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문화노트] 88세 황규태, 사진의 틀 뛰어넘은 실험 예술가

이은주 2026. 5. 13. 0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한국 실험사진의 선구자’ 황규태(88)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은 최소 두 번은 놀랍니다. 먼저 그들이 보는 경쾌한 리듬과 색채의 작품이 회화가 아니라 사진이라는 사실에 놀랍니다. 이어 199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해온 작가가 80대 노장이라는 사실에 다시 놀랍니다.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도, 나이에 대한 통념도 이 작가 앞에선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궁금증 환자예요. 궁금증 때문에 루페(사진 작업용 확대경)를 들여다보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2019년 서울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픽셀(pixel)’이 열렸을 때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하학 패턴, 선명한 색채로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작품 앞에서 “궁금해서 시작했고, 재미있어서 계속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엔 그가 서울 서초동 유나(UNAW) 갤러리에서 개인전 ‘프레임을 넘어서(Beyond The Frame)’(6월 13일까지)를 열고 있습니다.

황규태, 알지비, 피그먼트 프린트, 83.8x150㎝, 2023. [사진 유나갤러리]

1938년 충남 예산 태생인 그는 동국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963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사진기자로 일했습니다. 실험이 시작된 건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부터였습니다. 당시 컬러 현상소에서 암실 기사로 일하던 그는 필름을 태우거나,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이중 노출 등으로 사진의 전통 방식에 도전했습니다. 이후 디지털 이미지로 확장된 작업은 사진이 이미지를 ‘해체’하고 ‘선택’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돌아보면 그의 모든 실험이 질문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기존 사진을 극도로 확대해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 자체를 가지고 만든 ‘픽셀’ 시리즈는 그 질문의 정점에 있고요.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것이 무수한 데이터 조각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드러냈습니다. 이 여정엔 흥미로운 반전도 있습니다. 질문이 한없이 철학적인 반면 작품은 감각적이고 유희적입니다. “기하학적 패턴의 변주엔 시각적 리듬이 가미돼 있고”(문혜진 미술평론가), “고도로 세련된 색채와 빛에 대한 감각”(이영준 기계평론가)이 돋보입니다.

그는 “지금도 내 작업을 사진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마음껏 상상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황규태에게 실험은 진지한 탐구인 동시에 재미난 놀이였습니다. 예술이야말로 궁극의 탐구이자 놀이라는 사실을 그가 일깨워줍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