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위해 이사 다니던 친구가 예순 넘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윤옥 2026. 5. 1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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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만나는 여섯 명 친구들,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황윤옥 기자]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무릎이야."

식탁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때마다 여기저기서 약속이나 한 듯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친구가 '어구구' 하고 운을 떼면, 기다렸다는 듯 다른 친구가 '내 허리야' 하고 화답한다. 45년 전 교실과 복도를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던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세월의 소리가 우리의 진짜 목소리가 되었다. 지난 9일, 경기도 수원에서 만난 다섯 명의 여고 동창과 나는 그렇게 '나이 듦'의 한복판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현대판 맹모로 살았던 친구

내 주변에는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전적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며 살아온 친구다. 임신 때부터 지극 정성으로 태교에 공을 들이더니, 아이가 자라는 내내 시야를 넓혀주겠다며 해외 곳곳을 누볐다. 그의 지극 정성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거처를 옮기는 '현대판 맹모'의 삶으로 이어졌다.

대구에서 초중고를,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친구는 늘 아이 곁을 지키며 묵묵히 뒷바라지했다. 아들이 공부를 위해 수원으로 터전을 옮기자 친구 역시 망설임 없이 짐을 쌌다.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로 짐을 쌀 때마다 친구는 망설임이 없었다. 오로지 아들의 앞날이라는 나침반 하나만 보고 움직이는 그 뒷모습은 지독하면서도 숭고했다. 마침내 아들이 교육 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자 이제는 그곳에 아예 뿌리를 내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너는 정말 대단해. 이 시대의 진정한 맹자 어머니야."
 요리사인 서울 친구가 지하철을 타고 낑낑거리며 가져온 보따리 속에는 정성 어린 밑반찬이 가득했습니다
ⓒ 황윤옥
우리 여섯 명은 해마다 두세 번은 꼭 만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포대기에 업고 품에 안은 채 모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밥을 해 먹이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참 많이 웃었고 행복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이 있다. 25년 전 겨울, 경북 구미의 자연학습원에서 보낸 2박 3일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얬고, 나무마다 눈꽃이 소복했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놀던 아이들의 빨개진 볼, 그 아이들을 업고 나누던 수다 위로 밤새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한 이번 수원 모임은 사뭇 달랐다. 예전 같으면
"이 소중한 시간에 TV는 무슨!"이라며 리모컨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우리였다. 하지만 저녁을 먹자마자 우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소파로 모여들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드라마를 보며, 배우가 내뱉을 대사를 먼저 가로채기도 하며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웠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끝도 없는 수다와 술자리는 이제 반주 한 잔과 TV 시청하기로 바뀌었다. 그 낯선 변화가 어쩐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다음 날 일정은 수원 화성 나들이였지만, 우리는 계획을 과감히 바꿨다. 간호사인 수원 친구가 최근 푹 빠져 있다는 '체질' 이야기에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리를 위해 체질 전문가까지 직접 집으로 불렀다. 체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 명씩 상담을 받느라 계획했던 관광은 뒷전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귀를 쫑긋 세웠다.

보이차부터 수지침, 아로마를 거쳐 이제는 체질에 맞는 효소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수원 친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안정되어 보였다. 45년을 봐온 친구였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예전에는 모임 때마다 몸이 안 좋아 밥도 잘 먹지 못하고 구석에 누워만 있었고, 얼굴은 항상 병자처럼 노랗게 떠 있던 친구였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음식을 가려 먹고 생활 습관을 바꾸며 스스로 몸을 다듬었다는 친구의 변화를 보며 깨달았다. 시간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말이다.

식탁의 풍경도 변했다. 요리사인 서울 친구는 이번에도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놓았다. 그 속에는 문경에 사는 동생이 직접 뜯어 보내줬다는 귀한 산나물들이 가득했다. 이 친구는 성당에서 신부님의 식사를 도맡아 하는 식복사다. 신부님의 건강을 책임지듯 우리를 위해서도 약이 되는 밥상을 차려온 것이다. 올해 퇴직을 앞두고도 그 솜씨를 놓치기 아쉬운 성당 측에서 간곡히 붙잡아 일을 더 하기로 했다니, 그 정성과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45년지기들과의 1박 2일을 뒤로하고 대구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 황윤옥
사실 친구는 수원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모임 때마다 무거우니 제발 빈손으로 오라고 몇 번을 말려도, 친구는 매번 그 고집스러운 사랑을 보따리에 담아 낑낑거리며 들고 온다. 지하철 환승역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 무게를 버텼을 친구의 무릎과 팔뚝을 생각하니 미안하면서도 뭉클했다.

동생의 넉넉한 마음과 베테랑 식복사 친구의 손맛이 만나 차려진 나물 반찬들은 그 어떤 유명 식당의 음식보다 훨씬 반가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속이 편안한 음식들. 이제는 입안 가득 퍼지는 심심한 나물 향이 최고의 만찬이 되었다. 그 반찬들에는 손맛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 그리고 누군가의 건강을 평생 보살펴온 친구의 귀한 마음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따라 움직이며 살아왔다. 아이를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환경을 바꾸고 거처를 옮기며 여기까지 흘러왔다. 예순이 넘은 지금, 우리는 이제 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살펴야 할 '환경'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몸'이라는 것을. 좋은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프면 미루지 말고, 꼭 병원 가라."

서로를 다독이는 친구들이 있어 새삼 고맙다. 함께 울고 웃어온 시간이 있고, 지금도 함께 익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은 생을 버텨낼 힘은 충분하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에게 가장 따뜻하고 건강한 '환경'이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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