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베이징 회담은 결승전이 아니다

김영근 2026. 5. 13. 17: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서로를 완전히 이길 수 없다

베이징 회담의 핵심은 승부가 아니라 안전장치다. G0(미국 등 강력한 글로벌 리더십이 사라진 무질서한 상태) 공포와 경제 공생 속에서 미중은 왜 서로를 완전히 이길 수 없는가. 트럼프와 시진핑은 상대를 무너뜨리려 만나는 것이 아니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5년 10월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베이징으로 향하는 질문

5월 13일, 정상회담 하루 전의 무대는 베이징이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이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와 중국 부총리 허리펑이 이곳에서 먼저 만났다. 두 사람은 각자 한국 대통령을 만난 뒤 미중 정상회담의 경제 의제를 조율했다. 바로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에서 마주 앉는다. 환영 행사, 양자 회담, 톈탄공원 방문, 국빈 만찬, 다음 날 티타임과 업무 오찬까지 이어지는 2박 3일 일정이다.

화면으로 보면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악수, 국기, 미소, 긴장된 표정. 하지만 이번 회담을 패권전쟁의 결승전으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두 나라는 상대를 완전히 이기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무너뜨린 뒤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만난다. 미국도, 중국도 G2에서 곧장 무극세계로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원하지 않는다.
[5.14 미중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는
- 미중 패권전쟁, 정말 한쪽이 이길 수 있을까: 왜 서로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나
- 트럼프와 시진핑이 '결판' 대신 '관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미국도 중국도 원하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 과연 미중은 적인가, 서로의 안전장치인가
- 왜 미중은 싸우면서도 선을 넘지 못하나?
- 미중 정상회담을 패권전쟁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
상대를 쓰러뜨리면 누가 질서를 관리하나

무극세계는 단순한 멋진 말이 아니다. 국제 의제를 이끌 힘과 의지를 가진 나라가 사라지는 지도력 공백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도적으로 주저앉힌다고 가정해 보자. 값싼 소비재와 전자부품, 배터리 소재, 희토류, 공장 노동과 물류망이 동시에 흔들린다. 미국 소비자는 물가로, 기업은 조달 차질로, 동맹국은 선택 강요로 비용을 낸다.

반대로 중국이 미국을 밀어낸다고 해서 중국이 곧바로 안정된 세계질서를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달러 금융망, 미국 소비시장, 첨단기술 표준, 동맹 네트워크는 아직 중국 경제의 바깥 조건이다. 그 조건이 급격히 깨지면 중국도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미중관계의 본질은 승패가 아니라 사고 예방에 가깝다. 서로 싫어해도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 탄 두 사람이다. 한쪽이 바닥을 치게 만들면 엘리베이터 자체가 멈춘다.

1972년 닉슨의 로프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이 구조는 어제 생긴 것이 아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냉전의 균열을 이용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해 미국과 중국은 상하이 공동성명을 만들었고, 일본도 베이징에서 중일 국교정상화를 이뤘다. 동아시아 질서는 그때부터 한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적대만으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협력만으로는 불신을 없앨 수 없는 길이었다.

이후 반세기 동안 미중은 갈등하면서도 경제의 혈관을 이어 붙였다. 2006년 미국은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만들었다. 명분은 커지는 경제관계의 이익을 양국 시민이 공정하게 나누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2009년에는 전략·경제대화로 넓어졌다. 이름은 바뀌고 성과는 들쑥날쑥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대화를 끊으면 비용이 더 커지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것이 경로의존성이다.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 회담의 문법이다. 베이징 정상회담의 의제도 다르지 않다. 농산물, 에너지, 보잉 항공기, 무역·투자 포럼, 반도체 수출규제, 희토류, 대만, 이란, 핵무기, 인공지능. 서로 무관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모두 한쪽이 막히면 전체 시스템이 고장 나는 문들이다.

희토류 한 줌과 대만해협, 호르무즈가 한 식탁에 오른 이유

희토류는 전기차와 반도체, 방위산업의 목줄이다. 대만해협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심장에 붙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유가와 해상보험료, 한국의 에너지 청구서까지 흔든다. 미국산 대두와 쇠고기, 항공기 구매는 단순한 통상 품목이 아니라 미국 국내 정치의 신호등이다. 인공지능 반도체는 기술 경쟁이면서 동시에 군사와 산업의 안전 문제다.

그래서 이번 회담의 진짜 이름은 협력이 아니라 관리다. 더 정확히는 관리된 경쟁이다. 두 정상은 상대에게 양보했다는 말을 싫어할 것이다. 각자 귀국하면 승리를 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실제 성과는 승리 선언의 크기가 아니라 안전장치의 두께로 판단해야 한다. 관세 휴전이 얼마나 연장되는가. 희토류 통로가 얼마나 열려 있는가. 대만 문제의 선을 어디까지 넘지 않기로 했는가. 이란 전쟁이 에너지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인공지능과 핵무기 대화 채널을 최소한이라도 세울 수 있는가.

일본이 이 회담을 예민하게 보는 까닭

일본의 시선도 흥미롭다. 일본은 미중 갈등이 커져도 불안하고, 너무 쉽게 봉합돼도 불안하다. 갈등이 커지면 공급망과 수출이 흔들린다. 봉합이 너무 빠르면 대만과 동중국해 안보 의제가 거래의 뒷자리로 밀릴 수 있다. 일본종합연구소는 이번 베이징 회담의 핵심을 "휴전의 연장과 대립의 관리"로 정리했다. 일본 방송은 중국 측이 경제 협력과 이란 문제보다 대만 문제를 특히 중시한다고 전했다. 관심 영역이 다르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일본 실패학의 교훈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 실패학은 단순히 누가 잘못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왜 통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작은 경고가 왜 시스템 전체의 사고로 번졌는지를 본다. 이미 일어난 실패의 재발을 막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실패를 미리 줄이는 지식으로 바꾸자는 문제의식이다.

미중관계도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사고로 읽을 수 있다. 관세가 오르면 기업이 버티고, 기업이 버티면 소비자가 나눠 부담하고, 어느 순간 정치가 폭발한다. 희토류 수출이 조이면 전기차와 방산, 반도체 생산이 흔들린다. 대만해협에서 작은 충돌이 일어나면 금융시장과 항로, 보험료가 동시에 반응한다. 작은 균열을 그때그때 봉합하지 못하면 전체 안전판이 터진다.

안전혁명으로 보는 미중 정상회담

이 대목에서 필요한 말이 안전혁명이다. 과거 안보가 적을 제압하는 힘이었다면, 앞으로의 안보는 위험이 커지기 전에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능력이다. 전쟁, 통상, 기후, 기술, 에너지, 금융을 따로 보는 방식으로는 이미 늦다. 위험은 따로 오지 않는다. 연결돼 온다.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인공지능이 공장과 물류, 항만과 로봇, 무기체계에 스며드는 시대에는 반도체 하나, 광물 하나도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안전의 부품이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폭염과 홍수는 식량 가격과 이주, 보험료와 전력망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치로 넘어간다. 미중 정상회담은 외교 이벤트이기 전에 미래리스크 관리의 시험대다.

한국은 관전자가 아니다. 이번 회담 전 경제수장들이 인천에서 만났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우리의 공항은 조율 무대가 됐고, 우리의 기업은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 한복판에 있다. 우리의 에너지 수입은 호르무즈에 묶여 있고, 우리의 안보는 대만해협의 긴장과 분리되지 않는다. 더 이상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한숨만 쉴 수 없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진영 구호를 더 크게 외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분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핵심 광물과 에너지의 대체 통로를 확보하고, 반도체·배터리·조선·방산의 공급망 지도를 상시 점검해야 한다. 인공지능 안전 기준과 데이터 주권, 사이버 복원력을 국제 규범으로 연결해야 한다. 부처별 대응을 넘어 국가 차원의 안전 거버넌스로 묶어야 한다. 이것이 안전사회로 가는 제도전환이다.

누가 이겼나보다 무엇이 깨지지 않았나

회담이 끝나면 양쪽은 모두 자신이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과 항공기, 에너지 구매를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표현 하나, 반도체 규제의 틈 하나를 챙기려 할 것이다. 언론은 누가 더 많이 얻었는지 숫자를 셀 것이다.

그러나 시민이 물어야 할 질문은 조금 달라야 한다. 누가 이겼나.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깨지지 않았나. 어떤 위험이 제도 안에 들어왔나. 다음 위기에서 한국이 먼저 흔들리지 않을 장치는 생겼나.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5월 14일 베이징 회담은 결승전이 아니다. 결승선 없는 마라톤의 한 구간이다. 두 선수는 서로를 밀어내고 싶어 하지만, 한 명이 쓰러지면 경기장 자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서로를 완전히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한계가, 역설적으로 세계가 붙잡아야 할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한일경상논집』,『3·11 동일본대지진을 새로이 검증하다』(단역),『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단역),『재해 리질리언스: 사전부흥으로 안전학을 과학하자』(공저),『일본의 재해학과 지방부흥』(공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