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워시노믹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6. 5. 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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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통화 정책은 ‘AI 생산성’에 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케빈 워시 차기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 취임이 다가오자 전 세계 이목이 쏠린다. 워시 차기 의장은 “인공지능(AI) 덕분에 인플레 없는 성장이 가능했다”며 ‘AI 생산성론’을 주장해 어떤 통화 정책을 펼칠지 눈길을 끈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차기 의장. (EPA=연합뉴스)
케빈 워시, 역대 최연소 연준 이사

월가 출신 ‘금융위기 소방수’

미국 연방 상원 은행위원회는 지난 4월 30일 워시 후보에 대한 인준안을 의결했다. 인준을 가로막았던 상임위 표결 불확실성이 걷히며, 워시 후보자는 상원 전체회의 인준 표결을 거쳐 5월 15일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에 이은 차기 의장으로 취임할 전망이다.

워시 차기 의장은 1970년 미국 뉴욕주 올버니의 부촌인 라우던빌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로버트 워시는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던 유대인 기업가였다.

워시는 스탠퍼드대에서 공공정책학 학사 학위를,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로스쿨 졸업 후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 입사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모건스탠리 뉴욕 본사에서 일하며 인수합병(M&A) 부문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M&A 부문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2002년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전격 발탁됐다. 2006년까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사무국장 겸 대통령 경제 정책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자본 시장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자문하며 정책 실무를 익혔다. 2006년에는 부시 대통령이 그를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그의 당시 나이는 35세로, 연준 역사상 최연소 이사였다.

워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핵심 측근으로서 월스트리트와의 핵심 연락책 역할을 수행했다. ‘월가 소방수’ 역할을 하며 JP모건의 베어스턴스 인수, 모건스탠리의 은행지주회사 전환 등 주요 구조조정을 중재했다.

하지만 워시는 연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연준의 양적완화(QE) 정책에 반대하며 2011년 3월 임기를 7년이나 남겨두고 사임했다.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당시 연준의 6000억달러 국채 매입 계획을 비판하며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며 정기적인 검토 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시는 연준 이사직 사임 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특별연구원, UPS와 쿠팡 이사회 멤버로 활동해왔다.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과는 하버드 동문 인맥으로 알려졌다.

워시 ‘AI 생산성론’ 눈길

“AI가 인플레이션 잡는다” 주장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에 오른 워시는 앞으로 어떤 통화 정책을 펼칠까. 그는 연준 이사 시절인 2011년 양적완화 정책에 반대하며 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처럼 한때 통화 정책에서 긴축을 지향하는 ‘매파’로 통했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워시의 통화 정책 철학은 ‘인플레이션은 선택(Inflation is a choice)’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경제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거나 노동자 임금이 너무 많이 오를 때 발생한다는 연준의 전통적 관점을 거부한다.

대신 그는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너무 많은 돈을 쓰고 너무 많은 돈을 찍어낼 때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워시는 연준의 7조달러(약 1경원)에 달하는 비대한 대차대조표를 축소하고 그 여력으로 금리를 낮춰 가계와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워시는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인플레이션을 낮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는 “(AI는) 우리 생애 통틀어 가장 강력한 생산성 향상의 물결이고, 인터넷이 그랬듯 구조적으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을 일으킬 수 있다”며 “통화 정책을 보다 완화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워시는 1996~1997년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 시절 통화 정책을 든다. 당시 그린스펀 의장은 인터넷 혁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근거로 금리를 동결했다. 이후 물가 안정과 경기 호황이 이어졌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한 배경은 쿠팡 사외이사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워시는 2019년 10월 당시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 사외이사직을 수락하며 쿠팡을 ‘혁신의 최전선(Frontier of innovation)’이라고 극찬했다. 그가 말한 ‘혁신’은 AI와 머신러닝을 물류에 도입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과정이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긍정적 공급 충격(Positive Supply Shock)’ 개념이다.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면 기업은 이익을 내면서도 얼마든지 물건 값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워시는 2019년부터 6년여 동안 쿠팡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AI와 머신러닝이 어떻게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며 디플레이션 효과를 내는지 체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경험은 “연준이 기술 발전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그의 지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워시는 지난해 11월 WSJ 기고문에서 “AI 덕분에 호기심의 비용이 ‘0’에 수렴하고 있다”며 “연간 생산성이 1%포인트만 올라도 한 세대 안에 생활 수준은 두 배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준이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인플레이션을 낮출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국가 주도 방식이 아닌, 미국의 자율과 규제 완화가 AI 혁명을 이끌 것”이라며 “연준이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기술 낙관론’은 통화 정책으로 현실화될 전망이다. 마크 다우딩 블루베이자산운용 CIO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워시는 ‘AI 생산성 향상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자신의 금리 인하 스탠스를 정당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시 입장에서 AI는 금리를 내려도 물가가 오르지 않게 막아주는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할 것이란 의미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워시가 향후 통화 긴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AI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춰준다면 연준이 굳이 강도 높은 통화 긴축에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 연준 차기 의장이 취임 이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미국의 한 대형마트 모습. (AP=연합뉴스)
워시 ‘정치적 외풍’ 취약?

통화스와프 정치적 활용 가능성

다만 최근 물가 지표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는 분석이 나와 워시 차기 의장 고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보다 3.3% 상승해 2024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12.5%, 휘발유가 18.9% 치솟은 것이 주요인이다.

연준 내부에선 AI 붐이 오히려 물가 상승을 자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은 “AI 관련 투자가 단기적으로 거시경제 총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며 “이를 상쇄하는 통화 정책이 없다면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폭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전력, 반도체 수요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들도 AI 생산성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시카고대 클라크금융시장센터가 최근 미국 경제학자 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AI 열풍이 당장 금리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오히려 응답자의 32%는 AI 붐으로 연준이 중립금리를 소폭 인상해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AI로 생산성을 높이면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워시의 주장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또한 워시는 현재 연준이 사용하는 개인소비지출(PCE) 지표 외에 10억개의 가격을 조사하는 방식이나 양극단 품목만 제외하는 ‘절사 평균’ 인플레이션 등 새로운 지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AI로 인한 인플레이션 하락 효과를 확인하는 지표를 찾으며, 통화 긴축에 최대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QT)는 점진적으로 진행할 전망이다. 워시는 보유 국채를 직접 매각하기보다, 만기 도래 금액의 재투자를 줄이거나 은행의 총자산 대비 연준 자산 비율을 낮추는 방식을 도입할 전망이다. 미국 국채 수요를 메우기 위해 은행 자본 규제를 완화하고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를 위한 핀테크 기업 지원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워시 차기 의장은 정책 도구 측면에서 대차대조표 정책보다 금리 정책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것을 시사했다”며 “대차대조표를 축소한다면 금리 인하 여력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인 만큼 대차대조표 축소 속도와 금리 정책은 보조를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워시 차기 의장을 향한 가장 큰 우려는 ‘연준의 독립성’이다. 워시는 국제 금융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 등에서 연준의 독립성이 두드러질 필요가 없다며 행정부 요구에 협조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우방국에 통화스와프 라인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연준이 대중국 견제 등 미국의 정책 기조에 협력하는 국가에 상시적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한도 확대를 제안해 ‘달러 안전망’을 보장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환율안정기금(ESF)을 활용해 통화가치 하락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에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제공하기도 했다. 친트럼프 성향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돕기 위한 성격이란 분석이 나왔다. 반대로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국가에는 통화스와프 연장을 거절하거나 조건을 까다롭게 해 금융 시장 불안을 유도하는 압박 카드로 쓸 수 있다.

김일혁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통화스와프 라인 설정의 최종 권한은 연준이 보유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워시 체제 아래서 이를 더 활발히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케빈 워시가 연준의 키를 잡는 순간, 연준이 정치적 외풍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논란을 의식한 듯 워시는 최근 인준 청문회에서 “내가 연준 의장으로 인준되면 독립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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