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의료진과 의료시설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전략

정주진 2026. 5. 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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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의료진 사망과 부상... 가자지구 만행과 닮은 꼴

[정주진 기자]

 11일, 남부 레바논의 마르자윤(마르제윤) 인근에서 바라본 엘카트라니 마을 외곽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교전이 휴전이 무색하게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레바논에서는 매일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에도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레바논 국영뉴스 NNA가 보도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10일 24시간 동안 51명이 사망했고, 9일에는 3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로 지난달 25일부터 3주 연장된 레바논-이스라엘 간 2차 휴전이 3주 차에 접어들었지만, 교전은 오히려 격렬해지고 있다. 레바논 남부를 장악하고 지상군을 배치한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과 이에 대한 헤즈볼라의 대응으로 '휴전'은 의미를 잃었다.

레바논 보건부는 전쟁이 시작된 3월 2일부터 5월 11일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레바논에서 286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의료시설·앰뷸런스 향한 공격

레바논의 사상자 증가와 함께 특별히 우려되는 것은 계속되는 의료진 사망과 부상이다. 5월 10일 사망자에는 의료진 2명이 포함돼 있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스라엘이 남부 빈트 주베일 지역의 보건소 두 곳을 직접 타격했다"며 "이스라엘이 국제법과 인도주의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1일에도 폭격 현장에 출동한 의료진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유엔에 따르면, 3월 2일 레바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은 의료시설과 앰뷸런스 등을 130차례 이상 공격했고, 그 결과 의료진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3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하루에 의료진 약 1.5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을 입은 셈이다. 이는 국제인도법 위반일 뿐 아니라 전쟁범죄에 해당하지만, 이스라엘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의료시설과 앰뷸런스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이 병원과 의료진 공격을 정당화할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헤즈볼라 관련 기관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인도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의료진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국제인도법 위반이며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일한 의사이자 인도주의 활동가인 타히르 모하메드는 알자지라에 두 지역에서 자행된 이스라엘의 행동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우리 동료 의사들, 간호사들, 의대생들을 학살하는 것을 봤는데,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이와 똑같은 일을 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눈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모하메드의 말처럼, 가자지구에서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많은 의료진이 사망했고 의료시설이 파괴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025년 9월 기준 가자지구에서 의료진 1722명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이는 평균 하루 2명꼴이라고 밝혔다. 또한 병원은 50%만이, 그것도 일부 기능만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도 하마스가 의료시설을 이용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병원들을 공격해 기능을 정지시켰다. 이때도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의도적으로 의료진을 공격해왔다. 런던대학교 연구기관 포렌식 아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와 오디오 조사단체 이어샷(Earshot)은 2025년 3월 23일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의료진 학살 사건에 대한 공동 조사 보고서를 지난 2월 발표했다.

보고서는 이스라엘군이 '구급차' 표시가 선명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와 팔레스타인 민방위대(PCD) 소속 앰뷸런스 등을 공격해 1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스라엘군이 앰뷸런스 행렬에 910발 이상의 실탄을 발사했고, 일부 의료진에게는 "사형 집행"을 하듯 근거리에서 조준 사격을 가했다고 보고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의료진을 공격해 살해한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특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그랬듯 레바논에서도 폭격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현장에 도착한 의료진을 다시 공격하는, 이른바 '연속공격(double tap)'을 자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진과 구급대는 늘 공격을 각오한 채 현장에 출동한다.

그런데 4월 15일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은 2차 연속공격을 뛰어넘는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 헤즈볼라 소속 이슬람보건연합(IHA) 의료진은 이스라엘 공격으로 발생한 부상자 소식을 듣고 앰뷸런스를 몰아 현장에 갔다가, 먼저 도착한 의료진이 공격받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들을 구하려던 의료진은 이후 두 차례 더 연속공격을 받았다. 이스라엘이 통상 자행하는 2차 연속공격을 넘어 4차 연속공격(quadruple tap)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 상황은 모두 영상으로 기록됐다. 이 사건으로 IHA 의료진 3명과 긴급구조단체 나바티에(Nabatieh) 소속 의료진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문가들 '이스라엘이 고도의 심리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고의적인 의료진 공격과 의료시설 파괴는, 비국가 무장세력이 관여된 내전에서도 자주 발생하지 않는 일이다. 의료진과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은 전쟁에서도 절대적인 금기이며,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가자지구에서 그랬듯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 데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임을 알면서도 왜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계속 공격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초기부터 병원 공격을 반복했다. 2023년 11월, 카타르 국제중동위원회 연구원 오마르 라만은 알자지라에 "이것은 이스라엘의 심리전"이라며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위기그룹의 팔레스타인 분석가 타하니 무스타파도 의료진과 의료서비스를 계속 공격해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주민들을 위협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4월 초 레바논 남부에서 의료진과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자, 레바논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피란민을 돕고 있는 한 의사는 알자지라에 익명을 요구하며 "누구도 의료 서비스가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며 "현재 많은 피란민에게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이미 (이스라엘 공격으로) 의료시설에 큰 부담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시도했던 것처럼, 레바논 남부 주민들에게 '안전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곳이니 떠나고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레바논 남부 주민들 역시 이스라엘이 그 지역을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휴전 이후에도 가자지구의 58%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주민의 귀환을 막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서도 주민들을 쫓아내고 영구 점령을 고착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택과 민간시설 파괴에 더해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지속적으로 공격함으로써 레바논 남부 주민들의 귀환 의지를 꺾으려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의도나 주장이 무엇이든, 의료진과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과 전쟁범죄의 틀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며 면책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레바논 연구자 람지 카이스는 알자지라에 레바논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스라엘의 고의적인 의료진·의료시설 공격을 고발해, 전쟁범죄와 관련한 조사와 기소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의료진과 의료시설 공격을 군사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령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헤즈볼라 소속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국가임에도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것은, 반복적으로 면책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세계가 레바논 전쟁에 관심을 갖고 특히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감시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면책을 예상하며 의료진과 의료시설을 공격하는 만행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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