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용자 4.9%, 저신용자 3.7%…‘거꾸로 금리’에 뒤통수 맞았다

염지현 2026. 5. 14. 05: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은행 ATM 기기. 연합뉴스.


최근 시장금리가 오르는데도 저신용자 대출금리는 떨어지는 ‘거꾸로 금리’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3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의 신규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최저신용자(신용점수 600점 이하) 기준 연 8.376%로, 1월보다 0.5%포인트 이상 내렸다. 1년 전 9% 선을 웃돌던 것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시장금리 상승기에는 통상 저신용자 금리가 더 가파르게 오르지만, 올해는 반대다. 대신 고신용자 대출금리는 상승세다. 지난 3월 최고신용자(신용점수 951~1000점) 대출금리는 연 4.5%로 두 달 새 0.124%포인트 올랐다.

신용대출 지표금리인 6개월 만기 은행채 금리는 올해 초 연 2.797%에서 3월 말 연 2.932%까지 뛰었다. 시장금리 상승 영향이 사실상 고신용자 대출금리에만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김영희 디자이너

가장 큰 원인으로 ‘포용금융’이 꼽힌다. 은행권은 앞다퉈 취약계층의 금융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부터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개인 신용대출 금리를 최고 연 7% 이하로 제한한 ‘대출금리 상한제’를 도입했다. 신한은행도 1월 말부터 저신용자의 고금리 신용대출 금리를 연 6.9%로 낮췄다. 연 12% 고금리 대출을 이용했던 저신용자는 최대 5%포인트 금리가 낮아진다.

정책성 포용금융 상품이 확대되면서 신용등급과 대출 금리가 역전된 사례도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지난 3월 최저신용자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 금리는 연 3.73%로, 최고신용자(연 4.86%)보다 1.13%포인트 낮았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경기도와 협약을 맺고 신용이 낮더라도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3% 후반대 금리로 공급(300만원 한도)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역전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신용평가 체계 자체를 손질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달 초 페이스북을 통해 “신용등급은 과거의 잔상이자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며 “낡은 신용평가 틀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청와대 움직임에 맞춰 시중은행은 최근 중·저신용자 맞춤형 대안신용평가 시스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한은행은 공과금과 통신비 납부, 자동이체 등 비금융정보까지 활용해 대출 심사를 하는 전략으로 바꿀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통신과 플랫폼 소비 데이터를 보유한 통신사 등과 손잡고 관련 모델을 개발 중이다. 기존 신용평가가 부채와 상환 이력 중심이었다면, 대안신용평가는 생활 데이터까지 반영해 중·저신용자의 대출 승인 기준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달 출범하는 금융위원회의 포용금융추진단은 금융권의 신용평가 체계 점검을 핵심 과제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신용평가 설계에 관여할 경우 자칫 포용금융 정책 목표에 맞춘 획일적 평가 시스템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특히 시장 원리를 정책으로 억누를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일본은 2010년 다중채무자의 금융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부업 금리 상한을 기존 29.2%에서 연 20% 이하로 낮췄다. 수익성이 악화한 대부업체가 흔들렸고, 일부 영세 자영업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했다. 미국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2023년 연방주택금융청(FHFA)이 저신용자의 주택담보대출 부담을 낮추기 위해 수수료를 개편했다. 당시 고신용자의 수수료율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개편되자 역차별 논란이 커졌고, 일부 방안은 시행 직전 철회됐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포용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평가 체계는 ‘신용을 관리하면 더 낮은 금리를 받는다’는 시장 신뢰 위에 세워져 왔다”며 “저신용자에게 정책적으로 낮은 금리를 제공할 경우 리스크 관리 비용이 고신용자나 은행에 전가되면서 금융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위험의 가격표인 신용 시스템이 왜곡될 수 있다”며 “신용관리를 꾸준히 해도 금리 혜택이 적고, 중·저신용자 중심으로 금리가 낮아진다면 신용관리 유인 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