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예술은 권력의 시녀인가

장지영,문화체육부 2026. 5. 14. 00:3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대통령 풍자 만화 '윤석열차' 논란 관련 간담회에서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로운 영역을 인정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상하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블랙리스트나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을 지키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대통령 풍자 만화 ‘윤석열차’ 논란 관련 간담회에서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로운 영역을 인정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상하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블랙리스트나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을 지키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팔길이 원칙은 1946년 세계 최초의 국가적 문화예술 지원 기구였던 영국예술위원회에서 등장했다. 초대 위원장이었던 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예술위원회에 대한 정부의 영향을 줄이고 독자적인 운영을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 후보 시절 문화예술 분야 공약으로 처음 제시한 데 이어 1997년 취임 이후 민간 문화정책 기조로 ‘국가 주도’에서 ‘민간 자율’을 내세웠다.

이후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팔길이 원칙은 지켜졌을까. 대표적 예술 지원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만 보더라도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상명하복 관계 속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가동된 사실은 국내에서 팔길이 원칙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문재인·이재명 정부에서도 팔길이 원칙을 신성한 금과옥조처럼 읊어대지만, 실상은 반대다. 이재명정부 들어 국립 예술기관 인사를 보면 팔길이 원칙이 허울 좋은 구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 대신 캠프 출신 등 정치적 성향에 따라 기관장을 임명하는 행태는 예술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종속된 현실을 반영한다. 문제는 국내 문화예술계의 반발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강력하게 행동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계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국립 예술기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정권과의 친분을 통한 예산 확보의 이점을 생각하며 묵인해 왔다.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이들 인사는 당연히 현장에서 권위와 신뢰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사에 대한 예술계의 침묵이 계속 쌓이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의 음악감독 낙하산 임명과 해고 사례는 국내 예술계에 많은 영감을 준다. 유서 깊은 라 페니체 극장은 지난해 9월 이사회에서 1년 뒤 취임할 음악감독으로 35세의 경력이 일천한 지휘자 베아트리체 베네치를 결정했다. 베네치의 아버지가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친밀한 정치인인 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이탈리아 예술계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라 페니체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스태프는 파업에 나섰다. 이후 극장 구성원들은 신년 음악회에 항의 배지를 착용했고, 이탈리아의 다른 오케스트라도 연대 표시로 같은 배지를 달았다. 또한 수많은 장르의 예술가가 잇따라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관객들 역시 베네치 반대 서명에 참여하는 등 몇 달간 이탈리아가 떠들썩했다. 베네치는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변화와 쇄신을 두려워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오케스트라 일자리가 세습된다고 암시하는 발언을 해 음악가들의 분노를 샀다. 결국 라 페니체 극장 이사회는 “극장과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훼손한 심각한 발언”이라며 베네치를 해고했다. 더 이상 극장에 대한 불신을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예술의 자율성은 예술가들이 싸워서 지키는 것이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