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죽은 아내가 살아 돌아오자 남편이 보인 반응

안지훈 2026. 5. 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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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연극 읽기] 연극 <모어 라이프>

[안지훈 기자]

2026년 '브리짓'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율주행차에 치여 사망한다. 브리짓은 곧바로 연구소로 옮겨져 '브레인 업로딩'의 대상이 된다. 브레인 업로딩은 인간의 뇌를 스캔해 데이터를 복제한 다음 인공물을 통해 실행에 옮긴다는 아이디어로, 현재 과학계에서 구상과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연극 <모어 라이프>는 브레인 업로딩을 통해 근미래에 새로운 인공 신체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브리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모어 라이프>는 영국 칸딘스키 씨어터를 이끄는 극작가 로런 무니와 제임스 예이트먼의 희곡을 바탕으로 2025년 초연된 신작이다. 두산아트센터를 통해 초연 1년만에 한국에 소개되었다. 매년 '두산인문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주제를 정해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두산아트센터가 올해 선정한 주제는 '신분류학'으로, <모어 라이프>는 그 시작을 여는 연극이다. 경계를 검토하고 다시 설정하는 과정을 공유한다는 취지에서다.

<모어 라이프>를 비롯해 학교 내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주는 연극 <원칙>, 실존 인물의 존재적 모호성을 살피는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까지 총 3편의 연극이 차례로 관객과 만난다. 이외에도 8회에 걸친 강연과 기존 분류 체계에 질문을 던지는 기획 전시를 선보인다. 5월 17일까지 공연되는 <모어 라이프>는 지난해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민새롬 연출가를 필두로 공지수, 김용준, 마두영, 이윤재, 이주영, 이진경이 원캐스트로 출연한다.
 연극 <모어 라이프>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되살아난 브리짓이 던지는 섬뜩한 질문

5월 3일 관람한 <모어 라이프>는 과학계의 최신 화두를 다룬다. 브레인 업로딩을 비롯해 '트랜스 휴먼(Transhuman)'이라는 주제도 다룬다. 트랜스 휴먼이란 인간을 개조해 만들어진 보다 뛰어난 존재로, 호모 사피엔스가 다음 종(포스트 휴먼, Posthuman)으로 진화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인공 신체를 통해 되살아난 브리짓이 바로 트랜스 휴먼이다.

브리짓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은 큰 틀에서 두 가지다. 첫째, 새로 만들어진 브리짓은 과연 이전의 브리짓과 같다고 볼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50년 만에 브리짓을 만난 남편 해리는 이전의 브리짓과 얼굴과 목소리 등이 달라 그녀의 존재를 부정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과의 기억을 자신보다 더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인공 신체로서의 브리짓을 인정한다.

컴퓨터의 사본은 원본을 대체할 수 있다. 브리짓은 바로 이런 경우다. 그런데 브리짓은 인간이었고, 또 인간이라고 여겨질 목적으로 개발된 인공 신체인 만큼 컴퓨터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태어난 브리짓은 이전의 브리짓이 생전 느꼈던 감각들을 잊어버린 상태다. 기억만큼이나 중요한 기억의 연속성 역시 부족하다.

첫 번째 질문이 계속해서 경계를 오가며 긍정되고 부정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두 번째로 브리짓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브리짓을 인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근 철학계와 과학계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주제는 '몸'이다. 몸은 인간의 존재 양식을 규정한다. 브리짓은 다른 인공 신체로도 구현할 수 있기에 유일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의식과 몸에 부여되는 주체성도 부족하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컨트롤 장치에 의해 브리짓은 켜지고 꺼진다. 브리짓의 의식이 실험 거부 의사를 밝혀도 실험은 계속된다. 그런 브리짓의 인공 신체는 인간의 몸과 달리 유한하지 않다. 영원히 살 수 있을 뿐더러 생명 유지에 필요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보면 브리짓은 '인간의 탈을 쓴 비인간'이다.
 연극 <모어 라이프>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비인간을 낳은 인간의 욕망

<모어 라이프>가 인상적인 까닭은 인간적인 요소들로 비인간의 이야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실험을 주도하는 '빅터'의 실험 성공을 향한 욕망과 집착이 브리짓을 낳는다. 때로는 그릇된 집착으로 연구 윤리를 어길 때도 있다. 빅터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자본가들의 욕망이다. 비싼 가격에 인공 신체를 판매해 구매력이 있고 오래 살길 바라는 부자들로부터 돈을 벌어 들이려는 욕망.

브리짓에게도 욕망이 있다. 브리짓은 스스로 "이런 삶은 삶이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삶을 끝내는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연극에서는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깨닫고 생을 마감하는 결말이 일반적이다. 때론 '신파'처럼 여겨질 수 있을지언정 인간적인 교훈을 전하며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간적인 교훈이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브리짓의 선택이 욕망에 기인한 인간적인 것일 수도 있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욕망이 과학과 얽혀 섬뜩한 결과를 낳는 이야기의 대표적인 모티프다. 연극 <모어 라이프>는 <프랑켄슈타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그릇된 집착으로 인해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두려워하는 연구원 빅터의 모습은 <프랑켄슈타인>에서 피조물을 만들고 두려워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연결된다. '빅터'라는 연구원의 이름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보다 직접적으로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구절을 코러스로 깔아 연극의 상황을 설명, 고조하기도 한다. 연극에 출연하는 6명의 배우가 시시각각 코러스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모어 라이프>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연극 <모어 라이프>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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