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 중독 막아라” 사활 건 특명… 韓 LNG 시대를 열다

4공화국 때 설립한 대통령 직속 조직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의 존재 의의는 중공업 진흥이었다. 경제기획원 등 다른 정부 부처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준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이 조직의 활동 중에는 언뜻 중공업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국가를 방문한 사례가 있다. 1980년, 위원회 관계자들이 한국전력 관계자를 대동하고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종착지는 현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 연탄이 주요 난방 수단이었던 한국이 도시가스 도입에 나선 첫발이기도 하다.
방문단 중 한 명이었던 고정식 전 특허청장은 현장 모습을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시설로 묘사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잠재 고객인 이들에게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화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고 전 청장은 “장미꽃을 냉각 시설에 넣었다 빼니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냉각이 잘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식상한 클리셰다. 다만 이 시연은 LNG를 도입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중요한 기술 증빙이었다. 계약을 맺게 되면 인도네시아 측은 신규 LNG 생산시설을 짓게 된다. 기술이 부족하면 안정적인 공급이 힘들다는 점에서 시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작업은 가치가 있었다.
인도네시아를 첫 LNG 도입국으로 눈여겨본 이유는 두 가지다. 한국은 앞서 LNG를 도입한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일본이 거리상 가까운 인도네시아산을 쓰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군부 정권 간의 교감이었다고 한다. 고 전 청장은 “인도네시아도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고 한국도 군부 정권이었다”며 “양국 관계가 친밀했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두환정부는 인도네시아와 첫 번째 20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었다. 1986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한 첫 한국행 LNG선인 ‘Golar Spirit호’가 평택항으로 입항했다. LNG 시대가 시작됐다.

정부가 LNG를 도입하기 전 한국 가정의 주요 난방 수단은 연탄이었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빈번했다. 한국공학한림원에서 편찬한 한국산업기술발전사 에너지·자원 편에 따르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매년 수천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허사였다. 연탄가스 중독 방지 연구 결과 기술적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난방 대체재가 절실하던 상황에 LNG가 눈에 띈 것이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겪었던 한국 입장에서는 석유 의존도를 낮취야 한다는 필요성도 더해졌다. 여기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친환경 요소도 명분이 됐다. 고 전 청장은 “당시만 해도 친환경 연료 대명사는 LNG였다”고 말했다. LNG를 쓰게 된다면 ‘1석 3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에서 중화학공업기획단장을 맡고 있던 오원철 단장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자동차 회사인 국제차량제작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에너지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고 한다. 중화학공업 육성과 에너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 점에서 LNG 도입을 적극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 전 청장은 “LNG 도입은 (당시부터) 치밀하게 설계된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할 경우 일반적으로는 배관망을 활용한다. 천연가스 생산시설부터 배관망을 이어 수요처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에서 길고 긴 배관망을 통해 천연가스를 들여오던 유럽연합(EU)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천연가스를 액화한 뒤 배로 실어 나르고 다시 가스 상태로 되돌리는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만큼 비용이 저렴해진다.
지형적으로 이 일반적인 방식은 한국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3면이 바다인 데다 위로는 북한이 있다 보니 EU와 같은 방식은 불가능했다. 결국 일본처럼 LNG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한국으로 배관망을 통해 천연가스를 운송하는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사업은 2000년대에 시도됐다. 노무현정부 때의 일이다. 이희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부) 장관이 국외 순방길을 수행할 때면 사업별로 한 장으로 구성된 ‘기내 자료’들이 준비됐다. 러시아 PNG 사업도 이 중에 속했다. 아나툴리 야노프스키 러시아 에너지부 전 차관과의 협의도 수차례 있었다. 이 사업은 이명박정부로 계승돼 추진하려 했지만 북한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의 도시가스 공급망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LNG가 유일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1980년 경제장관회의에서 ‘가스도입 기본 방침’을 확정했다. 한국전력을 사업 주체로 잡고 LNG 사업을 추진하면서 83년 가스사업 기본계획을 세웠다. 한국가스공사도 이때 만들어졌다.
막상 LNG 도입을 결정했지만 한국이 갖고 있는 인프라는 하나도 없었다. LNG를 국내 공급하려면 선박으로 들여온 LNG를 비축할 시설부터가 필요했다. 여기서 기체화한 가스를 공급할 배관망도 갖춰야 했다. 각 가정 난방 설비를 도시가스로 대체하는 작업도 산적했다. 도시가스 공급 등을 맡을 민간기업의 역할도 절실했다. LNG를 활용한 사업 자체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력자원부(현 산업통상부)는 석유 수입사에서 징수한 석유사업기금을 ‘만능열쇠’로 꺼내 들었다. 79년부터 93년까지 조성한 5조805억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돈으로 일단 LNG생산기지 구축에 나섰고 86년에 첫 생산기지인 평택생산기지가 구축됐다. LNG를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배관망도 같은 해 완공됐다. 화성시와 안산시, 시흥시, 인천시를 거쳐 인천화력발전까지 이르는 배관망이다. 민간 사업자인 삼천리도시가스는 이 망을 통해 87년 2월 처음으로 서울시에 도시가스를 공급했다.

가정 내 도시가스 공급을 가능케 한 이 배관망은 90년대에 대전 등 중부권을 거쳐 영·호남 등 남부 지방까지 연결됐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배관망 길이는 4790㎞에 달한다. 서울시에서 부산시까지 6번 정도 왕복해야 하는 거리다. 망을 타고 공급된 도시가스는 급격히 수요를 길렀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87년 7만t에 불과했던 도시가스 사용량은 30년 뒤인 2017년 기준 1957만t으로 279배나 급증했다.
눈에 띄는 점은 부수적으로 추진한 조선 산업 육성이다. 동력자원부 관료들은 LNG를 수입할 때 한국산 수송선을 쓰면 그만큼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을 세웠다. 삼성중공업 등의 회사들이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동력자원부는 LNG선 발주에 앞장섰다. 이때 국민 경제적 효과 분석을 했던 고 전 청장은 “이때 발주한 물량이 LNG선을 건조하는 조선사들의 트랙 레코드가 됐다”고 말했다. 조선업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LNG선 세계 1위를 지켜 낸 토대가 된 셈이다.

다만 전국 배관망을 만든 뒤 폭발 사고가 발생한 점은 흠으로 남는다. 95년 4월 101명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회자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현장까지 찾았던 대형 사고는 도시가스 안전성 우려를 키웠다. 한국산업기술발전사는 이후 가스안전관리가 체계화됐다고 평가했다.
90년대에 기틀을 잡은 LNG 산업은 2000년대 들어 공급선을 늘리며 덩치를 더욱 키웠다. 이후 가스 산업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계약 방식의 다변화다. 유가 변동에 연동되는 방식대로면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한 2026년과 같은 상황에 지나치게 불리하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에스 커브(S-Curve)’란 새로운 계약 방식을 도입했다. 가스 가격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해서 유가 급등이나 폭락 시 가스 가격 안정성을 지키는 방식이다. 2005년에 러시아 사할린산과 예멘, 말레이시아산 LNG 계약을 이 방식으로 채택했다. 다만 중동 의존도가 심화한 현재는 이 방식이 많지 않다. 12일 산업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이 방식을 채택한 계약은 2건에 불과하다.
일련의 새로운 산업 창출은 정부 주도와 석유사업기금 전폭적 활용이 밑바탕이 됐다. 고 전 청장은 “LNG 산업 육성은 뭣보다도 동력자원부 시절 윗분들의 ‘내가 책임진다’는 결정들이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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