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안돼” 외쳤던 삼성 이병철…글로벌 반도체는 ‘무노조 경영’ 왜

성과급 인상을 두고 갈등을 겪는 삼성전자와 노동조합(노조)은 사실 동거부터 어색하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생전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선 ‘무(無)노조 경영’이 대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니혼게이자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비슷하게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두 수행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 인텔은 1968년 창업부터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왔다. 2024년 조 바이든 정부가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노조 활동을 보장하라고 압박했는데도 기조를 지켰다.
메모리반도체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도 마찬가지다. 생산직·사무직이 아닌 일부 사업장에서만 제한적으로 노조가 활동한다. 블룸버그는 마이크론이 최근 공장 건설 노조와 협약을 맺은 것을 두고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아시아권에선 대만 TSMC도 1987년 회사 창립 때부터 무노조 경영 원칙을 지켜왔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2021년 ‘대만 반도체의 강점’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미국 자동차 산업은 과거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전미자동차노조(UAW) 같은 강력한 노조가 등장한 뒤 몰락의 길을 걸었다”며 “노조는 단기적으로 임금을 올리고, 근로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결국 회사의 혁신 의지와 생산성을 저해해 장기적으로 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NEC·도시바·히타치 같은 회사가 세계 시장을 제패한 일본 반도체 업계는 기업별 노조는 있지만, 성격이 달랐다. 1990년대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으면서도 한국처럼 파업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니혼게이자이는 도시바 사례를 들어 “과거 구조조정, 메모리 사업 매각 과정에서도 노조는 ‘고용을 유지한다면 매각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며 “회사와 공개 충돌하기보다 내부 협의와 고용 안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자동차·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강성 노조로 유명하다. 반면 반도체뿐 아니라 구글·엔비디아·메타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은 노조가 없거나, 힘이 약하다. 반도체는 제조업이면서 IT에 기반을 둔 산업이다. 핵심 인력 상당수가 엔지니어와 연구개발(R&D) 인력이라 노사 집단 교섭보다 성과급, 스톡옵션, 개별 보상 체계가 더 익숙한 구조다. WSJ은 노조를 두고 “미국 반도체 산업 부활의 장애물 중 하나”라고 짚었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도 있다. 반도체는 먼지는 물론 세균까지 차단한 클린룸에서 24시간, 365일 온도·습도를 최적화한 조건에서 만든다. 제조 공정이 분절된 자동차·가전 등 전통 제조업과 달리 연속 공정이란 것도 차이점이다. 파업 등으로 공정을 멈췄다가 복구하려면 일반 제조업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 “반도체 노조와 전통 제조업식 노조 모델이 같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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