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찍히면 인생 나락 간다…그 엄마 서초동 달려가는 이유

학교폭력을 학창 시절의 일탈이나 아이들 사이 싸움에서 비롯된 실수 정도로 치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과 이들 자녀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질타를 받고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반복될만큼 가해자에 대한 잣대는 엄격해졌고 사회적 경각심도 커졌다.
교육 당국도 학교폭력의 관리 주체를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바꾸는 정책적 변화를 시도했다. 2019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 개정을 통해 이듬해부터 각 학교가 담당하던 학교폭력의 업무를 교육지원청 산하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로 이관했다. 학교폭력에 대해 면밀하게 대응하고 심의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결정적인 변화는 ‘입시 반영’이었다. 2023년 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자녀가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음에도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교육부는 같은 해 4월 대입 반영 등을 담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 대입부터 서울대를 비롯한 147개 대학이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자율적으로 반영했다. 2026학년도부터는 모든 대학이 수능·논술·실기 등 전체 전형에서 학교폭력 이력을 의무적으로 기재하게 했다. 최근에는 영재학교·과학고 등 일부 고교 입시에도 반영이 되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입시 불이익 우려가 커지자 학생과 학부모는 흠집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사과와 화해로 끝날 수 있는 사안조차 ‘맞학폭(학교폭력으로 신고당한 학생이 신고한 학생에 맞대응하는 것) 전략’ 아래 법정 다툼까지 끌고 가는 모습도 나타났다. 학교폭력으로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2022년 51건에서 지난해 134건으로 급증했다. 지난 2월에는 전담 재판부를 2곳에서 4곳으로 늘리기도 했다. 김주현 법무법인 슈가스퀘어 변호사는 “입학사정관 입장에선 가벼운 처분의 학교폭력도 합불에 중요한 요소”라며 “학교 폭력에 대한 엄정한 기조가 신고·소송 급증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 당국은 소송 급증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제도 손질에 나섰다. 2024년 2월 도입된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가 대표적이다. 교육지원청이 위촉한 퇴직 교원이나 경찰관 등이 사안을 조사해 학교와 교육청에 알리는 방식이다. 교사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학교폭력 업무를 완화하고, 조사관이 학교폭력을 전담해 다루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안을 가장 잘 아는 교사가 조사에서 배제되다 보니 실체 파악과 교육적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조사관은 조사 업무를 건당 10만~20만원의 ‘용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무책임하게 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사들 역시 학교폭력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줄어들자 “어차피 전담조사관이 먼저 조사할 일”이라며 가벼운 사안조차 개입을 꺼리면서 학교의 조정 기능이 약화됐다.
일선 교육청들은 교육적 중재에 초점을 맞춘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관계회복 숙려제’를 도입했다. 경미한 사안은 곧바로 학폭위로 넘기지 않고, 대화와 조정 과정을 진행해 화해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교사의 적극적 중재 위해 법적 면책 필요”
전문가들은 법적 분쟁이 남발되면서 실추된 교권의 회복을 먼저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경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과거엔 경미한 사안은 교사 지도로 교육적 해결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곧바로 법적 다툼으로 번진다”며 “사안이 커질까 두려워 교사들이 학교폭력 개입을 기피하며 학교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학생과 교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교폭력 중재에 나설 수 있게 법적·제도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사가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하고 중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정서적 아동학대’ 등의 소송에 쉽게 휘말리지 않도록 법적 면책의 필요가 있다”며 “악성 민원 등이 교권 침해로 인정된 경우에는 교사에 대한 심리적 지원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교육지원청의 장학사는 “진정한 피해 회복은 상대방의 진심 어린 사과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처벌 위주 구조에선 불가능하다”며 “징계 기관이 아닌 교육 기관으로서, 교사가 학교 안에서 갈등을 조율할 수 있도록 교육자의 권위를 세우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더중앙플러스-이런 기사도 있어요
「 “선생 고소하고, 맞폭 걸라” 학폭 덮는 변호사의 기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3304
」
한찬우·변민철 기자 han.cha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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