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의 기다림…금동관음보살좌상 복원품 서산 부석사에 봉안

신진호 2026. 5. 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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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년 왜구에 약탈당했던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647년 만인 지난해 1월 24일 충남 서산 부석사로 옮겨져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11일 충남 서산 부석사 경내에 모인 신도들은 불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신도들은 연신 “관세음보살~”을 반복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신도들은 “지금은 관세음보살(불상)을 보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염원했다. 이날 부석사에서 열린 법회를 마지막으로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은 일본으로 반환됐다.


1330년 고려시대 서주(현 서산)에서 제작


신도들의 오랜 염원이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다시 서산 부석사로 돌아온다. 진품은 아니지만,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복원품으로 1년간의 제작을 거쳐 17일 봉안식과 함께 다시 신도들과 만나게 된다. 더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고 신도들과 함께 부석사를 지킨다.

부석사는 17일 오전 10시 금동관음보살좌상 복원품 봉안식을 개최한다. 7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복원품으로나마 제자리를 찾은 불상의 봉안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송월 설정 스님을 비롯해 주경 스님과 조계종 7교구를 주관하는 도신 스님 등이 참석한다. 관음보살좌상이 보관돼 있던 일본 대마도 간논지(觀音寺) 주지를 지낸 다나카 셋코 스님도 직접 부석사를 잦는다.

13330년 고려 충숙왕 때 서주(현 서산시) 부석사 신도들이 조성한 뒤 왜구에 약탈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복제 과정을 거쳐 17일 부석사에 봉안된다. 연합뉴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서주(瑞州·현 서산시) 도비산 부석사에서 신도 등 32명이 조성한 불상으로 불상 내부의 결연문(結緣文)을 통해 제작 시기와 장소, 목적이 확인됐다. 높이 60㎝, 무게 40㎏의 금동 작품으로 당시 고려 불교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왜구가 약탈한 뒤 대마도 간논지 보관


불교계는 이 불상이 14세기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뒤 일본 쓰시마 간논지에 보관됐던 것으로 추정했다. 불상은 2012년 10월 한국인들로 이뤄진 문화재 절도단이 간논지에서 불상을 절도한 뒤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상의 존재가 알려졌다. 일본에서 가져온 불상은 문화재청에 보관됐다가 대법원 판결 이후 100일 동안 원래 있었던 부석사에 임시 보관됐었다.

서산 부석사 측은 2016년 국가를 상대로 “왜구가 약탈해간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우리에게 돌려달라”며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불상에서 발견된 결연문을 비롯해 고려사에 기록된 왜구가 1352~1381년 서주 일대를 5회 이상 침탈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7년여 간의 재판을 거쳐 대법원은 2023년 10월 부석사의 패소 판결을 확정했고 결국 2025년 5월 11일 불상은 일본으로 반환됐다.

17일 충남 서산 부석사에 봉안된 금동관음보살좌상 복제품 제작 과정. [사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이후 조계종을 비롯해 부석사 신도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을 중심으로 불상을 복제해 부석사에 봉안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일본 측은 추가 절도가 우려된다며 불상을 대마도 간논지가 아닌 박물관으로 소재지를 옮겼다. 이후 양국 불교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복제 승인이 이뤄졌고 2025년 7월 다나카 셋코 간논지 전 주지가 직접 부석사를 방문, 복제 승인서와 3D 스캔 데이터를 무상으로 전달했다.


대법원 "일본에 돌려줘라" 판결…3D 스캔 통해 복원


복원작업은 단순히 현재 원본 불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화상 흔적이 남고 보관(寶冠)과 좌대(座臺)가 소실된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고려시대 불상 양식에 대한 면밀한 고증과 성분을 분석, 1330년 조성 당시 모습을 완전하게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2022년 6월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조계종 부석사와 국가(대한민국)간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증인으로 출석한 대마도 간논지 다나카 세쓰료 주지가 불상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신진호 기자
서산 부석사에 있던 금공관음보살좌상의 절도 경위. 중앙포토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부석사 측은 이번 봉안식이 최첨단 3D, 기술과 전통 주조기법을 결합한 결과물로 부석사 신도는 물론 불교계의 숙원을 해결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신도들 역시 "우여곡절 끝에 불상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아쉬움이 컸는데 복원품이라도 봉안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하반기 복제품을 추가로 제작, 연구원에 전시할 예정이다.

신도들 "복원품이라도 복안돼 그나마 다행"


충남역사문화원 장기승 원장은 “비록 원본은 일본에 있지만, 복원품은 원본과 동일한 크기와 성분, 전통 주조기법으로 제작했다’며 “이번 봉안식은 700년 전 고려인의 신앙과 깊은 불심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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