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 부산 북갑에 어른거리는 '공안'의 그림자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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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1월 26일 정형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쌀소득 보전 직접지불금 불법수령사건 실태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해 건보공단 관계자들과 답변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
| ⓒ 남소연 |
그런데 그 셋에 더해 또 다른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이곳에서 3선 의원이 됐다가 2008년에 박민식 전 검사와의 공천 경쟁에서 밀려 지역구를 내준 정형근 전 의원이 한동훈 후보의 후원회장이 되면서 정형근의 이미지도 겹쳐 나타나고 있다.
정형근은 1996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회의원 활동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에게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차장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공안 전문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안기부 사람이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형근은 사실 검찰 출신이다. 29세 때인 1975년 이후의 정형근은 검사였다. 안기부로 파견된 것은 37세 때인 1983년이다.
일종의 객식구였던 그가 안기부에서 차장까지 된 것은 독특한 시기에 공안 수사를 주도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가 공안 분야에서 활동한 시기는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유리한 시절은 아니었다. 냉전 질서가 한창 힘을 뿜던 시절은 아니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탈냉전이 진행되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그는 안기부의 공안 수사를 주도했다. 이 시기는 반공 정권의 기운이 예전 같지 않고 공안 전문가들이 이전보다 몸을 움츠릴 때였다. 상대적으로 대중의 역량은 강해지고 있었다.
공안 분야가 힘들었던 시기에 그는 문익환 방북 사건, 서경원 방북 사건, 임수경 방북 사건, 김낙중 간첩 조작, 이선실 사건, 사노맹 박노해 사건 등에 간여하면서 반공체제 수호에 앞장섰다. 2002년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정형근의 비리 파일'에 따르면,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에도 가담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파일에 이런 내용이 있다.
"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 '민추위' 사건 관련 박종철(언어학과 3년)을 연행해 조사 시 물고문 등으로 치사사건이 발생하자, 치안본부로부터 관계기관 긴급대책회의 소집 등 지원을 요청받고 당시 대공수사국 수사단장 정형근은 1월 14일 심야에 당시 광화문에 있는 서린호텔에서 개최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검찰(서울지검 공안부장 최환)·경찰(치안본부장 강민창·나중에 구속)·청와대(공보비서관 김길홍) 등 10여 명과 함께 참석하여 사건처리 방향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내용의 발표문 작성에 참여하였으며"
'DJ 저격수'라는 별칭
정형근이 안기부로 파견된 시점은 친정인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종래의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몇 년 전이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군사정권이 타격을 입고 법치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속에서, 검찰과 법원은 법치 담당자라는 기능을 근거로 시녀 이미지를 벗고 독자적 위상을 높여갔다. 그런 현상이 개시되기 얼마 전에 검찰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관운에 나쁘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가 파견된 안기부는 전두환 정권하에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 눌려 있었다. 하지만 1987년에 군부정권이 타격을 받고 1990년에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로 보안사가 타격을 입는 속에서 안기부는 위상을 높여갔다. 정형근은 조만간 그렇게 살아날 안기부로 파견돼 공안 전문가의 맹위를 떨치게 됐다.
김영삼·김종필이 노태우와 합세한 3당 합당선언(1990.1.22.) 이후의 김대중은 민주화 진영과 야권의 정권교체 열망을 성사시켜 줄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다. 정형근은 그런 김대중을 가로막는 데도 앞장섰다. 이는 그 뒤 그가 'DJ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는 토대가 됐다.
정형근은 김영삼(41.96%)-김대중(33.82%)-정주영(16.31%)-박찬종(6.37%)의 '양강 1중 1약' 구도로 전개된 1992년 대선 직전에 이선실 간첩사건(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했다. 정형근은 이 사건을 김대중 낙선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안기부가 사건을 발표한 다음 날인 그해 10월 7일 <한겨레>는 이 발표가 대선과 연관됐다는 의혹이 존재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사 발표에서 정형근 안기부 수사차장보는 북한이 '오는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지원하라'는 지령을 내려보냈다고 공개 발표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6·27 지방선거로 기억되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종래의 관권 선거에 제동을 걸고 1997년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중요했다. 그런 의미를 갖는 1995년 지방선거의 실시를 미루고자 했던 주역도 정형근이다. 1995년 2월 21일 자 <경향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민주당은 또 이날 국가안전기획부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 연기 문제와 관련, 각계 여론을 수렴토록 전국 지부장에게 보낸 '단체장선거 연기 문제 검토'라는 극비문서를 폭로하고 '안기부와 민자당 합작으로 지방선거를 연기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달 24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권영해 안기부장은 지방선거 연기를 추진한 인물이 정형근 1차장이라고 진술했다. 1차장이 전년 11월 15일부터 이를 추진했다는 것이 안기부장의 증언이다.
일반적인 공안 전문가를 넘어선 인물
지방선거를 뒤로 미루고자 했던 정형근의 시도는 그가 김대중 최측근인 권노갑의 공격을 받고 옷을 벗는 결과로 이어졌다. 위 문건을 폭로한 당사자는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정형근은 민주화의 진전을 막으려다 옷까지 벗은 공안 전문가다.
정형근은 옷을 다시 입기 위해 1996년에 부산북구·강서구갑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그런 뒤 국회에 들어가 김대중 공격을 비롯한 구체제 수호 활동에 앞장섰다. 그런데 그는 매사를 북한과 연관 짓는 태도로 인해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했다. 2002 대선에 도전했던 정몽준도 불쾌감을 표한 정치인 중 하나다. 2016년에 여의도연구원의 이정재 정책자문위원이 쓴 <대통령선거 이야기: 왜 그들은 패배하였는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여론조사에서 정몽준이 1위로 등극하자 한나라당엔 MJ 경계령이 내려졌다. 정형근은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 경평 축구 등도 J모 의원 띄우기와 관련이 있고,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방북은 실질적으로는 대선후보 책봉사신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몽준은 '유치하다', '매사를 공작이나 음모로 보려는 더러운 정쟁주의자들'이라며 곧바로 반격했다."
정형근은 탈냉전과 민주화가 진전되던 시기에 공안정국을 주도했다. 그가 맡은 공안사건들, 그가 저지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면면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일반적인 공안 전문가를 넘어선 인물이다. '고등'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줘야 할 정도다.
그런 인물의 그림자가 12·3내란 이후의 재보선 격전지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1980년대 이후로 그가 역사에 끼친 영향들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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