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한달 만에 최고치…한·미 통화스와프 안하나 못하나

원·달러 환율이 한 달 만에 최고치로 올라서면서 외환시장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해외 중앙은행들과 맺은 통화스와프 규모는 1506억달러에 이른다. 다만 정작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여전히 비어 있다. 환율이 다시 1490원 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5원 오른 1489.9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13일(1489.3원) 이후 약 한 달 만의 최고치다. 환율은 지난 7일 1454원까지 내려갔지만, 불과 사흘 만에 35.9원 뛰며 다시 1490원대 턱밑까지 올라섰다.

원화가 다시 흔들리면서 달러 유동성 안전판인 한·미 통화스와프의 부재가 재차 주목받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3월 말 기준 중국, 스위스, 일본, 호주,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양자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아울러 아세안+3 역내 다자간 금융안전망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를 모두 합친 통화스와프 규모는 1506억달러 상당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현재 없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위기 때마다 한국 외환시장의 심리적 방파제 역할을 했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또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3월 600억달러 규모의 한시적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세 차례 연장을 거쳐 2021년 12월 31일 종료됐다. 2020년 계약 당시 한은은 실제로 약 198억7000만달러를 조달해 국내 외화자금시장에 공급했다.

통화스와프는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중앙은행이 즉시 달러를 끌어와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계약을 맺는 순간 달러가 자동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외화자금이 필요해지면 한은이 약정 한도 안에서 상대 중앙은행에 인출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한은이 연준에 달러 공급을 요청하면 한은은 원화를 맡기고 연준으로부터 달러를 받는다. 한은은 이렇게 조달한 달러를 국내 외화자금시장에 풀 수 있다. 만기가 되면 달러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고, 맡겨뒀던 원화를 다시 돌려받는다. 위기 때 중앙은행이 일종의 ‘달러 마이너스통장’을 꺼내 쓰는 구조다.
한은도 통화스와프가 실제 사용되지 않더라도 체결 발표만으로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공시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할수록 수요가 몰리는 통화는 결국 미국 달러다. 미국과의 스와프가 다른 통화스와프와 무게가 다른 이유다.
문제는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가 뚜렷한 진전 없이 멈춰 있다는 점이다. 연준은 현재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중앙은행(ECB), 스위스 등 5곳과 상설 달러 스와프라인을 운영 중이다. 한국처럼 위기 때 한시적으로 스와프를 열어준 사례는 있지만, 이를 상설화하는 데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 3월 국회에서 한·미 통화스와프와 관련해 “우리가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미국이 한국 정부의 외환보유액과 국민연금·민간의 해외자산 등을 들어 한국은 외환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와 한은은 지금 당장 외화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월 말 기준 4236억6000만달러다. 신현송 한은 총재도 지난달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현재 외화 유동성 여건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며 “통화스와프를 활용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외환시장이 당장 달러 고갈을 걱정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취지다.
다만 환율 급등 자체가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한·미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원화 약세가 길어지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기업의 외화조달 비용이 커진다. 아울러 한은도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환율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달러 유동성에 대한 불안 심리를 사전에 눌러둘 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1506억달러 상당의 통화스와프 가운데 상당수는 원화와 상대국 통화를 맞바꾸는 구조다. 중국과는 위안화, 호주와는 호주달러, 아랍에미리트(UAE)와는 디르함을 교환한다. 교역 안정과 금융협력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원화 급락 국면에서 시장이 가장 먼저 찾는 통화는 결국 미 달러다. 한국이 달러를 직접 조달할 수 있는 통로는 일본과의 100억달러 통화스와프, CMIM 등으로 제한돼 있다. 특히 한·일 통화스와프는 올해 11월 만기를 앞두고 있다.

최근 미국이 동맹국과의 달러 유동성 장치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걸프와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상대로 달러 스와프라인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는 미 재무부 차원의 구상으로, 연준과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국이 논의 대상에 포함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신 총재가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의 물꼬를 트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 총재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국제금융 전문가다. 미국 학계와 국제금융당국 인사들과도 폭넓은 접점을 쌓아온 만큼, 달러 유동성 안전판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미국 측과의 논의 채널을 넓히는 데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물론 통화스와프 체결은 연준과 미국 정부의 판단이 핵심인 만큼 한은 총재 개인의 네트워크만으로 성사될 사안은 아니다. 다만 환율 불안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한은이 보다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당장 한국이 외화 유동성 위기에 놓였다고 볼 상황은 아니지만, 환율이 출렁일수록 시장이 신뢰할 만한 달러 안전판을 미리 갖춰두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와 한은이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필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미국 측과의 논의를 끈질기게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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