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북한 헌법에서 ‘사회주의’가 사라진 이유

2026. 5. 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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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은 이제 ‘덜 이상한’ 나라로 향하고 있는가. 수십 년간 북한의 상징은 과장된 수사(rhetoric)였다.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와 ‘세상에 부러움 없다’고 선전해온 국가 복지와 번영에 대한 기대는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었다. 주민들은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지만, 신화는 헌법에 명시된 채 굳건히 유지돼 왔다.

그러나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국회 격)에서 개정한 헌법은 이러한 수사들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예고한 영토조항 말고도 개정 헌법엔 현실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 유명무실했던 복지국가 폐기
혈통신화 너머 정상국가 지향
후계 과정 ‘양날의 검’ 될 수도

개정 헌법은 북한의 거창한 복지 야망이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헌법 명칭에서도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사라진 게 상징적이다. 기존 헌법의 “실업을 모르는”(29조)이라는 내용을 이번에 삭제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유명무실해졌다. 직장이 있는 이들조차 생계를 위해 장마당 같은 사적 영역에서 일해야 했던 현실을 개정 헌법에 반영한 것이다.

무상의료와 국가의 주택 제공도 마찬가지다. 약품은 늘 부족했고 수술 환경은 처참했다. 필자가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갈 때마다 북한 지인들이 의약품을 부탁한 일은 흔한 풍경이었다. 결국 개정 헌법은 무상 치료와 국가 주택 제공 약속을 폐기했다.

더 놀라운 건 체제 정당성의 변화다. 개정 헌법은 선대들의 초자연적 업적에 대한 언급을 대거 삭제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을 ‘최고영도자’가 아닌 ‘국가수반’으로 지칭하며, 그 지위를 국무위원장이라 규정했다. 북한은 건국 이래 ‘백두혈통’이라는 전근대적 세습 자산에 기대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최고영도자’가 조선 국왕의 현대판이었다면, ‘국가수반’은 현대 국가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가 혈통이 아닌 공식 시스템에서 나온다는 정치적 현대화를 의미한다. 북한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며 김일성 생일을 지칭했던 ‘태양절’이라는 용어 사용을 줄이고 선대 추모 행사에 김 위원장이 불참하는 등 선대를 배경으로 밀어내는 징후들도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큰 함의를 갖는다. 체제의 비현실적 주장과 비참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면 주민들의 소외감이 다소 해소될 수 있다. 이제 북한 주민들은 직업이나 의료 문제를 이야기해도 ‘반역’이 되지 않는 환경이 됐다. 국가의 고용 및 무상 치료 의무가 사라진 자리에 건강보험 체계나 정상적인 노동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헌법에서 ‘무세금 국가’라는 조항을 삭제한 건 향후 공식적인 조세 제도 도입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헌법 개정은 정치적으로 후계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혈통 중심의 권위가 옅어지면 딸(김주애)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것이 한결 용이해진다. 남성 중심의 백두혈통 신화 속에서 여성 후계자는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공식 직함인 국무위원장 자격으로 ‘국가수반’이 되는 것이라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후계자 자격에서 제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왕조 밖의 인물이 권력에 도전할 명분을 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딸을 일찍 대중에 노출하고 개헌을 통해 국무위원장의 법적 지위를 강화한 것은 이러한 위협에 대비한 방어막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허황된 신화와 불가능한 약속을 공식적으로 포기한다고 해서 하룻밤 사이에 정상 국가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변화의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이 이런 변화를 이어 간다면 카다피의 리비아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같은 ‘정상적인 독재국가’의 모습에 가까워질 것이다. 지도자에 대한 절대 충성을 요구하고 비판을 가혹하게 처벌하지만, 그 외의 일상 영역에서는 주민들에게 훨씬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국가 말이다.

북한의 최근 변화만으로 외부 세계의 접근성을 높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국가의 형태가 될 수는 있다. 물론 가끔은 북한의 그 화려하고 황당했던 주장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김정일이 골프를 칠 때마다 홀 인원을 했다는 식의 그 기이한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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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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