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피 띄운 증권가…AI 캐즘 최대 리스크
코스피가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하자 증권가 눈높이가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7000선은 과열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9000선을 넘어 1만 선까지 상단을 열어두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과거 ‘박스피’라는 평가를 받던 때와 180도 다른 분위기다.
기업의 이익 추정치가 가파르게 올라가며 코스피 랠리를 이끌었다. 특히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 코스피 전체 이익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경쟁이 메모리·전력기기·전력망 투자 확대로 이어지며 한국 기업 실적 전망치가 가파르게 상향 조정되는 중이다. 최근 코스피 상승은 주가수익비율(PER) 확대보다 주당순이익(EPS) 상향이 주도하는 장세다.
다만 시장 내부 온도차는 극심하다.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 관련 업종만 치솟는 쏠림 현상이 심하다. 소비주와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AI 투자 열풍이 이어지는 동안 강세장이 지속될 수 있지만, 그만큼 AI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내년 이익 기준 9800 적정
코스피는 지난 5월 6일 사상 처음으로 7000선 고지를 밟았다. 6000선을 돌파한 지 약 2개월 만이다. 다음 날에는 7500선마저 뚫었다. 5월 6일 종가 기준 연간 코스피 상승률은 75%로 주요 20개국(G20) 중 압도적인 1위다. 튀르키예(29%), 일본(18%), 브라질(16%), 이탈리아(8%) 등을 웃도는 수치다. 같은 기간 미국 대표 주가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수익률은 6%에 그쳤다.
코스피가 7000선을 뚫자 국내 증권사는 잇달아 전망치를 높여 잡고 있다. 지난 연말만 해도 올해 코스피 7500 도달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는 코스피가 9000을 넘어 1만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5월 7일 NH투자증권은 코스피 12개월 선행 목표지수를 9000포인트로 제시했다. 아직 공식 자료는 발간하지 않았지만, 일부 증권사는 조만간 코스피 밴드 상단을 기존 7000대 중반에서 1만까지 올릴 계획이다.
그 외 다수 증권사가 올해 코스피 밴드 상단을 8000대 중후반으로 제시했다. 유안타증권(8900), 대신증권(8800), 상상인증권(8635), 신한투자증권(8600), 하나증권(8500), 메리츠증권(8500) 등이다.
다수 증권사가 코스피 눈높이를 높여 잡는 핵심 근거는 코스피 이익 추정치 상향이다. 특히 최근 이란 사태로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그 사이 코스피 이익 추정치는 오히려 올라갔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2월 말에 추정한 올해 코스피 영업이익은 609조원에서 5월 초 867조원으로 높아졌다. 추정치 상향은 반도체 업종이 주도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이익 추정치는 340조원에서 580조원으로 뛰었다. 이 기간 반도체 영업이익은 71%, 코스피 영업이익은 42% 눈높이가 높아졌다.
특히 내년에는 수익성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유진투자증권은 내년 코스피 영업이익을 1068조원으로 추정했다. 올해 추정치 대비 23% 높은 수준이다. 이 경우 적정 코스피는 9800선으로 내다봤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반도체와 코스피 영업이익 상향 덕분에 코스피 7000선이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라며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 기준 코스피는 8100, 내년 기준 9800이 적정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반도체 이익 상향 조정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올해 내 코스피 8000선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사정권”이라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코스피 밴드를 조정하지 않은 증권사도 목표치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아직 보고서를 작성 중이라 공식적으로는 코스피 밴드 상단을 7000대로 제시하고 있지만 조만간 9000까지 올릴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워시 방향성·IPO 수급 교란 변수
증권가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력기기·증권·방산·신재생 등을 나눠 담을 것을 추천한다. 반도체는 여전히 핵심 축이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오라클 등 주요 빅테크의 내년 설비투자 전망치는 최근 1조달러(약 1448조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됐다. AI 산업이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이동하며 메모리 반도체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전력기기 역시 구조적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전력망 투자 확대와 전력 인프라 병목 현상이 국내 전력기기 업체 수출 증가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효성중공업 등이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최대 수혜주로 거론된다.
그 외 증권과 방산, 신재생에너지도 일정 부분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증권 업종은 코스피 거래대금 확대와 상장지수펀드(ETF)·연금 시장 확대, 외국인 자금 유입 등 호재가 가득하다. 방산은 중동 전쟁 이후 글로벌 안보 환경이 급변하며 수요가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안보 강화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단, AI 캐즘은 코스피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큰 코스피 특성상 AI 인프라 투자 축소는 코스피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코스피 영업이익에서 반도체 비중이 내년 60%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이 꺾이면 코스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허재환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이외 업종은 대부분 코스피 상승분을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는 4100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주와 코스닥 소외 현상은 상반기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AI 데이터센터와 관련이 낮은 산업에 대한 접근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후보의 방향성과 하반기 대형 기업공개(IPO) 등장에 따른 수급 교란 등을 투자자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원칙을 중시하는 워시 연준 의장 후보는 사모대출 시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단기 금융 시장이 어려움에 처해도 금융 시장에 직접적인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향후 연준이 유동성 공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금융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반기 예고된 초대형 IPO 역시 변수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IPO로 거론되는 스페이스X를 비롯해 오픈AI·앤트로픽 등 AI 기업이 상장에 나설 경우, 글로벌 자금이 미국 기술주 중심으로 쏠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페이스X·오픈AI·앤트로픽 3사 합산 기업가치는 3조달러(약 4345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자금은 약 6500억달러(약 941조원)로 추정돼, 패시브 자금의 강제 매수 규모는 130억달러(약 19조원) 규모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액티브 펀드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자금이 이동할 것”이라며 “이는 수급 교란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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