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분 가능할까요?" 걱정하는 마흔다섯 임신부에게 해준 말
마흔의 임신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고령 임신과 노산 엄마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2007년 나이 마흔에 둘째를 낳은 노산 1세대로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현실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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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위 리브 인 타임> 출산 장면 너무 리얼했던 출산 장면. 행복한 부부의 표정 뒤로 변기가 눈에 걸린다 |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봄맞이 감성 충전을 하자며 함께 글 쓰는 친구와 개봉일 극장을 찾았다. 에겐남과 테토녀의 러브스토리를 기대하며 순두부같이 몽글한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극장을 나올 때는 각자의 출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친구는 이십 년 전 그날을 어제 일처럼 소환하더니 라마즈 호흡을 하듯 내뱉었다.
"맞아. 아기를 낳는 건 드라마처럼 우아한 일이 아니야. 목숨 건 한판 승부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산모,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남편, 힘 한번 주면 우렁차게 울리는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부부의 품에 안기는 인형같은 아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출산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임신과 출산을 계획한다면 미리 말한다. 100% 뻥이다. 실제 출산은 훨씬 더 '날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날 것'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영화속 출산 장면을 보면서 마흔의 나를 떠올렸다. 화장실 타일 바닥에서 아이를 낳은 건 아니었지만, 고령의 임신은 시작부터 짠내가 났다. 마흔에 임신을 했는데 온몸이 따끔거렸다. 임신때문이냐고? 당연 NO. 사람들의 시선이 온몸에 꽂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한번 결정하면 앞만 보고 가는 '직진 인간'이다.
출산 3일 전까지 열일한 결과
"오늘 정기검진 날이지? 김기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임신 초기부터 남편은 정기검진에 늘 동행했다. 자상한 남편? 맞다. 하지만 그보다 의리로 묶인 동지에 가깝다. 오랜 시간 같은 직장에서 일했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번 임신도 함께 만든 프로젝트였다. 같이 시작했고 같이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남편의 흰머리였다. 삼십대부터 시작된 새치는 이미 검은 머리보다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구역에서 흰머리는 진료실 의사와 남편, 둘 뿐이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갈 길을 잃는다. 저쪽에서 힐끔, 이쪽에서 힐끔. 그러다 입을 가리고 소곤소곤. 소머즈도 아닌데 그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도대체 몇 살쯤일까.'
'저 나이에 임신을 한 거야?'
거기에 사람들의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액션이 있었으니 남편의 졸음이었다. 산부인과 대기 시간은 기본이 한 시간. 남편은 그 시간을 틈타 밀린 잠을 보충했다. 평일 한낮, 흰머리 중년 남자가 산부인과 대기실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뭔가 애틋한 사연 하나쯤 있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파워F 남편은 그런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숙면이라도 취하듯 아주 편안한 얼굴로 졸았고, 초음파를 보며 물개박수를 치고 심장 소리가 들리면 눈물을 흘렸다. 흰머리 남자의 1인극 무대였다.
그렇다면 대문자T 직진 인간인 나는 어땠을까. 일단 노산이라고 해서 일을 줄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고령 임신의 위험을 떠올리며 쉬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 실제 의사도 노산이라는 이유로 휴직을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하던 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노산, 그게 뭐라고.
한 달에 두 편씩 기업 홍보 제안서를 프리젠테이션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임신할 줄 모르고 계약한 모 기업의 책 집필은 임신 8주에 시작해서 40주에 원고를 넘겼다. 배는 점점 남산이 되었고 다리는 코끼리가 되어갔다. 외출할 때는 가방에 삼선 슬리퍼를 넣어 다녔다. 회사든 차 안이든 틈만 나면 갈아신었다.
그뿐인가. 나는 임신 내내 꽃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임부복을 입지 않았다. 오버핏 셔츠에 햅번 바지, 때로는 임산부용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했다. 옷은 전부 동대문 시장에서 샀다. 고무줄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바지와 스커트는 마흔의 임신을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부적이었다. 그래, 나 마흔에 임신했다. 어쩔래. 뭐 어쩌라고. 덤벼.
그렇게 40주가 되었고 예정일을 3일 앞둔 날이었다. 밤을 새워 마지막 원고를 메일로 보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병원에 전화를 했고 바로 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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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짜로 찍어준다길래 얼씨구나 얼굴을 내밀었던 출산 후 기념사진. 이 사진이 분만실에 붙어있었다니. 우리 공주님 얼굴 공개 |
| ⓒ 정현주 |
"선배, 병원 분만실에 선배 사진이 있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큭큭큭)"
전화기 안에서 잔뜩 부풀어있는 웃음의 부피가 느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유는 곧 알게 됐다. 후배 아내는 나와 비슷하게 임신 중이었고 같은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기를 낳으러 분만실에 들어갔는데 분만실 벽에 내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었고 그 밑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40세 노산 정00님.
2시간 만에 자연분만 성공!
산모님들, 희망을 가지세요!
자연분만 하고 싶은 40대 노산 산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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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분이 뭐길래 자연분만을 걱정하는 노산 엄마들의 고민 상담소. 하루에도 많은 양의 노산고민이 맘카페에 올라온다. |
| ⓒ 정현주 |
"노산인데 자분 가능할까요?"
"꼭 자분하고 싶어요."
가통(가정통신문) 이후로 오랜만에 만난 신세계다. 자분이라. 자양분도 아니고 자가분양도 아닐테고. 알고 보니 '자연분만'의 줄임말이었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지만 불가능할 것 같다는 마흔 다섯 살 엄마가 올린 글이다. 댓글에는 걱정이 쏟아지고 있었다. 노산은 여전히 사람을 작게 만드는 단어였다. 나는 잠시 멈췄다가 댓글을 썼다.
마흔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지금 열여덟입니다. 2시간 만에 자분했습니다. 평소처럼 사세요. 자분, 별거 아닙니다. 파이팅!
위 리브 인 타임(We Live in Time). 사랑도 삶이고, 결국은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의 이야기였다. 노산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에선 이른 출발도, 늦은 출발도 없다. 산모도 아이도 무사히 종착역에 닿기만 하면 된다. 노산이라도 평소대로 살아도 되고, 고위험 산모는 의사와 충분히 상의 후 지시대로 따르면 된다. 그러니 너무 고개를 숙일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미 걱정은 충분히 하고 있지 않나.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다. 그 답은 내가 정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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