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시각각] 금수저 노조, 그리고 삼성전자의 2023년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래서 2023년이 더 아쉽다. '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던진 '국민배당금' 화두에 든 생각이다. 그는 11일 밤 개인 페이스북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과 관련한 글을 썼다. 가정에 가정을 거듭한 장황한 글이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구조적 초과이윤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해야 하는데,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으로 기업 과실 일부를 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 " 쉽게 말해, 돈을 많이 오래 버는 기업의 이익(초과이윤)은 국민 모두의 것이라 돌려받아야 한다(환원)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협박으로 전 국민이 배 아프고 스트레스받는 것과 별개로, 이재명 정부 고위 공직자의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난 동의 안 하지만, 현실화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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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아픈 국민에 내민 '배당금' 유혹
노조 탐욕엔 경영진 실책도 한몫
이참에 투명한 성과 재설계해야
」
삼성전자 노조가 지난달 영업이익의 15%를 상한 없이 전부 성과급으로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들고 나왔을 때 이런 상황을 예견하긴 했다. 언론에서 '금수저 노조의 돈 잔치'라거나 '폐쇄적 이익 카르텔의 무절제 탐욕'이라 비판하고, 하청업체·비정규직 아닌 정규직끼리 DS(반도체)·DX(휴대전화 등) 부문으로 갈려 으르렁대는 노노 갈등으로 번져도, DS 주축의 초기업노조 집행부는 듣는 시늉도 안 했다. 좌우 없이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 진영에선 기업이 자기 뜻대로 (성과급 등) 규칙을 못 바꾸는 수출기업 통제 방안을 만들자거나 사회적 배분, 사회적 연대 기금 조성, 노조 재단 출연, 농어촌 환원 같은 사회주의식 요구를 쏟아냈다. 어느 국문과 교수가 "(반도체) 이익은 정규직·비정규직·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우선 돌아가야 하고, 사회에 환원해야 마땅하다"고 쓴 칼럼이 대표적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이런 아무 말 대잔치를 지켜보면서 '곧 역풍 불겠다' 싶던 차에 김 실장 발언이 나왔다.
온 국민의 노조 때리기에 가세하는 대신, 막무가내로 떼쓰는 노조를 키운 것이나 다름없는 과거 삼성전자 경영진을 향해 쓴소리를 좀 하고 싶다. 노조가 어쩌다 이렇게 당당하게 억지 부리는 불통이 됐나 의아해 2016~2025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업보고서를 전부 찾아봤다. 그저 이익 배분 소홀이나 불투명한 보상 체계 정도로 퉁치기엔 사측이 잘못 대응한 대목이 꽤 있었다. 최악의 반도체 불황을 겪은 2023년엔 유독 더 그랬다.
대표적인 게 등기임원들의 과다한 퇴직금 책정, 그리고 사실상 실적과 무관하게 보장받아온 막대한 상여금이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그해 무려 14조9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하이닉스는 HBM 선방 덕에 7조7000억원 영업손실로 막았다. 양사 직원 모두 상여가 줄었지만 삼성 하락 폭이 더 커 평균 연봉이 역전했다. 그런데 정작 2018년부터 DS 부문장을 맡아 HBM 추가 개발 중단과 전담조직 축소라는 판단 실책을 범한 최고위급 임원은 2023년 퇴직하면서 급여 16억8000만원에 상여 24억4500만원, 그리고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1~3.5배)을 넘는 3.6배로 129억9000만원의 퇴직금까지 다 챙겼다. 지난 10년 동안 불황이나 실적 부진으로 퇴진한 다른 수십 명의 등기임원 역시 예외 없이 최대치에 근접하거나 오히려 초과(3.25~3.69배)하는 퇴직금을 받아 나갔다. 오래 적자를 감내한 SK하이닉스 임원들이 스톡옵션으로 보상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2023년과 2024년 연이어 불공정·불투명한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을 요구한 데는 이런 배경도 있을 거다. 하지만 사측은 제대로 정비하지 않았고, 여러 요인에 더해 이런 노사 간 신뢰 부재는 결국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또 적당히 봉합하면 파업에 따른 일회성 영업이익 손실 정도가 아니라, 기업경영 자율성과 시장 원칙마저 침해당하는 방향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부당한 경영 개입 빌미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조에 원칙 대응하는 한편, 투명성을 확보한 성과 체계 재설계는 필수다. 그런 정당성 없이는 매년 노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실기한 2023년이 자꾸만 아쉽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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