 장애인 근로자가 단순히 AI를 체험하는 데서 나아가 자신의 직무와 생활 환경에 맞는 AI 활용 역량을 키우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가 장애인 고용 가능성을 넓히려면 기업의 인식 변화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동욱 한경국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AI 활용이 확산되면 장애인의 업무 장벽은 낮아지고, 이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직무 수행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버터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 딸 결혼식장 폭파시킨다”…삼성 ‘미스양’ 경기 뛰어든 사연 | 중앙일보
- “정 회장, 현대도 반도체 하세요” SK하닉 탄생 뒤엔 이병철 파격 | 중앙일보
- “1만보 걷기? 운동 아니다” 서울의대 교수, 치매 막는 ‘10분’ | 중앙일보
- “들고 있었으면 20억”…8만전자 팔아 신혼집 산 직장인 한탄 | 중앙일보
- 세시 반이면 회사 화장실 꽉 찬다…초민감 개미시대 그늘 | 중앙일보
- 고신용자 4.9%, 저신용자 3.7%…‘거꾸로 금리’에 뒤통수 맞았다 | 중앙일보
- “엄마 언제 오나” 창밖 보다가…11층 추락한 4세 ‘기적의 생존’ | 중앙일보
- “정 회장, 현대도 반도체 하세요” SK하닉 탄생 뒤엔 이병철 파격 | 중앙일보
- “말기암, 이 운동 왜 안했을까” 맨날 러닝했던 의사의 경고 | 중앙일보
- “목욕 후 상의 벗고, 여자에게 들이대”…전청조 교도소 근황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