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교직 생활했는데 '추사의 그림 수업'에서 다시 배운 것

최옥화 2026. 5. 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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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간송미술관 '추사의 그림 수업' 전, 오는 7월 5일까지

[최옥화 기자]

붓을 들어 본 사람은 안다. 선 하나를 긋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그 선 하나에 마음이 담기고, 삶이 담기고, 때로는 외로움이 담긴다는 것을. 오늘은 그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았던 한 사람을 만나러 지난 1일 대구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추사 김정희다. 그런데 전시 제목이 묘하다. '추사의 그림 수업'. 그림 수업이라니, 작고한 대가의 전시에 '수업'이라는 단어가 붙다니! 호기심을 자극한다. 들어서는 순간, 그 제목이 딱 맞다는 걸 직감했다.

추사의 진품을 보기 전에 먼저 상설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실 1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수집한 신윤복, 김홍도의 그림과 도자기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들의 그림은 볼 때마다 재미있다.

일제강점기, 나라의 것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은 사람. 간송! 그의 수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저항이었고 사랑이었다. 그가 지켜 낸 유물들이 그의 형형한 정신만큼이나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전시실 2는 장승업의 그림 삼인문년이 있고, 신윤복의 미인도를 서양의 유명화가들의 화풍으로 AI가 변환한 이미지들이 있다.
▲ 미인도AI버전 신윤복의 미인도를 서양화풍으로 바꾼 이미지
ⓒ 최옥화
조선 시대 그림 속 여인이 서양 화풍으로 바뀐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다. '동양미'라는 게 확실히 존재하는가 보다. 미인도의 여인이 살아 움직이고, 눈빛을 맞추고 표정이 바뀌는 디지털 그림에서는 신윤복이 저 여인의 눈빛을 그릴 때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250년을 건너뛰어 그 눈빛을 다시 살려냈다. 예술은 시간을 이기고, 기술은 그 시간을 더 가까이 데려온다.
두 눈으로 직접 본 진품 '세한도'
▲ 세한도 추사 간송미술관 추사의 그림수업 중
ⓒ 최옥화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전시실 4에 세한도(歲寒圖)가 있었다. 진품이다. 제주의 추사 유배지에서도 보았지만, 진품을 대한다는 마음에 더욱 설렌다. 교과서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수업 시간에 수도 없이 설명했던 바로 그 그림. 그런데 유리 너머 실물 앞에 서는 순간, 기분이 묘하다. 시간을 뛰어넘어 추사가 그림을 그리는 그 장면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를 따라 마음이 춥다. 추사가 제주 유배지에서 붓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척박한 섬, 끊어진 인연들, 그럼에도 변치 않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에게 건네는 감사. 그것이 저 몇 줄의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여백이 더 많은 그림이다. 그러나 여백이 비어 있지 않았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 일렁이는 마음을 누르고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 전시에는 세한도 외에도 '불이선란도'와 '난맹첩' 등 추사가 도달한 예술적 경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중 '계산무진(谿山無盡)'— '계산은 끝이 없구나'라는 뜻의 대자(大字) 글씨는 전·예·해·행·초서의 필법이 융합된 추사체의 완결판이었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와 우뚝 솟은 산의 형상을 글자 안에 담아낸 그 글씨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글씨가 그림이고, 그림이 글씨였다.

그리고 옆 전시실에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그림 수업', 추사의 여덟 제자 그림이 걸려 있었다. 전기, 조희룡, 김수철, 조중묵, 이한철, 유재소, 유숙, 허련. 저마다 다른 결의 붓이 서로 다른 세계를 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제자의 그림 옆에 스승 추사의 평이 함께 적혀 있다는 점이다. 추사는 제자들에게 비평서 <예림갑을록>을 통해 세심하게 지도했다. 칭찬도 있고, 날 선 지적도 있다. 그런데 그 평들이 차갑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40년 교직 생활 동안 나도 수없이 학생의 글을 읽고 평을 썼다. 좋은 평은 그 사람의 가능성을 읽어주는 것이지, 현재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추사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스승과 제자 사이. 그 관계의 본질은 결국 믿음이라는 것을.

제자 김수철의 그림 두 점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죽창문설(竹窓聞雪). 눈 덮인 대나무 숲에 정자가 포근하게 앉은 그림. 설명패에는 "대상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히 생략한 원경과 풀어진 듯 부드럽게 입힌 엷은 채색에서 독창적인 미감이 드러난다"라고 적혀 있었다.
▲ 김수철 위 죽창문설 아래 야주어적 추사의 그림수업 중 제자 김수철 그림 두 편
ⓒ 최옥화
그리고 또 한 편인 야주어적(夜舟漁笛). 밤배에서 부는 뱃사공의 피리 소리. 짙게 내려앉은 강가, 뱃머리에 기대앉아 피리를 부는 사람. 말없이 바라보는데, 그 고요 속에서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그림 둘은 지난 프랑스 여행에서 본 모네의 그림 중 안개에 뒤덮인 런던을 그린 그것과 묘하게 연상되는 점이 있다. 안개 때문인가? 동서양을 너머, 과거와 현재를 너머 예술은 모두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언젠가는 바다의 안개를 사진으로든 그림으로든 표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가르치는 일의 본질

추사체(秋史體)를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삼십만 매수하실(三十萬梅樹下室). 삼십만 그루 매화나무 아래 집. 청나라 문인 오숭량의 매화시에 감명받아 쓴 편액 글씨다. 수직과 수평의 안정적인 구도 안에 매(梅) 자와 수(樹) 자를 고문자(古字)로 바꾸고, 획의 굵기와 삐침에 변화를 주어 유려한 미감을 더했다.

삐뚤어진 것 같은데 삐뚤어지지 않았다. 무너지는 것 같은데 무너지지 않는다. 단단함이란 굳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추사체가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그 옆 조희룡의 매화 그림에는 수많은 송이 매화가 점점이 피어 온 화면을 뒤덮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작은 둥근 점이다. 그 많은 꽃 점들을 하나하나 찍어가던 손을 상상했다. 과연 추사처럼 매화나무를 위한 집을 지어주고 싶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은 아름다움, 고결하고 단아한 품격! 옛 예술인들의 풍요로운 정신세계에 흠뻑 빠져서 보낸 시간이었다. 마지막 AI 체험실에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한 서양화가들의 화풍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메일로도 파일을 전송해 주는 서비스! 재밌는 체험이다.

미술관을 나서며 전시의 마지막 문구가 마음에 남는다.

"나를 비추는 거울, 무자기無自欺의 예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의 정신. 추사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교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예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자 여덟 명에게도 그 정신을 가르쳤을 것이다.

40년 교직을 마치고 나서야, 나는 가르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가르침이란 결국, 내 안의 거짓을 먼저 비우는 일이다. 오늘 추사의 그림 수업에서, 나는 그 오래된 진리를 다시 배웠다.

간송 미술관 '추사의 그림수업' 전시는 26. 7. 5일까지 계속된다. 고요한 마음속 내 안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 오래된 묵향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간송 미술관에서 추사의 그림 수업으로 나들이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러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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