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데이팅 앱 사이... 독실한 무슬림 소녀의 이중생활

김상목 2026. 5. 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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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

[김상목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이민자 가족의 막내 '파티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상태다. 부모님과 두 언니와 함께 단란하게 사는 그녀에게 큰 아쉬움은 없어 보인다.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관계도 나쁘지 않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친구도 있다. 졸업시험에 몰두하는 자신을 기다려주는 속 깊은 연인이 고마울 따름.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언젠가부터 남자친구를 만나도 끌리지 않는다. 딱히 다른 상대가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혹시 취향이 바뀐 걸까? 호기심에 파티마는 데이팅 앱 서비스에 가입한다. 흔하다면 흔한 일일 테지만, 앱은 레즈비언 전용이다. 매일 5번 기도를 게을리 않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그녀로선 금단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셈. 몇 번의 데이트 후 파티마는 한눈에 끌리는 한국계 여성 '지나'를 파트너로 맞게 된다. 둘은 첫 만남부터 영혼의 단짝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대학 진학과 성인으로 홀로서기, 인생의 첫 분기점에서 파티마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자신의 성적 지향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 스틸
ⓒ 찬란
주인공은 '선머슴' 같다고 언니들이 놀리긴 해도 눈에 띄는 외모와 씩씩한 성격의 소유자다. 큰 부자는 아니라도 크게 아쉬운 것도 없다. 부모님은 사랑으로 자식을 대하고, 티격태격해도 막내의 어리광에 언니들도 맞장구를 쳐준다. 학업 성적도 나쁘지 않고 선천적인 천식이 있긴 해도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활약할 만큼 건강하다. 슬슬 외모도 좀 꾸미고 사랑받는 신부가 되기 위해 요리나 살림도 배우라며 주변에선 성화다.

하지만 당사자는 시큰둥하다. 그래도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는 가족 분위기 덕에 조혼을 강요당하거나 집에 갇히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여자는 집 안에만 머무르며 현모양처 수업만 받으면 된다는 보수적인 가풍과 거리가 멀기에, 딸부잣집 세 자매는 모두 고등교육을 이수했다. 어머니는 딸들의 자격증을 흐뭇하게 한참 바라본다. 자식들과 같은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딸들을 뒷바라지해 뿌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이민자 가족이 꿈꾸던 기회는 차근차근 실현된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남자친구는 이제 파티마와 공개적으로 만나기를 원한다. 결혼해 그녀를 닮은 딸도 낳고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자는, 별달리 흠 잡을 게 없는 미래 설계다. 그러나 파티마는 프로포즈에 반응이 신통찮다. 남자친구는 그녀의 변심을 의심하지만, 파티마는 속내를 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다. 여성에 끌린다는 걸 어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괜히 학교 친구들에게도 짜증을 부린다.

데이팅 앱 서비스로 레즈비언 지향의 여성들과 교류하며 파티마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간다. 그러나 일회성 만남만으론 허전함을 채울 수 없다. 이성이건 동성이건 그녀는 진지하고 교감하는 관계를 원한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에게 낯선 유혹이 쇄도하지만, 파티마는 또래가 휩쓸리기 좋은 쾌락에 탐닉하진 않는다. 오히려 주체적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구도의 과정에서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데 가깝다. 그러나 쉽게 그 소망이 이뤄질 순 없는 노릇.

사랑의 불장난을 넘어 진정한 자아 찾기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 스틸
ⓒ 찬란
그토록 원하던 잘 맞는 상대와 만났다. 인생의 봄날이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던 연인과의 관계는 뜻하지 않게 틀어진다.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 신입생의 시간은 질풍노도로 치닫는데 예상하지 못한 연인의 잠수는 파티마를 방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와중에도 좌충우돌해가며 장래를 위한 암중모색에 바쁜 그녀다. 평일엔 자유분방하게 만남을 이어가면서도 공휴일엔 복식을 단정히 하고 모스크에서 신앙생활에 매진한다.

하지만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던 구도의 길은 오히려 더 깊은 혼돈으로 파티마를 몰아간다. 독실한 신자로 기도를 게을리 않지만, 자신이 믿는 종교는 본인의 성적 지향을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둘 중 하나도 놓치기 싫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가족에게 당당히 드러내지도 못한 상태인 건 둘째 치고, 개인의 양심도 허용하지 않는 셈. 어떻게 현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장난꾸러기 막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어머니는 한눈에 변화를 간파한다.

여기에서 국내 관객이 획일화하거나 편협된 시각으로 단정하기 쉬운 프랑스 내 무슬림 이민자 사회의 평범한 풍경이 은근히 관객을 놀랍게 만든다. 동성애자 자식을 '명예살인'하거나 당장 돌로 쳐죽일 것만 같은 끔찍함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퀴어 당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프랑스라고 없지 않지만, 그것이 무슬림 인구 증가와 비례하진 않는다. 근래 국내 극단주의 세력이 유포하는 '유라비아'(유럽이 아랍화된다는 선동) 주장과는 딴판의 풍경이 펼쳐진다.

파티마가 고해 상담을 하러 찾은 무슬림 성직자는 동성애에 대해 같은 신을 믿는 종교는 모두 고대로부터 금지하고 있다며,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가 한 뿌리에서 기원함을 설파한다. 사회적 보수파라면 종교 막론하고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보편적 논리다. 파티마 가족은 독실한 신앙을 공유하지만,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나 자녀의 꿈을 짓밟지 않는다. 다만 약간 이질감이 들 뿐, 프랑스어와 문화를 공유하며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일 따름.

그렇게 영화는 국내 극우세력이 유포하는 유럽의 다문화와 이민자 사회가 보이는 전반적인 경향을 엿보는 통로로 기능한다. 국내 극우세력이 공산주의-좌파-퀴어-무슬림을 뭉뚱그려 비난하는 것과 달리, 유럽에선 훨씬 복잡한 균열이 사회를 분단하는 중이다. 퀴어 상당수가 무슬림의 동성애 배격을 빌미로 이슬람 혐오를 드러낸다거나, 극보수주의 사이에 묘한 근연성이 형성되는 지점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일방적 선동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노릇.

종교와 성적 지향을 넘어 근대적 시민으로 거듭나기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 스틸
ⓒ 찬란
파티마는 철학도를 지망했다. 신입생으로 강의실에 들어선 첫날, 교수는 "자발적 복종"을 집필한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피력한다. 16세기 청년 법학도였던 그는 당연한 것처럼 누구나 인식하던 종교와 국가의 권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18살 청년은 사회적 관습으로 주입된 기존 질서가 마치 태초부터 존재한 것처럼 길드는 걸 경계한다. 개인이 천부인권으로 갖고 태어난 자유를 망각하도록 습관화하는 데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시대를 앞서간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사상의 기초가 되고, 이후 프랑스 공화국의 이념적 토대로 받아들여진다. 왕의 목을 자르고 중세엔 구름 위 존재나 다를 바 없던 고관대작과 교회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는 '공화국 시민'의 평등과 이상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프랑스 공화국의 이상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시점에서 이 영화가 천명하는 16세기 사상가의 질문은 다시금 근대 시민사회의 통합력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로 자연스레 읽힌다.

감독은 위기에 처한 (비록 완벽한 건 아닐지언정) 프랑스 민주주의 시스템을 복원하자는 열망을 이민자 2세 소녀의 성장기와 절묘하게 버무린다. 소수자와 이민자의 다양성을 포용하되, 그들이 원래 속해 있던 집단의 폐쇄적 '습관'에 종속되지 않길 염원한다. 기존 집단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민주 공화국의 가치에 공명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근대적 '시민'으로 수혈되어야 한다는 지론은, 감독 역시 북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담는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정치학개론으로 치닫지 않는다. 복잡한 배경을 가진 주인공이 10대 끝자락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 자리를 찾는 과정을 퀴어 로맨스와 청소년 성장기로 융합하는 솜씨가 출중하다. 계몽주의 훈계가 아니라 인생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될 몇 달여 형상화만으로 주제의식을 듬뿍 농축한다. 원작의 2차원 텍스트를 3차원 이미지로 변환하는 각색 과정은 선택과 집중이 출중한 덕분에 누수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청춘 드라마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설정과 디자인의 향연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 스틸
ⓒ 찬란
영화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 가운데 예외적일 만큼, 외부적 탄압과 물리적 폭력을 덜 드러내는 편이다. 성 소수자의 수난, 보수화된 종교 계율에 따른 억압 같은 단골 레퍼토리 대신에 주인공의 내적 방황과 성숙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자율적 결단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여러 환경 문제를 무시할 순 없지만, 결국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시민사회 기반 해법이 복잡한 갈등을 풀기 위한 해법이란 입장이 확고하다.

국내에서도 극우 세력의 반발을 딛고 도시의 색깔을 채우는 문화행사로 자리잡고 있는 퀴어 축제와 관련 커뮤니티 묘사가 기시감을 보는 이들에게 선사한다. 물론 거기라고 성 소수자 혐오가 없진 않겠지만, 전국 어딜 가나 집착하듯 달려드는 일부 개신교 반대시위대에 진저리가 난 이들로선 부럽고 매력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저게 프랑스 사회 내에서 보편적인 것까진 아니라도 엄연히 시민의 권리이자 자유로 정착했다는 건 확연히 다가오는 대목이다.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로 스크린에 데뷔한 신예 나디아 멜리티는 문자 그대로 '파티마' 자체인 듯 동기화를 선보인다. 소녀의 혼란과 성인의 결심을 한 얼굴에 다양한 표정으로 구현하는 선굵은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감독이 왜 처음 본 순간 매혹되었는지 절로 공감이 갈 법하다. 영화가 잘 되려면 그런 행운이 호박넝쿨처럼 굴러들어오는가 보다. 그와 함께 국내 관객에겐 특히 더 시선을 끄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파티마와 천생연분, '지나' 역 박지민 배우다.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 데이비 추의 <리턴 투 서울>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 서울을 유랑하는 캐릭터로 인상을 깊게 남긴 박지민은 실제 어릴 적 이민간 한국계 프랑스인으로, 자신의 실제 정체성과 연결되는 배역에 탁월한 해석을 선보인다.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에서도 주인공을 들었다 놨다 하며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굵직한 궤적을 남긴다.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이민 2세대 성 소수자 커플, 새로운 공화국 미래세대의 굴곡 많은 연애담이 그렇게 완성된다.

<작품정보>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
The Little Sister
2025|프랑스, 독일|드라마, 로맨스, 퀴어
2026.05.13. 개봉|108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 하프시아 헤르지
출연 나디아 멜리티, 박지민
원작 파티마 다스 - 소설 『막내 딸』
수입/배급 찬란
공동제공 소지섭, 51k

2025 78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퀴어종려상
2026 51회 세자르영화제 신인여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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