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호가 박노자와 김어준 인터뷰를 같이 보라고 권한 이유
나와 동료들은 기록을 한다. 그 말인즉, '기록 글을 쓴다'는 건데. 기록 글은 또 뭐라 설명해야 하나. 낯선 곳에 가서 자기소개할 때가 제일 애매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시 쓰는 OO입니다." "영화감독 OO입니다." 이렇게 담백하게 소개할 수가 없다. "기록하는 OO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뭐 하는 사람인지 알려나?
일기·에세이·증언록·기행문·자서전·평전·회고록·인터뷰·구술사·르포르타주 등 이 모든 것이 '기록'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기 쓰는 사람이 자신을 "기록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지 않는다. 에세이 작가도, 평전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기록 글'이라는 말은 있으면서도 없다. 이제는 이름을 좀 찾아도 되는 게 아닐까. 기록을 바탕으로 한 책들이 널리 읽히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라 하지만, 삶을 품은 목소리를 찾는 이가 많다. 나와 타인을 기록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도 어느 때보다 크다. 다들 기록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정작 '기록'이라는 건 무엇이기에 이름조차 없는 걸까. 알고 싶었다.
2025년 탄핵 광장이 열렸을 때, 한국작가회의에선 르포·기록문학분과를 신설했다. 공간과 동료가 존재하니 이제 질문을 하려 한다. "당신이 하는 '기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분과 회원들은 소위 '기록자'들을 만나 묻기로 했다. 르포·기록문학분과 기획연재 <지도에 없는 좌표>를 시작한다. <기자말>
[희정, 차성덕 기자]
인터뷰하는 사람, 지승호를 만나다
처음 만난 사람은 '인터뷰어' 지승호씨다. 그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60여 권의 인터뷰 책을 출간한 작가다. 류승완, 정유정, 신성일, 공지영, 박노자, 강신주, 표창원… 인터뷰를 한 인물을 나열하면 끝없이 이어진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인터뷰한 작가라 말할 수 있다.
기록 작업에서 인터뷰는 필수 요소다. 기본 중 기본이다. 그래서 기록 작업을 하는 이를 만나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이가 지승호 작가였다. 그런데 인터뷰는 그 기본이라는 속성 때문인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쉽게 치부되기도 한다. 큰 오해다. 제대로 인터뷰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기록 작업을 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내게도 인터뷰는 여전히 큰 과제다. 매번 어렵다. 그렇다고 지승호 작가에게 '인터뷰 잘하는 법'을 묻고자 하진 않았다. 그건 그의 저서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보면 될 일이다. '잘하는 법'을 듣는다고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에게 왜 인터뷰를 글쓰기의 주재료로 선택했는지 묻고자 했다. 인터뷰라는 방식이 지승호라는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에 발화하는 데 적합한 통로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23년 차 경력자를 인터뷰하다니. 이건 너무 나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이 아닌가.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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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승호 작가 지승호 작가와의 인터뷰는 3월 30일, 익천문화재단에서 진행됐다. |
| ⓒ 차성덕 |
지승호 작가를 소개한 말에서 '전문 인터뷰어'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가져왔다. '전문 인터뷰어'라니. 그의 경력을 보면 당연한 말 같기도 하고, 당연하기에 불필요해 보이는 수식어 같기도 하다. 동시에 무슨 말인가도 싶다. 전문 인터뷰어가 있다는 건 비전문 인터뷰어도 있다는 건데.
"예전에 출판사에서 붙인 말인데. 워낙 인터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여기니까 붙인 것일 텐데. 인터뷰어도 낯선데 '전문'까지 붙으니까 '얘는 뭐 하는 사람이야' 하는 시선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뭐냐고 비아냥거리듯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만두집에 '만두 전문' 그런 거라 생각해라' 했죠."
원래 '만두 전문'이라 간판 달린 만두집이 진짜 맛집이다. 그는 '전문'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워 이후로 '전업 인터뷰어'라고 소개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터뷰만 해서는 살림을 꾸려가기가 어려운데 '전업'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고민했단다. '전업'이 어려운 것이 글 쓰는 노동자의 현실이고, 자기소개에 '전문'을 붙일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 기록자의 현실이다. 타인의 말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그저 '받아적는' 것으로 폄하될 때가 있다. 그 이야기를 구성하고 만들고 전하는 사람의 역량은 쉽게 지워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항변이 의미심장하다.
"사실 고서들을 보면 인터뷰나 기록 작업으로 쓴 게 많거든요. 맹자 이야기라고 전해져 온 것도 다 그 제자들이 스승님 말을 전해 적은 거죠. 어찌 보면 인터뷰죠."
그는 롤모델이 '사마천'이라 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도 황제부터 민중까지 다양한 사람을 기록한 작품이다. '받아 적기'만 해도 글이 되는 일은 없을 뿐더러, 그 '받아 적는' 일조차 기록자가 무엇을 듣고(들으려 하고) '무엇을' 의미화하려 하는가에 따라 생명력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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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의 조건 최근 출간한 지승호 작가의 인터뷰집. 류승완 감독을 인터뷰했다.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의사라는 세계>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마음을 여는 인터뷰 특강> 등 60여 권의 저서는 나열하기도 벅차다. |
| ⓒ 은행나무 |
지승호는 "왜 인터뷰를 하는가?"의 질문에 자주 답해야 했다. 보통 '사람을 알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대화를 통해 타인을 알고 배우는 일이 좋다고 했다. 사람에게 궁금한 것이 별로 없는 나는 그때마다 그의 답이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이해하지 못한 게다.
"일단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한 게 많고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과정이 역사가 되고, 그게 기록이 되잖아요. 그런 걸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 류승완 감독님 만난 것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감독님이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드셨잖아요. 그건 대중과 교류했다는 거고, 그런 사람이 가진 생각 그리고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이 굉장히 중요한 기록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제가 한 기록들이 어느 정도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거든요. 다른 기록 작가분들의 작업도 있고, 뭐 그런 작업물들이 다 모이면, 우리 사회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주로 인물 인터뷰를 하기에, 밖으로 알려진 지승호는 '사람'에 집중하는 사람이지만, 실은 개별의 인물이 사회와 어떻게 맞물리고 맞부딪치는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저는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토론할 줄 아는 사람이 정치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더 하는 거 같아요. 지난번 대통령을 보면, 토론이 안 되는 분이었잖아요. 근데 그런 캐릭터가 어떤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까지 우리가 본 거고.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계속 검증하는 게 중요한데, 우리가 그 점이 소홀했던 게 아닐까.
그건 진보 진영 쪽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사회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게 옳은지도 끊임없이 물어봐야 하는데, 한국사회 정치는 진영 안에 머물죠. 진영 안에 있다 보면 이 진영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만 만들어지는 거예요. 사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 모든 사안에 대해서 보수,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그런데도 고민 없이 정치적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 점점 이 사회를 맹목적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지승호는 무수히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흔히 판매량순으로 작품이 나열되기에 특정 정치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서들을 나란히 배치해보면 스펙트럼이 꽤 넓다. 그의 작업은 다양한 이를 인터뷰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박노자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묻고, 김어준에게도 같은 주제의 질문을 한다. 성노동자들의 대담을 기록하기도, 소위 386이라 불리는 세대의 전형적인 정치인들을 하나의 인터뷰집에 모으기도 한다. 그 인물 하나하나가 세상의 전부를 말해주진 못하지만, 그 인물들은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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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승호 작가 인터뷰 지승호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날 3시간 가까이 이뤄졌다. 인터뷰의 첫 질문은 "말의 힘을 믿으세요?"였다. |
| ⓒ 차성덕 |
그가 인터뷰했던 이 중 가장 유명한 이는 김어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승호 작가의 충실한 독자이지만, 그를 다룬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지승호 작가가 펴낸 책의 절반은 손대지 않았다. 나는 그 인물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궁금했기에' 읽었던 박노자와의 인터뷰 <좌파하라>에서 지승호는 책 끝에 뱀발(사족)을 달아 말한다. 김어준 인터뷰를 읽은 사람은 박노자의 인터뷰도 읽어보길 바란다고. 각 인물이 자신의 시선으로 풀어낸 민주주의를 펼쳐보면, 그의 바람대로 이 사회의 지형이 보일 것이다. 그가 하는 인터뷰는 사회라는 지도를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제가 그렇다 보니까, 이 사회에 대해 궁금해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좌충우돌하시는 분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보수와 진보 구별 없이. 자신의 어떤 면을 숨기는 사람보다는 솔직하게 얘기함으로써 자기가 비판받을 건 받고 교정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를 할 수 있겠다 싶은 거죠."
그렇다고 지승호를 온 사람을 다 품어 안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인터뷰를 보면 그의 질문은 적확하다.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만 쉽게 옹호하려 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한 사람은 이 태도를 견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이러한 강점이 드러나는 건 그가 지닌 균형감 때문일 게다.
"박수만 쳐서는 그 사람을 드러낼 수가 없잖아요. 사람에 대해 균형감을 가지고 보려는 노력을 하는 편이라. 제 태도가 부드러워서 그렇지, 사실 질문 중에 상대방이 공격적이라 여길 수도 있는 내용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해야 이 사람의 진면목도 드러나고 왜 진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쪽'이거나 '내 편'만은 아닌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다. 그가 궁금해서. 그건 몹시 용감한 일이 아닐까. 타인을 직면한다. 그건 내가 생각한 바가 옳은지 스스로 묻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내 생각이 편견이고 무지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겠다는 자세. 나는 지승호 작가처럼 용감하지 못하다. 그러니 나는 그의 절반 독자다.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 용감한 독자들을 늘려가는 일로 여기는 듯했다.
"한참 된 일이긴 한데, 우리에게 지금 대자보가 필요한 거 아니냐 해서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대자보 시리즈'를 내기도 했어요. 대자보라는 거는 목소리가 약한 사람들이 정권이나 권력에 항의한다든지 뭐 이럴 때 붙이는 거잖아요. 그런 취지였고, 8권인가 나오다가 판매가 부진하다 보니까 그 시리즈를 접었는데. (성노동자나 성소수자 문제 같은 것은) 좀 논쟁적 요소가 그 시리즈로 드러났으면 싶었는데,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이 알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정치적이다. 이 말이 사라져가고 있다. 얼마 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저자로 알려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의 대담에서 정지아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첫 번째 세대"가 등장했다고. 단지 세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을 내 울타리에 들이지 않으려는 태도가 확산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속한 사회는 하나의 진영도, 한 가지 모습도 아니기에, 타인은 사회를 이해하는 통로이다. 사회로 나아가려면 타인을 건너야 한다. 나와 다른 이에게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묻는 일은 중요하다. 그 행위를 우리는 때로 소박하게 '인터뷰'라고 부른다. AI 등 기술 변화로 인해 인간이라는 개념과 역할마저 요동치는 시대에도 변치 않고 필요한 것을 "질문하(려)는 태도"라 꼽은 지승호의 말에 끄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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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모 노트 인터뷰 내내 지승호 작가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
| ⓒ 차성덕 |
"김정은 위원장을 한번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사람들은 좀 농담처럼 받아들이던데. 퓰리처상을 받을 방법은 그거밖에 없겠더라고요.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꿈은 꾸어야 이루어지잖아요. 김정은과 인터뷰를 해서 이 사람 속내를 막 끌어내고 싶네요. 세계에서 정말 이제 유일한 체제잖아요. 4대 세습을 하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고방식과 시스템이 있을 거고요. 이 얘기는 정말 재밌겠다. "장성택 고모부를 죽이고 울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때 왜 그랬어요? 기분이 어떠셨나요?" 뭐 이런 식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거죠. 제가 죽을 각오를 하고 만나야 되겠지만요"
그 북쪽 사람의 이름을 듣자 반사적으로 웃었지만, 정말 사람 이야기를 사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왜 사마천을 롤모델로 꼽는지 어렴풋이 이해를 한다.
"기록자로서 한번 도전해 볼 만한 작업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이거 하면 재미있겠다 싶은 거를 하기 위해, '이때까지 버텨보자' 이런 생각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버텨야 계속 다음 책을 낼 수 있으니까. 계속 무언가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글 작업은 자전거를 타는 일과 비슷하다. 즐겁지만, 두 발로 끊임없이 페달을 돌려야만 앞으로 나아간다. 멈추면 쓰러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품게 한다. 그럼에도 사람으로 만나는 이야기는 즐거우니까 힘주어 페달을 돌린다.
한 방송에서 진행자(데프콘)가 지승호 작가의 책을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문가에게는 기술이 보이고, 독자에게는 사람이 보인다"고. 크게 동의한다. 자전거 페달이 아니라, 수면 아래 물갈퀴에 빗대어야겠다. 기록자는 자신이 만난 인물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수면 아래서 물갈퀴질을 한다. 기술을 부리는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갈고닦은 기술이다. 기술 끝에 오는 돌아오는 것은 그 인물과 그 인물에게 공명하는 세상이다. 노고의 대가로 충분하다. 다만 조금 더 바란다. 전문 인터뷰어·인터뷰 작가·기록자, 무엇으로 불러야 적확할지 모르겠는 누군가의 그리고 우리의 작업과 노동이 더 존중받기를.
인터뷰이: 지승호
인터뷰어 및 기록 : 희정
촬영 : 차성덕
덧붙이는 글 | 한국작가회의 르포.기록문학분과(이하 기록분과)에서 기획한 연재입니다. 희정, 차성덕, 소희가 함께하고 있다. 가입이나 기타 문의는 hanjak_repo@naver.com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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