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걸으면 길이 채워주더군요"
[나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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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아둘레길 3회 완주자 강대식 씨 강대식씨가 부산 오륙도 해파랑길 관광안내소 겸 코리아둘레길 명예의전당에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을 가리키고 있다. |
| ⓒ 사단법인 한국사람길 |
우리나라는 국가트레일로 2016년 해파랑길을 시작으로 남파랑길(2020), 서해랑길(2022), DMZ 평화의길(2024)을 차례로 개통하면서 이 길을 잇는 코리아둘레길 4500km가 완성됐다. 2020년 6월부터 시행한 '국가숲길'(대관령숲길, 지리산 둘레길, 내포문화숲길, 속리산둘레길, 한라산둘레길 등 10개 테마길)도 국가트레일에 합류했다.
걷기 인구에 비해서나, 60~70년대부터 국가트레일을 조성한 해외 선진국에 비해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늦게나마 국가가 나서서 트레일을 중점 관리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나라 국가트레일을 상징하는 대표 트레일이 코리아둘레길(4530km)이다. 미국의 국토종주길인 PCT(4265km)보다 긴 길이지만 완주자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걷기 인구 동인력을 높이고 있다.
길이로 치면 걷기인들에게 꿈의 길이기도 한 4500km의 긴 코리아둘레길 을 세 번이나 완주한 사람이 있다. 코리아둘레길 명예의 전당에 1번으로 이름을 올린 강대식(70)씨다. 걷기를 좀 하는 분이라면 모르는 분이 없는, 걷기 분야에선 독보적 존재다. 그는 지난해 개통한 국토종주길인 HANT 한국트레일(946km) 역시 1호로 완주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엔 공식 국토종주길이 없어 대부분 도로를 이용해 걸어야 했다.
HANT 한국트레일은 우리나라의 최남단 해남 땅끝에서 도보로 더이상 갈수 없는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 제진검문소까지 국토의 중심부를 최장축으로 관통하는 도보 트레일이다. 이 길을 기본으로 HANT 파주/강화~부산(PGB, 891km)까지 크로스로 완주하면 한반도 트레일(총 연장 1837km)이 완성된다. 코리아둘레길 최다 완주 기록 보유자인 강대식씨는 지난달 4일 HANT PGB까지 완주해 한반도 트레일을 1호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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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새재 조령관 한트 파주/강화-부산 14구간 중 문경새재 조령관 앞에 선 강대식씨 |
| ⓒ 강대식 |
"비결은 없습니다. 잘 걷는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빨리 가겠다는 생각 없이 일정한 걸음으로 꾸준히 걸을 뿐입니다."
- 걷기를 특별히 많이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도 걷기를 처음 시작할 땐 나름 목표를 가졌고, 걸으면서 잡생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걷다 보니 말 그대로 무념무상에서 걷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걷는 것은 잡생각을 버리는 단계로 가는 수행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걷기의 매력이 저를 계속 걷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저도 걷기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나고서야 걷기가 곧 명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에 어떤 동기로 걷기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퇴직하고서야 걸었으니 제 걷기 이력은 몇년 안됩니다. 2018년에 외씨버선길을 처음 걸었는데, 그때 처음 둘레길이 이렇게 좋구나를 느끼고 점점 걷기에 빠지게 됐습니다."
- 그런데도 지금의 걷기 성과를 이룩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걷기가 좋아서 걷는 거지만 걷다 보면 힘든 길도 많고 힘들 때가 많을 텐데요.
"힘든만큼 걷기를 끝냈을 때의 성취감과 보람이 큽니다. 그러다보니 힘든 것도 즐기게 됩니다."
- 말씀하신 대로 걷기 경험이 쌓일 수록 어떤 길이든 두려움 없이 마주하는 용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길을 걸으며 참 많은 일을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혼자 길을 걸으실 텐데 어떤 마음으로 걸으시나요?
"저는 별다른 계획 없이 길을 떠납니다. 미리 상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길이 보여주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길을 걸으면 길이 마음을 채워줍니다. 자유스러움, 초대받은 느낌 같은 감정이 듭니다. 일반 사람들이 쉬이 길을 떠나지 못하는게 준비가 많고 계획이 많고 막연한 두려움이 많아서입니다. 생각을 비우고 나서면 스펀지에 물이 차듯 마음이 가득 채워집니다. 그동안 저는 규격에 맞춰 공식적인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길을 걷다 보면 무애(無碍)한 자유인이 됩니다. 모든 것에 정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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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종주 시작점 강대식 씨가 지난해 11월 22일 한국트레일을 처음 시작할 때 해남 땅끝탑에 선 모습. 올1월 21일 한트 해남-고성을 32일 만에 완주한 후 지난달 4일 한트 파주/강화-부산을 25일 만에 완주하여 한반도 트레일 1호 완주자가 됐다. |
| ⓒ 강대식 |
"그냥 계속 가면 더 고생합니다. 질러가는 길이 눈에 보이면 질러가겠지만, 멀다고 생각되면 되돌아가서 제 길을 만나서 다시 갑니다."
- 저도 대만 허환산에 갔다가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코리아둘레길이나 국토종주길에 외진 곳이 많은데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식당이 없을 때를 대비해 김밥, 빵, 행동식을 지참해서 걷다 먹습니다. 4시쯤 되면 검색을 해서 얼마 더 가면 주변에 버스정거장이 있는지, 숙소가 어디 있는지 알아 봅니다. 갈 숙소는 미리 전화해서 할인 섭외도 하고 예약도 합니다. 택시는 거의 타지 않고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이동했습니다."
- 사람들이 아직 많이 안 걸어본 길이어서 인지 한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트 한반도 크로스 트레일도 완주하셨는데 걷는 도중에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어디였습니까?
"17구간 옥천의 며느리눈물길이 생각납니다. 두 갈래 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반대길로 끝까지 갔다가 다시 갈려니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슬봉 넘는 길이 낙엽길이고 절벽길도 있어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한트 강화-부산길은 수안보 쪽에서 캄캄한 밤에 내를 건너야 하는데 후레시로 비춰 보니 물이 불어 도저히 건널 수 없어 옆에 길 없는 산길 숲을 헤치고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 길은 수정 제안을 드렸습니다."
- 한트를 걸으면서 기억에 남는 고생했던 순간은 어느 때였습니까?
"횡성에서 홍천으로 넘어가는 작은삼마치가 있는데, 그 고개를 넘어가려고 산골까지 한참 온 상태에서 버스가 하루 두 번 밖에 없는 곳이라 되돌아갈 수도 없어서 무리해서라도 홍천으로 가려고 하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때 비가 오고 있어서 밤에 비를 피하기 위해 물펌프장 하우스에 들어가서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나선 작은삼마치 길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70년대 공병대가 만든 길입니다. 지금은 나무들이 길을 막고 더러 물에 씻겨나가 세월 속에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 나는 없어지고 다른 존재들이 차지하는 인생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 한트를 걸은 소감을 간략히 말씀해 줄 수 있으신가요?
"저는 이 길이 이전부터 꼭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우리의 삶과 국토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옛길을 이으며 과거와도 이어주는 이 길을 걸으며 진정한 한국인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설혹 옛길이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수풀이 덮여도 헤쳐가다 보면 성취감과 어느 길보다 희열과 보람을 얻게 됩니다. 국토를 가까이 피부로 느끼며 다른 길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토의 중앙을 걸으며 우리나라를 새로 알게 돼 다행입니다. 한트는 삶의 연결 통로였고, 모든 것을 품고 마음의 길을 열어가는 열림의 대로였습니다."
- 길을 걷다 보면 기억에 남는 좋은 일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저를 보더니 배곯고 다닌다고 용돈을 주시더군요. 길에서 만난 좋은 분들의 기억이 너무 많고 그분들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갑니다. 기억들이 사랑으로 채워지고 저의 성격도 좋은 것으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걷기 전엔 제가 하던 일이 그래서 였는지 쓸데없는 힘도 쓰고 성격이 깐깐한 편이었는데 걸으면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상처되는 말은 안하게 되고 같이 나누게 됩니다."
- 걷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한말씀해 주신다면요?
"나를 채워서 가면 만날 수 없습니다. 그냥 흐르는 대로 걸어봅시다. 만나야 될거, 찾아야 될거, 가족 생각, 걸리는 거, 그런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나서십시요. 걷다보면 자연히 채워지고 내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앞으로 살면서도 이루고 싶은 거, 만들어 가고픈 건 없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인연만으로도 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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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오륙도에서 지난달 4일 강대식씨와 기자가 한트 국토종주길(PGB) 마지막 구간을 같이 걸은 뒤 부산 오륙도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
| ⓒ 사단법인 한국사람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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