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빈둥거리고 싶습니다" 청춘의 방황을 담은 고전

김남정 2026. 5. 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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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면도날>

[김남정 기자]

고전은 늘 삶의 물음을 남긴다. 그래서 난 때때로 고전을 읽는다. 이번에 도서관 대출 신청으로 다시 읽은 <면도날> (2009, 6월)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리라."

인도의 성전 <카타 우파니샤드>에서 가져온 이 문장처럼, <면도날>은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 삶의 목적과 인간의 본질, 관계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이다. 제목 속 '면도날'은 인간이 살아가며 건너야 하는 위태롭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처럼 느껴진다. 얇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조심스럽게 건너가야 하듯, 인간 역시 흔들리고 상처받으며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서머싯 몸은 이 작품에서 청년 래리의 방황과 깨달음을 따라가며 성공과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전쟁 이후 삶의 방향을 잃은 래리는 모두가 부러워 하는 안정된 길 대신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 떠난다. 돈과 명예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고전 소설임에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 책표지 <면도날> 세계문학전집, 서머싯 몸(지은이)
ⓒ 민음사
책을 다시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래리의 고독'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그를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처럼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만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귓가에는 '당신은 정말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말이 들리는듯했다.

래리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아,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래리는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내면을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여자친구 이사벨과 생각이 충돌해도 감정적으로 맞서지 않고, 좋은 직장을 거절할 때도 길게 변명하지 않아 있다. 래리의 태도와 행동은 자기 기준이 분명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용기이자 고요함이었다.

그 결심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나는 그것이 전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래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파일럿으로 참전했고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한다. 특히 자신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동료의 죽음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죽음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돈과 성공, 명예 같은 것들이 과연 삶의 본질일까.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의 경험 앞에서 인간은 결국 존재의 이유를 묻게 된다.

래리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수많은 인물들도(엘리엇, 소피, 수잔) 영화 장면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단지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전히 불안과 욕망, 상실과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사벨은 사랑보다 안정과 현실을 선택하고, 엘리엇은 끝내 상류사회의 인정 욕구를 놓지 못한다. 저마다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의 결핍과 욕망 안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에서 작가 서머싯 몸이 화자로 직접 등장한다. 작가가 작품 속 서술자 '나'로 등장해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때로는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개입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물들의 생각과 태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마치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전해 듣는 기분이었다.

책에는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소개 문구가 붙어 있다. 그 말처럼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사람의 성장담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청춘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무엇보다 오래 남았던 장면은 도서관에서 래리와 몸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었다.

"자네 목표는 뭔가?"

그는 잠시 망설였다.

"바로 그게 문젭니다. 아직 목표를 모르겠어요."
"그럼 뭘 하고 싶은가?"

그는 매력적인 미소를 환하게 지어 보였다.

"그냥 빈둥거리고 싶습니다." - 61p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예전의 나 역시 그랬고, 지금의 청춘들 또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만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같은 불안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늘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얼마나 성공해야 하는지를 요구받으며 살아간다.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시대에 래리의 "그냥 빈둥거리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게으름의 고백이라기보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잠시의 멈춤처럼 들렸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정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삶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의 청춘들이 <면도날>을 읽는다면 자신의 고민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지나가는 보편적인 불안이라는 점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나니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춘다고 해서 그 삶이 진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래리라는 인물을 통해 내 삶의 의미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삶의 단계마다 쉽게 답을 내리기보다 오래 사유하며 살아가고 싶다.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하는지, 어떤 삶이 진짜 내 삶인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면도날>은 바로 그런 마음을 끝내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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