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갇힌 한국인 158명…피격에도 “韓 가겠다”는 선원 없다, 왜

고석현 2026. 5. 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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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과 화물선. AP=연합뉴스

중동 전쟁으로 지난 3월 4일 사실상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지 70일. 국적 선사인 HMM 화물선이 피격 추정 사고까지 당하며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하선이나 귀국을 희망하는 국내 선사 소속 선원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해양수산부·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 내측 선박의 한국인 선원은 총 158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선사 선박에는 123명이, 외국 선사 선박에는 35명이 승선 중이다.

국제해사노동협약(MLC) 등에 따르면 통상 전쟁이나 무력 충돌 등으로 선원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한 경우, 선원들은 선사에 하선을 요구하거나 승선을 거부할 수 있다. 국내 선사들은 대부분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선원들이 자발적 의사에 따라 승선하고 하선할 수 있도록 한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지 선원이 하선 의사를 밝히는 경우, 해운사가 귀국비용을 대서 귀국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공급선·크루보트 등을 통해 육지로 이동시키고, 항공편을 통해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면서도 “하선 의사를 밝힌 선원은 현재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호르무즈해협 통항은 제한됐지만, 육로 이동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실제 현지에서는 정박 중인 선박에 공급선과 크루보트 등을 투입해 물자와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선박이 항만에 입항해 접안할 경우 입항료와 부두사용료 등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안전 부담도 커, 대부분의 선사는 바다에 해상 정박 중이다.

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으며 미상 비행체의 타격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사진 외교부

그렇다면 선원들은 왜 망망대해에서 배를 지키고 있을까. 전직 항해사 A씨는 “배가 이동하지 않아도 선박 내에서 각자 부여된 임무가 있다”며 “향후 통항이 재개될 경우를 대비하고 책임감과 직업의식 때문에 하선하지 않고 선박을 지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빠지면 대체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부담감, 업무 평가상 불이익 등을 우려하는 경우도 일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위기 속에선 한국인 특유의 끈끈함이 작용하지 않나. 사지에서 같이 고생한 동료들을 두고 오는게 쉽지 않고, ‘두 달넘게 버텼는데 석 달은 못버티겠느냐’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라며 “국내 선사의 한국인 선원들은 대부분 파트장급이라 책임감이 강하다. 선장 고생하는 걸 보면서 먼저 가겠다는 말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해운사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대체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업계 인력풀이 한정돼 있어 외항 선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특히 호르무즈해협 등 위험 요인이 있는 해역으로 가려는 인력을 구하는 건 더 어렵다.

고생하는 만큼 큰 보상이 돌아가기도 한다. 국제교섭포럼(IBF) 기준에 따르면 선박 운항 해역이 ‘전쟁위험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선원들은 기본급의 100% 수준에 해당하는 위험수당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또 IBF 보상과 별개로 국내 선사들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은 ▶1개월분 통상임금의 50%를 격려금으로 추가지급 ▶장기승선 동의 시 승무 기간을 연장하고, 8개월 이상 승선 선원에게는 초과기간만큼 유급휴가 추가지급 ▶선원의 하선권이나 승선거부권 행사로 결원 발생 시 결원수당의 1.5배 지급 등 조건에 특별합의했다.

현지 선원들은 개인 침실에서 생활하고, 선박 안에는 헬스장·영화감상실 등 공간이 갖춰져 있으며, 위성인터넷·위성방송 등을 통해 육지와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각 선박에는 선원 규모에 따라 최소 1인의 요리사가 탑승해 식사 등을 제공하며, 식량은 최소 40일 치 이상 비축 중이다.

A씨는 “인근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고, 최근 한국 선사 선박까지 공격받은 만큼 선원들의 공포감은 클 것”이라면서도 “다만 하선을 못 하거나 귀국하지 못해 특별히 불편함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고 전했다.

한국해운협회에 따르면 선원 임금 인상분, 연료비·식량·생필품비 상승 등으로 국적선 26척이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하루 4억9300만원 수준이다. 호르무즈해협이 지난 3월 6일 전쟁위험구역으로 격상된 걸 고려하면, 단순 계산 시 70일간 345억1000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국적 선사의 피해지원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148억원의 긴급지원자금을 승인했지만, 이미 선사들의 추가부담비용을 넘어선 상황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소 선사들의 경우 자금 여력이 크지 않아 문제인데, 사태가 종료된 뒤 추가비용에 대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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