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 변은아와 황동만, 엑스표 당한 사람들이 완성한 동그라미

김정주 2026. 5.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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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사랑을 말하는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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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기자]

▲ ㅇㅓㅁㅁㅏ 누구였을까요? 은아 씨에게 최초로 엑스표를 친 인간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3화에서 상담 중 의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변은아의 답이었다. 나는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는 찰나에, 아내가 말했다. 엄.마.
ⓒ JTBC
"누구였을까요? 은아씨에게 최초로 엑스표를 친 인간이?"
"이응, 어, 미음, 미음, 아."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아래 모자무싸) 3회에서 의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변은아(고윤정 역)의 답이었다. 나는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는 찰나에, 아내가 말했다. "엄.마." 맙소사. 이런 식으로 대사를 쓰고 연출을 할 수 있다고? 하던 사이에 한 대 더 얻어맞았다.

"그 단어는 너무 과장됐어요."

이제까지 봤던 모든 드라마, 영화, 문학 작품을 통틀어 이보다 '엄마'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신성해지고 미화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적합하게 표현한 것이 없어 보였다. 최초로 자신에게 엑스표를 친 인간을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그 단어는 너무 쉽게 용서와 이해와 연민의 옷을 입어버린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완곡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엄마'라는 단어가 가진 인류적 온기와 신화를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해버린다. 이렇게 아방가르드하게 부숴버리다니. 징그럽게 아름다웠다.

엑스 대신 동그라미 치는 인물

놀람은 한 주 지나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모자무싸> 6화에서 황동만(구교환 역)의 형 황진만(박해준 역)은 은아와 식사중에 묻는다.

"인생의 목적이 뭐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성공 그런 거 말고, 성공한 인간들 중에 등신들 많어. 어떤 인간이 되겠다 그런 목적."

은아는 말한다.

"힘 있는 '엄마'요. 저는 힘 있는 엄마가 될 거예요. 돈 있고 빽 있어서 힘 있는 거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한 중심에 서 있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도 안심하게 해주는 그런 엄마. 그런 여자가 될 거예요. 저희 할머니처럼."

자신에게 엑스표를 친 그 대상을 향해서는 차마 뱉고 싶지도 않아 '과장'되었다고 말했던 그 단어를, 일말의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뱉는데 전율이 돋았다. 은아는 엑스표를 친 그 단어를 스스로 동그라미로 바꿀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은아의 삶 자체가 그렇다. 은아의 '엑스(ex)' 남친 마재영(김종훈 역)은 동그라미를 치듯 규정한다.

"너 남들이 버린 것만 쳐다본다며? 어차피 좋은 건 네 것이 될 리 없으니까. 이번엔 황동만이냐?"

틀린 말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은아는 '버린 것'이 아닌 남들이 '엑스' 친 것을 바라볼 줄 아는 '파워'를 가진 사람이다. '죽은 대본'도 살리는 변은아라는 별명은, 남들이 엑스 친 대본을 동그라미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황동만이 저렇게 시나리오 쓰는 놈은 처음 봤다고 한 재능 없는 전 남친의 엑스적 글도 동그라미로 바꿔주어 수상작으로 만든 게 변은아다).

박경세(오정세 역) 감독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괜찮지 않은 성적으로 혹평에 시달리고, (새)엄마 오정희(배종옥 역)의 통제 속에서 심리적으로 마비되어가며 배우인 스스로에게 엑스표를 친 장미란(한선화 역)에게도 변은아는 동그라미를 쳐준다. 날카로운 직언에 불쾌해하면서도 끝내 마음이 움직인 장미란은, 동물적(?) 감각으로 이 동그라미를 알아차린 듯 신이 나서 말한다.

"너 내일부터 내 전화 받어, 내 마음에 들려고 알랑방구 끼는 순간 넌 아웃이야.(나한테 계속 그렇게 동그라미 쳐줘)"

여기에 황동만은 모든 사람이 '무가치'함으로 정의하며 엑스표를 친 대표적인 인간이다. 황동만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에게 변은아는 있는 힘껏 동그라미를 쳐준다.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이 다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 ... 감독님이 훨씬 멋져요. 훨씬 동물적이고, 훨씬 따뜻하고."(이 대화를 하는 장면을 잘 보면 조명이 '동그라미'를 상징하듯 짠 하고 켜진다. <모자무싸> 3회 장면 참고)
▲ 동만에게 동그라미를 쳐주는 은아(3화중) 황동만은 모든 사람이 '무가치'함으로 정의하며 엑스표를 친 인간이다. 황동만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에게 변은아는 있는 힘껏 동그라미를 쳐준다. 감독님은 천 개의 문이 다 열려 있는 사람 같아요 ... 감독님이 훨씬 멋져요. 훨씬 동물적이고, 훨씬 따뜻하고.
ⓒ JTBC
'무가치'에 갇혔을 때는 '무'한의 '같이'로

지극히 내 주관적인 마음이다만, 나는 평생을 동그라미 속에서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다. 구김 없고, 세상 불안 걱정 없이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좋아하며 적절히 잘 지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랑할 리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엑스표를 알고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그 아픔과 어둠을 아는 사람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에게 찍힌 <주홍글씨> 같은 낙인의 의미를 다시 써보려고 하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하지 않을 길이 없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나온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이런 내 마음과 꼭 밀착되어 있다.

누군가에 의해 엑스표를 받는 것은 상처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아파봤기에 다른 아픈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기를 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은아가 꼭 그런 사람이다. 은아는 그렇게 엑스표 쳐진 시나리오들을 살렸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동만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정작 자신 안에 있는 엑스표는 어쩔 줄 몰라, '자폭하고 싶은'이라 말하면서...

6화에서 동만은 그걸 알아챈다. "7%의 간절함, 도와줘, 도와달라는 거예요"라면서. 은아는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해준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엑스표를 동그라미로 바꿀 수 있게 누가 나 좀 도와달라고.

각자의 엑스표를 가진 둘이 끌어안는다. 동그라미는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무'가치는 '무'한의 '같이'로 변모한다. '무가치'에 갇혔을 때는, '무'한의 '같이'로 돌파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런 발음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을.
▲ 이 드라마는 이런 발음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을 - 각자의 엑스표를 가진 둘이 끌어안는다. 동그라미는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무'가치는 '무'한의 '같이'로 변모한다. '무가치'에 갇혔을 때는, '무'한의 '같이'로 돌파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런 발음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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