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불 덮고 산 지 30년 넘은 아내의 요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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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숙 기자]
남편과 나는 결혼해서 30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찌는 여름에는 서로에게 한 자락이라도 넘겨주려고 기를 쓰고, 손발 시린 겨울에는 서로가 이불 한 귀퉁이라도 더 덮으려고 탐하면서도 이불을 하나 더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둘이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싸운 날에도 밤이 되면 결국 한 이불을 덮고 잤다.
계속 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잠자리에 들자마자,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 드는 남편과 달리 나는 단번에 잠이 드는 법이 없다. 자리에 누우면 종일 내 속을 썩였던 일이 계속 떠올라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남편이 깰까 봐 숨을 죽이곤 했다. 결국 잠자리를 빠져나와 거실을 서성이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남편을 신경 쓰다 '차라리 거실에 자리를 펴고 잘까?'라는 생각도 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눈만 감으면 잠을 자요?"
"요즘엔 너무 피곤해서 그렇지. 근데 나도 잠이 안 올 때가 있어요."
"정말? 내 눈엔 맨날 금방 자는 것 같던데."
남편은 자신만의 비법이라며 머릿속에 하얀 도화지를 그려보라고 했다. 도화지를 만들다 보면 머릿속 고민이 지워지고 어느새 잠이 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따라 도화지를 그려보았다. 그런데 고민은 사라지지 않고 도화지 수만 늘어났다. 안타깝지만 남편의 비법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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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 고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아내 갈수록 심해지는 남편의 코골이로 잠 못 드는 아내 |
| ⓒ 챗지피티 |
하지만 남편의 코골이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코골이에 도움 되는 운동을 알려주어도 몇 번 하다 말았다. 술이라도 마신 날에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요란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도 거실에서 요가를 마무리하고 들어가니 남편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자리에 누웠는데 '드르렁드르렁 푸르르' 하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숨 쉬는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명상이고 뭐고 오던 잠도 달아날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살 흔들어 깨웠다.
"왜? 내가 또 코 골았어?"
"오늘은 소리가 너무 크다. 나도 자야 하는데…."
나는 자는 사람을 깨우려니 너무 미안해서 말꼬리를 흐렸다. 남편은 곧바로 옆으로 돌아눕더니 바로 잠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잘 자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다음 날 남편에게 처음부터 옆으로 누워서 자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단다. 시끄러우면 언제든 자신을 깨우라고 했지만, 나는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을 번번이 깨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다가 새벽녘에 잠드는 날도 있었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놀랍게도 친구들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침대를 따로 쓰거나 아예 방을 따로 쓴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무려 10년 전부터 각방살이를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한 방에서 한 침대를 쓰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빨리 남편한테서 독립하라며, '수면권'은 환갑을 바라보는 우리 나이에 아주 중요한 권리라고 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우리도 침대를 따로 쓰면 어떨까?"
"그렇게 힘들었어? 진작 말을 하지."
절대 안 된다고 펄펄 뛸 줄 알았던 남편이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자 침대를 하나 더 주문하려던 내 손길이 주춤거렸다. 나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수면권'과 '30년 쌓인 정' 사이에서 망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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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의 생사를 알 수 있어 행복해하는 이안대군 쓰러졌던 아내가 회복하자 시끄러운 기계음이 오히려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좋아한다. |
| ⓒ e채널 |
갓 결혼한 신부가 안타까워 떨어질 줄 모르는 신랑 이안대군. 의료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있던 성희주가 기계에서 나는 심박, 맥박 소리가 너무 시끄럽지 않냐며 이안대군에게 다른 곳에서 자라고 한다. 그러자 대군이 괜찮다며 하는 말.
"후배님이 살아있단 소리잖아."
그리고선 꼭 끌어안는다. 그냥 예쁜 두 배우의 사랑놀이일 뿐인데, 나는 눈물이 났다. 30년 전 첫 아이를 낳을 때였다. 대기실에서 촉진제를 맞고 기다리다 진통 대신 혈압이 치솟아 급하게 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그때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눈물 그렁그렁하며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은 마취에서 깨어나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고도 눈물을 글썽였다.
그 순간 나는 결정을 내렸다. 수면권보다 30년 쌓인 정에 무게를 두기로. 드라마 주인공처럼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달뜨던 때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는 우정 아니 의리로 산다고 말할 지경이다. 서로의 걱정을 챙기며 살아가는 나이가 됐지만 드라마를 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 있다는 소리'.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코를 심하게 골다 보면 수면 무호흡증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코골이는 나이가 들수록 살이 찔수록 심한 경향을 보인다고 하는데 남편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내가 듣기 싫다고 짜증 내던 소리가 남편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측은하기까지 했다.
나는 남편을 침대에서 쫓아내는 대신 남편의 몸매 관리에 신경 쓰기로 했다. 남편이 더 이상 살찌지 않도록 식단을 조절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함께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도 밤마다 고생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던지 흔쾌히 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남편의 코골이로 고생하는 아내들이여, 코 고는 소리가 남편의 생존을 알리는 신호라 여기고 어여삐 여기자. 미운 정도 정이라고, 오늘부터 틈날 때마다 손잡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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