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리플렉팅 풀 리모델링으로 본 트럼프식 일방주의

임성수 2026. 5. 1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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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에서 리플렉팅 풀 리모델링을 위한 도색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임성수 특파원

킹 목사 연설 등 수많은 역사 속 배경
여론 수렴·정당 절차 없이 졸속 진행
녹조 대책이라며 바닥에 푸른 도색
NYT “수도를 자신의 제국처럼 여겨”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중심인 내셔널몰에서는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리플렉팅 풀’은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 사이에 길게 뻗어 있는 인공 수로로 워싱턴기념탑을 거울처럼 비추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날은 인공 수로의 물이 다 빠져나가고 콘크리트 바닥이 드러났다. 바닥 중 일부에는 이미 푸른색으로 도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 관광객들이 즐겨 산책하던 직사각형 모양의 둘레 약 1400m 인공 수로 주변으로 검은색 펜스와 가림막이 설치돼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현장을 통제하던 관계자는 기자에게 “빠르면 이달 말쯤이면 보수 공사가 완료될 것”이라고 전했다.

리플렉팅 풀은 1922년 조성됐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배경이 돼 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지시하면서 워싱턴DC의 상징인 리플렉팅 풀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백악관을 자신의 취향대로 개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바깥까지 ‘트럼프 스타일’을 관철하려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인공지능(AI) 합성 이미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더그 버검 내무장관이 리플렉팅 풀에 떠 있는 모습을 가상 이미지로 만들었다. 트루스소셜 캡처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리플렉팅 풀 바닥을 푸른색으로 칠한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올린 뒤 “성조기 블루(American flag blue)”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최근엔 공사 현장까지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특히 트럼프 자신과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이 상의를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리플렉팅 풀을 즐기는 AI 생성 이미지까지 올렸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가 그만큼 관심을 두고 있는 공사인 셈이다.

하지만 이 개조 작업은 여론 수렴 없이 트럼프의 일방적인 지시로 진행되면서 크고 작은 논란을 낳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리모델링 업체로 직접 선정한 ‘애틀랜틱 인더스트리얼 코팅스’라는 회사에 연방정부가 1310만 달러를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쟁 입찰 없이 해당 업체를 선정했는데 트럼프는 자신의 수영장 공사를 맡았던 업체라며 정부 계약을 맺도록 했다. 특히 업체 선정 과정에서 긴급 상황을 위한 예외 조항까지 적용했다. 해당 조항은 “정부에 대해 재정적 또는 기타 심각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만 사용돼야 하는데 ‘리플렉팅 풀’ 개조 공사에 임의로 적용됐다는 지적이다.

‘애틀랜틱 인더스트리얼 코팅스’는 그동안 연방 정부 계약을 수주한 적이 없는 업체다. 하지만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 공사를 수행한 이력 덕분에 계약을 수주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지난달 23일 해당 업체를 소개하며 “수영장 시공에 정말 뛰어난 전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설명과 달리 이 업체는 자사 웹사이트에 고속도로 배수로, 물 저장 탱크 방수 공사 전문이라고만 소개할 뿐 수영장 시공에 대한 언급은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도색 공사를 위해 미 연방미술위원회의 심의도 받지 않았다. 연방미술위원회는 1910년에 설립된 독립 연방기관으로 연방 정부 건물과 기념물의 설계를 검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10년 리플렉팅 풀 정비 사업 당시에는 이 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트럼프는 미국 독립 250주년인 7월 4일에 앞서 리모델링을 끝낸다는 계획이지만 졸속 논란도 낳고 있다. 리플렉팅 풀은 수심이 얕아서 거울처럼 반사 효과를 내지만 여름에는 녹조 현상 탓에 마치 잔디밭처럼 변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인 2010년~2012년 3500만 달러를 투자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에도 배관 작업 등을 통해서 전면적인 보수를 계획했지만 공사 입찰가가 1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결국 공사를 포기했다. 대신 국립공원관리청이 매년 리플렉팅 풀의 물을 빼내고 청소하는 임시방편을 택했다.

트럼프 역시 리플렉팅 풀의 녹조 현상을 지적하며 바닥을 푸른색으로 색칠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트럼프는 바닥 도색 작업이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는 “내가 ‘바하마처럼 터키석 색은 어떤가’라고 물었는데 (시공업체가) ‘대통령님,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성조기 블루’를 써보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과 시스템 같은 근본적인 기능 개선 없이 바닥 도색만으로는 푸른색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미 백악관과 워싱턴DC의 주요 랜드마크를 자기 뜻대로 바꿨다. 최소한의 여론 수렴이나 심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럼프는 백악관 로즈가든의 상징이었던 잔디밭을 대리석 통로로 교체했다. 연회장을 만들겠다면서 백악관의 동관을 전격 철거했고, 백악관 부지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도 세웠다. 케네디센터 역시 ‘트럼프 케네디 센터’로 명칭을 변경한 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지시했다.

NYT는 리플렉팅 풀 구조변경이 무입찰 계약 등으로 졸속 진행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 리모델링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수도 대부분을 자신의 제국처럼 여기며 자기 뜻대로 꾸미거나 심지어 파괴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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