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굴욕' 반복하는 한동훈...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가 쓰는 지방선거 관련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손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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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소속 한동훈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예비후보가 4일 오후 부산 구포동 북구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한국의 보수가 사실상 극우였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최소한 극우의 이미지를 털어내거나 혁신을 위한 노력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반공 이데올로기가 견고했던 시기의 노태우 정부도 전향적인 통일정책을 발표하고 북과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자는 합의서를 도출해 냈을 뿐만 아니라, 민주인사를 영입해 대통령을 만들고 과감한 개혁에 나서기도 했다.
내용이 빈약했던 보수의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기 위해 뉴라이트 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나기도 했고, 경제민주화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무려 기본소득을 강령에 포함하기도 했다. 물론 보수정당 안팎에는 여전히 1950년대 가치관으로 무장한 이들이 넘쳐났지만, 최소한 중도층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논리 개발과 혁신 노력은 계속 진행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전후해 보수 혁신의 기치를 내걸었던 바른정당이 실패하면서, 혁신 동력은 눈에 띄게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당의 대표들은 보수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하긴 했다. '젊었던' 이준석 대표가 그랬고, 비상계엄 와중에 계엄 해제를 설득하고 나선 한동훈이 그랬다.
이 둘은 너무 가볍고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보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중 이준석이 뛰어난 언술과 순발력을 미래 비전이 아니라 혐오에 쏟아부으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면, 한동훈은 극우의 공격 속에서 고난 서사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그러나 한동훈은 돌파해야 할 순간에 멈춰 서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패턴을 이번에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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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 숙여 윤 대통령에게 인사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2024-01-23 |
| ⓒ 연합뉴스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는 금기시되던 김건희 책임론을 거론했고, 12.3. 내란의 밤에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결단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극우 유튜버들에게 장악된 보수정당에서 합리적 보수를 재건할 인물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동훈의 한계는 항상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어느 순간 멈춰 선다는 점이다.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용기 있게 김건희에게 도전하다 밉보이자, 체감온도 영하 11도의 눈보라 속에서 민방위 점퍼 차림으로 30분 동안 윤석열을 기다렸다. 2024년 1월 23일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이 윤석열에게 한 90도 인사는 한동훈의 한계를 보여준 결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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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24년 12월 8일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동훈은 고난 서사를 등에 업고 보수 재건이라는 목표를 다시 내세웠지만, 또 한 번 타협을 택했다. 공작정치의 상징인 정형근의 후원회장 임명은 그가 재건하려는 보수가 미래의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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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0월, 당시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 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국내 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노골적인 정치공작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혐의도 받아왔다. 그가 벌인 공작정치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단편은 엿볼 수 있다.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홍사덕 후보를 "첩을 두고서도 사생아는 팽개치고 3명의 처녀와 6명의 유부녀를 농락한 파렴치한 후보"라는 유언비어가 담긴 유인물을 몰래 살포하다 발각된 안기부 직원들은 정형근이 국장으로 있던 대공수사단 소속이었다. 정형근이 안기부를 떠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제1차장을 맡고 있던 1995년, 부활을 앞둔 지방선거의 연기를 검토하는 안기부의 '여론 수집 문건'이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 정보통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1999년, 전직 안기부 직원들을 고용해 당비로 사설정보팀을 운영해 온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의 고급 정보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5년에 호텔에서 유부녀와 함께 있다가 발각되자, 묵주를 받기 위해서 그랬다고 항변한 일은 애교에 가깝다.
그는 단 한 번도 고문과 조작, 정치공작 등 자신의 과거를 시인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으며, 피해자에게 사과한 적도 없다. 그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민주주의를 마음껏 유린하고, 우리 사회 최상층에서 온갖 혜택을 누려온 인물이다.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에 대해서도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정형근은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전 대표를 '민주당에서 파견한 분대장'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동훈의 후원회장이 되어 돌아왔다. 한동훈이 이런 인물에게 기댄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한동훈은 내란 세력과 결별하고 합리적 보수를 다시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당선을 위해 내란을 옹호한 극우와 손을 잡은 것이다. 한동훈이 선거에 이겨서 화려하게 돌아오더라도, 그것이 계파의 재구성일지언정 합리적 보수 재건의 신호탄일 수는 없다.
새로운 구도는 가능할까?
보수는 극우의 민낯을 드러내며 점차 권력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어차피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면, 중도 확장보다 확실한 지지층을 견고하게 지키려는 선택이 실리적으로 틀린 계산은 아니다. 그러나 혐오와 배제의 언어로 무장하고, 과거 반공 독재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는 이들이 여전히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극복해야 할 일이지, 견뎌야 할 일은 아니다.
한동훈이나 이준석에게 보수 혁신의 기대를 걸 수 없다면, 아예 우리가 알던 보수를 대체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 진보정당이라는 버거운 이름표를 달고 있었던 민주당에 합리적 보수, 중도 보수라는 원래의 이름을 찾아주고, 민주당 왼쪽에 새로운 진보적 정치세력을 양성하는 방식 말이다. 퇴행적 극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그들이 보수를 대표하는 것은 막는 방식 말이다.
이런 구도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 정치의 성장을 기대하던 이들이 오랫동안 꿈꿨던 미래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미래상의 희망을 엿볼 수 있을까?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낡은 법과 제도는 거대 양당에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양당 구도에 강력하게 결합해 있는 정치 문화는 쉽게 극복되기 어렵다. 그래서 대안적 진보도, 대안적 보수도 등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혁신 동력을 잃어버린 극우가 여전히 보수의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민주주의가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한동훈과 이준석에게 또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면, 포기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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